위안부 이야기 다룬 〈귀향〉 투자·배급 난항, 다시 모금…후반작업도 9억 원 더 필요

한국전쟁 직후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을 다룬 구자환 감독의 <레드 툼>(Red Tomb·빨갱이 무덤)이 9일 전국에서 개봉합니다. 경남에서는 메가박스 창원에서 상영을 한다는군요. 빠듯한 제작비로 10년 만에 완성해 지난 2013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받았죠. 개봉을 못 해 애를 먹다가 도민 후원금을 모아 힘겹게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영화가 극장 개봉을 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이야기를 다룬 <귀향>입니다.

/오마이뉴스 정리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배급사 못 찾은 위안부 영화…믿을 건 '시민 모금' = 위안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을 위해 시민들이 다시 한 번 모금을 시작했다. 국민 모금으로 시나리오를 쓴 지 13년 만에 어렵게 제작을 마쳤음에도 개봉까지 투자·배급에 또 한 번 난항을 겪고 있어서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7) 할머니가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바탕으로 했다. 그림은 16살에 위안부로 끌려간 강 할머니가 모진 고초를 겪다 장티푸스에 걸린 자신을 일본군이 다른 병든 소녀들과 함께 불구덩이로 던지려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난 2001년에 그렸다.

이를 본 조정래(42) 감독이 이미 13년 전에 시나리오를 썼지만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국민 4만여 명이 참여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6억 원가량의 제작비가 모이면서 지난해 말 첫 촬영에 들어갔다. 그 후 다음 뉴스펀딩 등 각계각층의 후원이 이어지면서 가까스로 촬영을 마쳤지만 또다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시민들의 2차 모금이 시작된 건 지난 4일 <귀향>이 배급사를 찾지 못해 오는 8월 15일에 예정됐던 시사회와 개봉이 불투명해졌다는 언론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이날 SNS에는 문자 메시지와 계좌 이체로 영화를 후원하는 방법이 빠르게 공유됐고, 그렇게 주말 사이 모인 금액만 1000만 원이 넘었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이어 6일 오전에는 위안부 피해자 최금선(90) 할머니가 별세했다는 비보가 알려지면서 모금에 참여하는 시민이 더욱 늘어났다. 올해만 7명의 피해자가 떠나고 생존자가 48명으로 줄어들었다는 안타까움이 번지면서 한나절 만에 문자메시지 기부에 참여한 시민이 300명을 넘어섰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이 모였지만, 개봉을 위해선 아직 역부족이다. <귀향>은 촬영에만 25억 원이 투입됐다. 베를린·칸 등 모든 해외 영화제 출품을 목표로 한 영화가 완성되기까지는 앞으로 CG·색보정·음악 삽입 등 후반 작업이 남았다. 여기에 필요한 돈만 9억 원이다.

현재 후반 작업 중인 임성철 PD는 6일 "생존자들이 다들 연로하셔서 한 분이라도 더 살아계실 때 어떻게든 해외에 알려 일본으로부터 사죄를 받아내는 게 목표"라면서 "2~3일 동안 많은 분의 후원으로 큰돈이 모였지만 안타깝게도 후반 작업비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임 PD는 "충분한 후원금이 모인다면 과거 독립영화 <워낭소리>처럼 영화관이 아닌 주민센터 등에서 직접 상영하는 방법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귀향〉 홈페이지. 7일 현재 모금액은 1억 7517여만 원이다.

◇지난 5월, 영화 <귀향> 촬영 현장 가보니 = 지난 5월 16일과 17일 경기도 연천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의 마지막 전투 장면 촬영이 있었다. 촬영은 일본군이 연합군과 싸우는 장면, 소녀들을 일렬로 세우고 총으로 쏴 죽이려는 장면, 연합군이 일본군을 향해 진격하며 싸우는 장면, 연합군과 일본군 사이의 백병전, 죽은 위안부 소녀의 시신들을 주인공인 정민이 바라보는 장면 등이었다.

오전 5시 30분 식사가 시작되고 촬영장 세팅, 배우들에 대한 분장, 촬영현장에서의 리허설, 촬영 등 바쁜 일정이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배우들은 파김치가 되어 숙소로 들어왔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더운 날씨 탓에 오전부터 분장을 한 배우들의 얼굴에선 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광복군 복장의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누빔옷을 입은 중공군 배우들도 일본군과의 백병전을 위해 땅바닥을 나뒹구는 연습을 했다. 무술 배우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보조출연 배우들을 지도했다.

일본군과 맞서는 광복군 역할은 10대의 배우지망생부터 40대의 연극배우까지 다양했다. 대부분 조 감독을 도와주려고 재능 기부를 한 이들이다. 10대 배우지망생들은 광주에서 7시간이나 걸려 연천까지 왔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은 무술감독이 "당시 너희 누나나 친구가 일본군에게 당했다고 생각하고 촬영에 임해야 한다"고 하자 앳된 웃음마저 감추고 금방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공재민(연극배우) 서울연극협회 사무처장은 보조출연을 하려고 경기도 연천을 찾았다. 공 씨는 "일본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우경화가 되어가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을 숨기려 하고 있다"며 "이 영화가 널리 알려져 일본이 반성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보조출연을 결심하게 됐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일본에서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재일교포 구아무개 씨는 "영화에 일본군으로 출연하는 지인과 함께 세트장에 왔다가 광복군으로 출연하게 됐다"며 "이 영화를 계기로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시인하고 반성했으면 한다. 전쟁상황이라는 핑계로 더는 이런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귀향>은 10대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강일출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본 조정래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지 10년이 넘어서야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강 할머니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15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 목단강 근처에 끌려갔다. 모진 고초를 당하고 병에 걸리자 일본군이 자신을 불태워 죽이려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기억을 그린 그림이 '태워지는 처녀들'이다.

〈귀향〉은 5월 15일 포천의 대진대학교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세트장에서 크랭크인에 들어가 연천에서 24일까지 촬영을 끝내고 6월 초에는 경남 밀양에서 촬영했다.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혼을 고향으로 불러 모으는 장면은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촬영한다.

조 감독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인 올해 8월 15일 위안부 할머니들과 후원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시사회를 열 계획이다. 아직 개봉관이 정해지지 않아 국내에서 개봉될지도 미지수다.

조 감독은 "국내 개봉이 되면 좋지만 해외영화제를 통해 우리 영화가 세상에 알려지면 좋겠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문화적 증거로 알려지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위안부 피해자 소녀들의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전쟁범죄인데도 불구하고 이게 콘텐츠로 만들어진 게 별로 없다"며 "우리 영화가 실마리가 되어 앞으로 많은 문화콘텐츠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이 알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도 촬영이 끝나기까지는 많은 고비가 남아 있다. 제작비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3분가량의 티저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네티즌들이 후원하고 후원콘서트 등을 통해 제작비를 모았지만 벌써 바닥이 난 상태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예산은 25억 원이지만 모금된 돈은 5억 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조 감독은 "영화를 위해서 많은 시민이 후원을 해주셨다. 열쇠수리공, 가난하지만 빚을 내어 투자해주신 분들도 있고 멀리 해외에서도 후원해주신 분들도 있어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며 "예산이 떨어진 지가 한참 됐는데도 기적처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하지만 "할머니들을 만나고 또 그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시작한 일이지 내 의지로 시작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할머니들의 영령들이 도와주시고 그분들이 고향으로 오시고자 하는 강력한 염원과 열망이 지금까지 버티도록 도와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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