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고 있어요 자존감 때로 낮아지지만
꿈에 다가섰을 때 지금 삶의 속도 알겠죠
지치지 않고 잘 살고 싶어요 태어났으면 행복해야 하니까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MZ세대."

언론이 그리는 요즘 20~30대 모습 하나입니다. 한 문장으로 한 세대를 정의한다니, 뭔가 부족한 느낌입니다. 날것 그대로 20대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당신 삶은 시속 몇 ㎞인가요'라고 물었고 모두 44명이 응답했습니다. 각기 다른 속도로 달리는 세 사람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먼저 진주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김민경(24) 씨입니다.

▲ 진주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24세 김민경 씨. 그는 요즘 자신의 삶의 속도가 시속 0㎞라고 말합니다. 달리고는 있지만 속도를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사진 김은주 인턴기자·그래픽 서동진 기자 kej@idomin.com
▲ 진주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24세 김민경 씨. 그는 요즘 자신의 삶의 속도가 시속 0㎞라고 말합니다. 달리고는 있지만 속도를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사진 김은주 인턴기자·그래픽 서동진 기자 kej@idomin.com

민경 씨 고향은 부산입니다. 진주에 있는 대학에 다녔고 자연스레 지금도 진주에 삽니다. 삶의 속도를 묻는 말에 "많은 생각을 했다"며 운을 뗐습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거든요. 이렇게 가는 게 맞는지 계속 고민하던 때 질문을 받아서 쉽게 대답할 수 있었어요."

민경 씨 삶은 시속 0㎞입니다. 달리고는 있지만, 속도를 모르겠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대학 생활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학점은 학점대로, 아르바이트는 아르바이트대로요. 서포터스 활동도 했고, 학생회 활동도 했고, 공모전 응모도 했었어요. 계약직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했고요. 매번 성취감을 느꼈고, 열심인 내 모습에 자극을 받아서 더 힘을 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민경 씨는 계기판이 고장 난 자동차를 떠올렸습니다.

"나아가고는 있지만 속도 표시가 안 되는 상태죠. 취업을 하거나 목표로 하는 꿈에 다가섰을 때 지금을 돌아보면 그제야 속도를 알 수 있겠죠."

▲ 김민경 씨.
▲ 김민경 씨.

취업을 준비하면서 쫓긴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민경 씨. 어디서 위안을 얻는지 궁금했습니다.

"남자친구가 군대에 있는데 힘들 때 전화하면 많이 응원해줘서 도움이 돼요. 조언을 해주는 선배? 따로 없어요. 제가 가려는 길을 먼저 간 사람이 많지 않아서요. 안정을 얻을 대상은 더 없어요."

민경 씨는 오히려 온라인 공간 속 익명의 누군가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위로를 얻는다고 합니다.

"학교 동아리나 온라인 카페에서 비슷한 준비를 하는 이들 글을 읽거나 익명으로 서로 응원하는 데서 도움을 많이 받아요. "

MZ세대로 묶여 불리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 물었습니다.

"스스로 어떤 세대라고 인지하고 살지는 않으니까 MZ세대라고 불리나 보다 정도로만 받아들여요. '부당한 일은 참지 않고 일한 만큼 보수 받기를 원하는 세대'라는 표현을 봤는데 '그게 MZ세대만의 특징일까' 하는 의문은 들었어요.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변에 물어봤어요. 대부분 저보다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더라고요."

MZ세대와 기성세대 차이를 묻자 '취업'을 꼽았습니다.

"점점 요구하는 스펙이 많아져요. 공기업 지원하려면 기본적인 입장권이 필요한 분위기? 원서부터 안정적으로 넣으려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 컴퓨터활용능력 1급, 토익 850점 이상이 필요하다는 그런 기준요. 문과냐, 이과냐 전공에 따라 스펙이 추가되기도 하고요. 자격증 시험을 치렀는데 떨어지면 자책하고, 주변과 비교하고, 자존감이 낮아지고, 도전에 주저하게 돼요."

들이는 공이나 시간도 만만치 않지만, 스펙을 쌓는 데 '돈'은 필수입니다.

"컴퓨터 관련 자격증 시험은 2만 원가량 들고, 토익은 올라서 4만 8000원이에요. 보통 시험을 4번 정도 연속해서 치르니까 적어도 20만 원은 쓰죠. 자격증 시험 응시 비용뿐만 아니라 강의도 들어야 하고."

▲ 김민경 씨.
▲ 김민경 씨.

취업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생계도 책임져야 하는 민경 씨에게 '유튜브'는 나름의 숨통입니다.

"유튜브나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전문가가 올린 무료 영상도 많아요.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유튜브 먼저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책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봐요. 도움이 많이 돼요."

요즘 어떨 때 분노를 느끼는지 묻자 민경 씨는 가상화폐를 화제로 꺼냈습니다.

"저도 가상화폐 거래를 하고 있어요. 최근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하려는 측과 반대하는 측 대립이 있죠. 내 집 마련도 어려운 상황에 왜 투자를 규제하려 드느냐고 화가 많이 나있는 듯해요. 과세는 하지만 보호는 하지 않겠다는 지점에 비판하는 이들도 많겠죠. 기성세대도 가상화폐 거래를 많이 하지 않나요? 그런데 왜 언론은 20대에 초점을 맞추는 걸까요. 대립 구도를 형성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민경 씨는 자신이 속한 세대가 다른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MZ세대가 새로 태어나는 세대와 기성세대를 잇는 과도기적 세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 아날로그를 경험했고, 성인이 되었을 때 디지털에 적응했잖아요. 2000년생은 수화기를 잘 모른다고 하잖아요.그 틈을 잇는 역할을 우리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김민경 씨.
▲ 김민경 씨.

민경 씨가 그리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는 거죠. 이왕 태어났으니 죽기 전까지 행복한 것이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하고 싶은 것 참고, 먹고 싶은 것 안 먹는 노력을 기울이잖아요. 그게 과하면 불행해지기도 하고요. 가끔 내가 예쁜 환상만 좇는 것은 아닐지, 그래서 지금 행복해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요. 현재와 미래 사이에 행복의 간격이라고 해야 할까요. 잘 조절하면서 살고 싶어요. 지치지 않고요."

민경 씨는 어머니에게도 삶의 속도를 물었습니다. 20대 질문에 50대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인생에는 정해진 속도가 따로 없다. 차가 달릴 때 저속으로 갈 때와 고속으로 갈 때가 다르듯이 인생도 마찬가지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너무 천천히 달려도, 너무 빠르게 달려도 위험하다. 속도를 내야 할 땐 힘차게 달리더라도 힘들면 휴게소에서 쉬어 가야 한다. 어떨 땐 신호 위반이나 과속으로 벌금을 물기도 하고, 크고 작은 사고가 나기도 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앞서가려는 사람도 많다. 그렇지만, 인생은 장거리다. 하나의 목적지만 있는 게 아니다. 지지치 않고, 위험하지 않게 즐겁고 안전하게 완주하려면 주변의 신호나 표지판을 참고삼아 자신만의 속도와 거리를 잘 조절하는 것이 가장 좋은 주행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답은 없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50년 장거리 주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제 막 출발한 초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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