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잠시 멈추고 삶 방향 고민하거나
10~50㎞ 적당한 선 유지하며 나아가거나
100㎞ 미래 향해 치열하게 내달리거나

20대와 말문을 틀 질문 하나를 가까스로 정했습니다.

"당신 삶은 시속 몇 킬로미터(㎞)입니까?"

측정값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측정한 이유를 최대한 풍부하게 얻기를 바랐습니다.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온라인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의미 있는 답을 보낸 20대는 44명입니다. 이미 차고 넘치는 세대 규정은 애초부터 기획 의도에 없습니다. 그저 각자 내놓은 측정값과 근거를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멈춤, 출발, 정체 그리고 여유… 0~10㎞ = 자기 삶을 시속 10㎞ 미만이라고 측정한 응답자는 7명입니다. 이 가운데 0㎞를 적은 응답자가 3명입니다.

"방향을 찾기 위해 잠시 멈추고 나를 돌아봐야 할 것 같아 지금 삶의 속도는 0㎞."(장인선 씨)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로 시작점인 0을 적게 되었다."(오은서 씨)

무작정 달리는 게 아닙니다. 멈춰야 제대로 방향도 정하고 출발도 가능합니다. 속도가 곧 경쟁력인 시대 아닙니까? 0㎞는 정체와 불안을 드러낸 속도라고 짐작했으나 헛짚었습니다.

사람이 걷는 속도에 착안한 답도 있습니다. 시속 4㎞를 적은 응답자가 2명입니다.

"느긋하게 걸으면서 주변 풍경을 보고 장애물도 피해가며 나에게 쉴 여유를 주고 싶습니다."(임송미 씨)

"특별한 노력을 더하며 빠르게 달리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걸어가는 중이다."(손서연 씨)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서 주위를 찬찬히 돌아보며 살아왔다"는 허송민 씨는 시속 1㎞를 적었습니다. 최근 5㎞ 마라톤에 참가해 여유와 건강이 삶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생각한 손은아 씨는 자신이 뛴 거리를 속도로 답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더디지만… 10~30㎞ = 시속 10㎞ 이상, 30㎞ 미만을 적은 응답자는 7명입니다. 시속 10㎞를 적은 답부터 보겠습니다.

"여유롭게 삶을 즐기기 때문에 느리게 간다."(김동현 씨)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정연수 씨)

시속 20㎞도 느린 속도입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딜 뿐이지 당사자에게 만만한 속도는 아닙니다.

"남들보다 느리지만 나만의 속도로 핑계 대지 않고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보려 한다."(동글이)

"나는 벅찰 정도로 빨리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남들과 비교하면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만 같다."(김은주 씨)

임효정 씨는 '후반 순위 마라토너 속도'라고 답했는데 계산하면 시속 20㎞ 정도입니다. "적당한 속도로 달리며 그런 속도를 만끽하며 산다"고 설명했습니다. 나이와 시속은 비례한다며 "아등바등 고군분투하며 사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하지만 저는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어요"라고 쓴 응답자(지니2)가 쓴 시속은 27㎞입니다.

◇안전속도는 안전할까? … 30~50㎞ = 시속 30~50㎞는 지난 4월부터 전국 도시에서 적용하는 안전속도입니다. 시속 30㎞를 적은 2명은 '안전'을 언급합니다.

"가상화폐나 주식으로 돈을 불릴 생각이 없어서 안전하게 살아가려다 보니 저는 스쿨존이라고 생각했습니다."(김보미 씨)

"걷는 속도에 비해 많이 빠르지만, 자동차가 달릴 때 속도에 비교하면 30㎞는 한참 느리다. 그래서 30㎞면 안전한 숫자라고 생각이 든다."(새우)

시속 40㎞를 쓴 응답자는 4명입니다. 같은 속도지만 저마다 해석은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상대속도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균속도로 의미 있나 봅니다.

"차를 타면 40㎞가 빠른지도 모르겠으나 보행자가 보면 빠른 걸음으로 따라잡지 못할 속도다."(허윤정 씨)

"삶이 힘들고 지칠 땐 속도를 30㎞로 늦추면서 쉬엄쉬엄 살고, 삶이 즐겁고 신날 땐 속도를 50㎞로 열심히 달린다."(김수민 씨)

"우리는 인생에서는 늘 초보운전이라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강지윤 씨)

◇애써 속도를 붙이지만… 50~100㎞ = 시속 50㎞ 이상부터 100㎞ 미만까지 구간을 넓혔습니다. 이제부터는 속도가 붙습니다. 시속 50㎞를 적은 응답자는 6명입니다.

"빨리 취업하면서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것처럼 지냈다. 지금은 안정속도 유지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나를 돌보고 싶어서!"(심가빈 씨)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중간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권문정 씨)

"너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은 적당한 선에서 나만의 길을 가려고 한다. 너무 성급하게 달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스스로 안정되게끔 조절을 한다."(지니)

"크게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지금의 속도가 저는 좋습니다."(최유리 씨)

"제가 지금 고속도로에서 제일 느리게 다니는 소형차처럼 느껴져요."(임재우 씨)

김유진 씨는 "급변하는 세상 속도에 맞춰가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삶을 살기 위해선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평화주의자처럼 적당한 속도라 생각한다"며 시속 54㎞를 적었습니다.

시속 60㎞로 측정한 응답자는 5명입니다. 때로는 순식간에, 한동안은 더디게 흐르는 일상을 평균적으로 종합한 듯합니다. 당연히 삶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지 않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속 90㎞는 거뜬히 넘었을 것 같은데 결혼 후 6개월 동안 휴직하니 다른 사람들보다 속도가 느려졌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정서인 씨)

"정신없는 날에는 시간에 쫓겨 100㎞/h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가 있다. 어떤 날은 20㎞/h처럼 굉장히 지루하고 따분하다."(신하현 씨)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대학교 4학년을 멈춰 섬 없이 보냈다. 취업 준비도 원활하게 되고 있는 것 같다. 힘들 때도 있지만 주변을 둘러볼 여유 정도는 있다."(김민재 씨)

시속 65㎞를 적은 손채연 씨는 "조금 더 천천히 가고 싶지만 옆에 같이 달리는 차를 보면서 더 빨리 달리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시속 80㎞ 정도 되면 응답자도 제법 빠른 속도로 인식합니다. 그렇더라도 이들에게는 더 빨리 달리는 사람이 보입니다.

"원하는 직업을 얻기까지 과정이 조금 길었는데 그때 유독 남들보다 느리고 멈춰 있다는 생각을 받았다."(주혜미 씨)

"주변보다 앞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기에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힘들겠지만, 여유를 찾게 되는 시점에는 조금 시속을 낮출 수 있지 않을까."(허윤경 씨)

◇빠르다고 묶을 수만은 없는 속도… 100㎞ 이상 = 100㎞ 이상을 쓴 응답자도 무작정 속도만 좇지 않습니다. 조수현 씨에게 100은 지난 시간을 알차게 채운 자신을 격려하는 숫자입니다.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치열하며 적당히 수고스러웠기에 내가 가장 완벽하고 안정적인 숫자라고 생각하는 100을 부여하고 싶다."

달리는 속도는 일정한데 환경에 따라 안정적이기도, 위험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달려 어떤 지점에 도착했지만 지나친 풍경이 아쉽기도 합니다.

"사회적 경험이 적기 때문에 고속도로처럼 길이 잘 닦인 길에서는 안정적인 속도지만, 시내에서는 위험한 속도이기에."(이가영 씨)

"20대 초반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늘 바쁘게 지냈습니다.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빨리 오기는 했지만 주변 풍경을 둘러볼 시간이 없어서 아쉬워요."(미니)

정승환 씨는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작업하는 시간이 하루 대부분"이라며 시속을 120㎞로 측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부하고 싶은 게 많아 시속 200㎞ 정도로 속도를 높이고 싶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200㎞를 자기 속도로 측정한 응답자가 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그래도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이 더 좋다. 성인이 되고 나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고 더 자유로운 것 같아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많아져서!"(김다슬 씨)

◇규정하는 순간 마주 볼 이유가 없다 = 조민교 씨는 속도 대신 '인터벌'이라고 답했습니다. "빠를 때는 아주 빠르다가 느릴 때는 아예 멈추기도 한다"며 "헬스장에서 인터벌 러닝을 하던 중 내 삶과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규정할 수 없는 게 삶이 어려운 이유입니다.

20대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묻습니다. 자주 가는 식당은? 외식 비용은? 채식에 대한 견해는? 실컷 묻고 내린 결론이 고작 이렇습니다.

"20대는 먹는 것만 생각한다. 오직 먹는 생각뿐이다."

최근 넘치는 세대 규정을 보며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규정은 복잡한 대상을 단순하게 분류하고 정리해 인식하는 데 유용한 사고 과정입니다. 어떤 대상을 규정하는 순간 더 마주 보고 고민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수많은 혐오가 규정에서 비롯하곤 합니다. 그 함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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