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온 진영 문화 부족 실감
도서관 강좌가 해법 실마리 돼 동네 역사·문화자원 발굴 추진
점차 생활문화공동체사업 확대
장관상·정부사업 선정 등 성과 환경장터 등 4개 사업 계획 중

예술가의 작업을 가만히 보면 그 안에서 메시지가 느껴집니다. 그 메시지가 지극히 개인적일 수도, 관계지향적일 수도 있는데요. 여기 예술로 지역사회에 활기를 불러일으키고, 쓰임을 잃은 재료를 다시금 생각하고, 창작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 세 차례 예술가와 문화기획자를 만나고 그들의 가치를 되새겨봅니다.

최근 5년 동안 만난 사람 중에 이렇게 활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싶다.

김해 진영읍 서구2마을(옛 명칭 찬새내골)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문화기획자 고지현(41)·김애리(38) 씨를 지난 7일 마을 입구에서 만났다.

이날 인터뷰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홍형숙(46) 씨를 포함한 세 사람은 지난해 '진영희망연구소'를 만들었다. 정주민이 사는 윗마을과 이주민이 아랫마을을 잇고 세대와 세대를 문화를 기반으로 연결하는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문화기획자 첫 도전 장관상이라니 = 고 씨는 2016년 김해 진영으로 이사 왔다. 부산서 살 때만 하더라도 치과에서 15년 동안 일했다.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아이 키우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아이가 커갈수록 문화 인프라와 접근성이 낮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주변 사람들이 다들 그러는 겁니다. 애가 중학교 갈 때쯤 진영을 떠나 이사를 할 생각이라고. 공연이나 전시를 보는 일은 물론 아이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하려니 김해 시내로 가야 하더라고요. 가만히 있는 성미가 아닌지라 건강가정지원센터를 통해 아파트 도서관에 강사를 초청했어요. 반응이 엄청나더라고요. 다들 문화적 갈증이 컸구나 실감했어요."

고 씨는 몇 차례 초청 강좌를 기획한 이후 동네에서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날마다 폭풍 검색을 했다. '생활문화공동체'라는 생경한 단어를 보는 순간 바로 이거다 싶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을 샅샅이 뒤졌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또 물었다.

사업에 도전하고자 필수조건인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과정도 지난해 1년간 밟아 수료했다.

이때 마지막 기획서 발표에서 1등을 했다. 전국에서 260팀이 경쟁했는데 1·2차 심사를 거쳐 장관상을 받다니 다시 생각해봐도 얼떨떨하다.

"결과 발표가 난 작년 12월 3일. 그날 기뻐서 서로 부둥켜안고 뛰었어요. 새벽 4시까지 제안서를 쓰고 또 쓰고 하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치더라고요. 1등을 하니 300만 원이 나왔어요. 상금이 아니라 예비 지원금인데 지역문화 사업의 종잣돈을 마련한 셈이죠."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마음에 김해문화도시센터 문도 두드렸다. 도시문화실험실 프로젝트 진영한림권역 마을이야기 수다 잔치를 비롯해 와야축제와 취향일기 등 각종 사업에 시민연구원으로 참여했다.

▲ 김해 진영희망연구소 고지현(오른쪽)  연구원과 김애리 소장이 김해시 진영읍 서구2마을(옛 지명 찬새내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br /><br />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김해 진영희망연구소 고지현(오른쪽) 연구원과 김애리 소장이 김해시 진영읍 서구2마을(옛 지명 찬새내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문화예술의 힘 마을 속 자양강장제 기대 = 랩을 하듯이 말하는 고 씨 옆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길잡이처럼 말하는 김 씨는 비록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진영연구소 소장다운 면모를 보였다. 늘 누구 엄마로 불리며 결혼 이후 잊힌 이름 석 자. 김 소장이라는 호칭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마을을 움직이는 자양강장제 같은 활력을 준다.

김 소장은 "마을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공연장·미술관에 가는 것만이 문화예술을 영위하는 게 아닌 동네에서 역사문화 자원을 찾고 함께 배우고 가치를 나누는 일이 귀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진영 문화탐정단 사업은 마을 이야기를 토대로 보드게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지난해 코로나19라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대폭 축소해서 진행했다. 이때 보도연맹으로 희생된 강성갑(1912~1950) 선생의 존재도 처음 알았다. 문화탐정단 참여 아이들과 강 선생 흉상이 있는 옛 진영여중 터를 찾기도 했다. 한얼중은 목사였던 강 선생이 1948년 설립했으며 이후 1975년 진영여중으로 이름을 바꿨다. 진영여중은 올해 3월 진영장등중으로 대체 이전해 개교했으며, 강 선생의 흉상이 있는 터는 진영고가 관리한다.

찬새내골에는 17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대부분 70~80대 노인들로 삶의 오랜 터전을 지킨 이들이고, 젊은 세대는 아파트 대단지에 이주해 온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진영희망연구소 3인방은 지난해 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지역문화진흥원 공모 사업에 도전해 선정됐다. 행정에서 부르는 진영 서구2마을, 오랜 세월 주민들이 불러 온 찬새내골을 기반으로 펼치는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에 선정된 결과 올해 1차 연도 사업비로 15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생활문화공동체 사업은 크게 4가지다. 서로 돌봄 전래놀이, 찬새내골 영농조합 행복나눔터 활용 공동체 상영, 환경장터, 민둥산 꽃동산 만들기 등이다. "놀라잡이 김주원 선생님을 모시고 찬새내골서 어르신과 아이들이 함께 전래놀이를 배워보는 것으로 문을 열까 합니다. 창원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만든 놀이터도 개방한다는데 저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시작을 해보는 거죠. 전래놀이를 배우며 노인과 아이들이 서로 교감하고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시간을 지속하는 겁니다. 노인 1명은 도서관과 같다는 이야기도 있는 것처럼요."

떠날 궁리를 하지 않고 동네서 더불어 살고자 스스로 문화기획자가 된 사람들. 그들 에너지로 마을은 벌써 들썩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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