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하 공노조 정치위원장
노조 설립·해직 17년 만에
"공직사회 개혁 되새길 것"

"그때는…. 금방 끝날 줄 알았다. 별문제 없다, 금방 다시 돌아온다고 믿고 있었다."

'금방', '다시'라는 말을 지키기까지 17년이 걸렸다. 지난 12일 '해직 공무원' 불명예를 씻고 경남도청으로 복직한 이병하 전국공무원노조 정치위원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공무원 신분으로 다시 도청에 들어서는 순간, 주마등처럼 지난날이 스쳐갔다는 그는 정년 퇴임까지 남은 6개월 동안 "복직길에 도움을 줬던 이들에게 베풀며, 남은 6개월을 6년처럼 보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1980년 1월 진주시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 위원장은 1988년 경남도로 전입했다. 그는 1999년 도청에 노동조합 전신인 직장협의회가 생길 때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노동 관념이 투철해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직장 동료 4~5명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를 만들었는데, 1명이 오지 않았다. 전화해서 왜 안 오느냐고 물었더니 '출장 나갔던 상사가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아무도 퇴근하지 말라고 해서 대기 중'이라고 하더라. 그 동료는 결국 오후 8시 30분께 씩씩거리며 약속 장소에 왔다. 알고 보니 그 상사는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고, 기다리던 부하 직원들은 '알아서 퇴근하라'는 말을 뒤늦게 들어야 했다고 하더라."

▲ 이병하 전국공무원노조 정치위원장이 경남도청 앞에 서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
▲ 이병하 전국공무원노조 정치위원장이 경남도청 앞에 서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

'공직사회가 더는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은 직장협 출범 다짐으로 바뀌었고, 실천으로 옮겨졌다. 2년 뒤 직장협 2대 회장을 맡은 이 위원장은 직장협을 노동조합으로 발전시켰다. 남들 눈을 피해 지부 출범식을 열었고, 지방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전국공무원노조 경남지역본부장이 되고 나서 맞은 2004년 11월, 이 위원장은 공무원 총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직됐다.

해직 공무원 신분으로 이 위원장은 도내 진보연합과 정당을 이끌었고 선거에 뛰어든 적도 있다. 공무원노조 정치위원장으로서 해직 공무원 복직투쟁에도 앞장섰다.

어느 자리에서도 잊지 않았던 명예회복은 지난해 '공무원노조 관련 해직 공무원 등의 복직 등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며 이뤘다. 정년 6개월여를 남기고 다시 밟은 도청, 마냥 기쁠 줄 알았지만 가슴 한쪽이 허전한 건 어쩔 수 없다.

"해직 기간 임금이 인정되지 않은 점, 해직 당시 직급으로 돌아가는 점 등 특별법 한계도 뚜렷하다. 남은 과제는 일터에서 법·단협 개정 등으로 정리했으면 한다. 몇 년 사이 경찰·소방 공직사회에서도 직장협 출범이 이어졌다. 이들의 노조 설립 길에 해직 공무원들의 오랜 투쟁 세월이 짐이자 두려움으로 자리 잡은 건 아닌가 걱정된다. 미안한 마음이다."

그럴수록 이 위원장은 지난날 공무원노동조합의 슬로건을 되새긴다. '공직사회 개혁·부정부패 추방.' 한국토지주택공사(LH)발 땅 투기 사건이 불거진 요즘, 지난 슬로건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슬로건에 맞게 공직사회가 변하고, 내가 변한다면 그 변화가 도민·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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