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새 두 번 1000여 마리 죽어…5년 새 개체 급증·피해도 확산
야생동물법에 들개 포함 안 돼…피해보상 근거 없어 농가 막막

"김해 진영 본산공단 들녘에 최근 4∼5년 새 들개가 엄청 늘어났습니더. 제발 들개 좀 잡아주이소!"

"몇 년 전부터 양계 농가들은 들개가 닭을 해쳐도 십여 마리 정도고 각자 관리를 잘못 했나 싶어서 신고도 안하고 넘겨왔는데, 점점 들개 피해가 심해지고 있으니 대책을 좀 세워야 되는 거 아입니꺼?"

17일 오전 11시 김해시 한림면 장방마을에 있는 피해 양계장에 들어서니 박동출(75)·김정식(68) 씨 부부와 이웃 주민들, 김호대 경남도의원이 닭 피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때마침 처음 피해 신고를 받고 출동했던 한림파출소 관계자들도 피해 현장을 둘러보려고 다시 발걸음해 한자리에 앉게 됐다. 김해시 축산과 담당자와 정준호 김해시의원, 한림농협 관계자는 이미 다녀간 후였다.

지난 13일 오후 7시께 박동출·김정식 씨는 낮 동안 올려뒀던 8개 양계장 막사 창문을 내려주고 하루 일을 마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닭은 무사했다. 하지만 다음 날인 14일 오전 6시 양계장 막사를 살피던 부부는 땅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참담한 광경을 목격했다. 1개 막사에서 키우던 닭 800마리가 들이닥친 들개 떼에게 짓밟힌 것이다. 이 닭들은 100일 동안 키워 곧 분양을 앞두고 있었다. 6만 마리 닭을 키우는 부부는 최근 두 차례 피해로 2000만 원 상당 손해를 봤다.

들개는 닭장에 쳐놓은 견고한 그물망을 뚫고 들어왔다. 죽지 않은 몇몇 닭은 뒷덜미 털이 헤집어졌고, 다리에 상처를 입어 절룩거렸다. 일주일 전쯤 들개 떼가 닭 230마리를 죽였을 땐 부부가 관리를 잘못한 탓이라고 자책했다. 그러나 두 번째 피해를 당하고 보니 부부는 공론화해야겠단 생각이 짙어졌다.

"33년 동안 촌닭(왕추)을 키워왔는데 최근 4∼5년 새 들개가 엄청 많아졌고, 마을에 종종 보였던 고라니들도 사체로 발견되다가 안 보인 지 오래됐습니더. 지난해 생림면에서도 염소 12마리, 닭 400마리가 당했는데 농가 스스로 관리 잘못이라고 신고도 안했다 하더라고요."

김정식 씨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번엔 닭이 피해를 봤지만 들개가 사람을 물면 어쩔 건데요?"

이웃 주민도 김 씨 말을 거들었다. "본산 공장마다 거의 개 한 마리씩은 키우는데 그 개들이 새끼를 낳으면 방치되는 겁니더. 들판에 나가면 개가 3∼7마리씩 몰려다니면서 사람을 따라오니 위협적인 거지요."

▲ 17일 오전 김해시 한림면 장방마을에 있는 피해 양계장에서 박동출 씨가 들개에게 물린 닭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수경 기자
▲ 17일 오전 김해시 한림면 장방마을에 있는 피해 양계장에서 박동출 씨가 들개에게 물린 닭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수경 기자

주민들 말을 듣던 한림파출소 경찰은 "들개에 물리면 병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동물법)에 들개로 말미암은 피해 보상 내용은 없어 법이 먼저 제정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들개 떼 피해 농가가 많았음에도 법은 아직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상태인 것이 현장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남도의회가 관련 조례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러나 김호대(더불어민주당, 진례·한림) 도의원은 "'야생동물법 모법을 개정해 내용에 들개를 포함시켜야 도의회에서도 조례 개정이 가능하다"라고 판단했다.

덧붙여 "긴급 5분 발언을 통해 현재 시행 중인 '들개 포획 사업' 지원 사업을 더 확대하고, 법 개정 필요성도 촉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 소·돼지만 적용되는 축산물재해보험에 닭도 포함될지 검토 중인데, 포함된다 해도 국비 50%·지방비 25%·자부담 25%인 재해보험을 사육 기간이 100일밖에 안 되는 닭에 적용하기엔 농민 부담이 많은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관련해 김해시 축산과 관계자도 "농가 피해 상황은 안타깝지만 법적으로 보상 근거가 없어 힘든 상황"이라며 "우선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포획업체를 통해 들개 현황을 파악한 뒤 다양한 방법으로 들개를 포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본산공단 공장 밀집 지역에 자리한 양계장을 둘러보고 일어설 때 김정식 씨가 한 번 더 강조한 말이 있다.

"행정에서 들개가 몇 마리나 양계장에 들어왔는지 알아야 한다고 해서 오늘 급히 CCTV를 달았습니더. 우리는 이래 피해 보고 저래 피해 보니 올해는 용돈 벌이도 못하고 망했지요. 이번에 신고를 한 건 앞으로 이런 일이 또 생겨서 다른 농가들도 피해보지 않도록 대책 좀 세워달라고 그런 겁니더."

현재 김해시 관내에서 사육하는 가금 수는 진영읍, 진례면, 한림면, 생림면에 총 198만 2700마리다. 이 중 육계는 21만 1000마리, 산란계 14만 1000마리, 산란육성계 36만 마리, 오리 1700마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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