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전혀 없는 산지개발…기재부, 법 제·개정 논의 불발
산림훼손 등 환경파괴 불보듯…대책위, 지역경제 악영향 우려
형제봉 일대 주민 갈등 고통 "절대 다수 찬성은 여론 호도"
하동군, 사업 강행 의지 여전…주민들 100일 넘게 군청 시위

2020년 7월 11일은 나의 서른 번째 생일이었다. 우리 집 뒷산이자 지리산 남부능선의 끝자락인 형제봉에 케이블카, 모노레일, 산악궤도열차를 놓고 호텔과 미술관 등 위락시설을 건설하겠다는 '알프스하동프로젝트'의 추진을 막고자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가 출범한 날이기도 했다. 우리 마을은 2019년 양수발전소 후보지에 이어 2020년에는 케이블카 정거장 후보지가 됐고, 나는 '하동양수발전소반대대책위' 사무국장에 이어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 사무국장이 됐다. 사무국장이라는 요직을 맡았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해마다 온갖 개발 계획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고, 서울에 살아야 성공하는 줄 알았던 나는 마을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을을 지키는 것이 성공을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2018년 재선 하동군수 공약에서 시작

하동에 산악열차 건설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재선에 성공한 민선 7기 윤상기 하동군수의 공약이었다. 하동은 어느새 '알프스하동'이 되어 있었고, 해마다 보도자료가 나오는 정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러한 대규모 산지개발이 가능한 법적 근거가 없다. 한마디로 이 사업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이야기다. 2019년 4월 15일, 하동군과 ㈜삼호는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수많은 지자체와 기업의 MOU가 그렇듯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2020년 기획재정부에서 코로나 19 대유행 이후 경제 활성화 정책을 위한 '한걸음모델'을 추진했고, 산림휴양관광 활성화 시범사업으로 '알프스하동프로젝트'를 선정하여 6월 25일 첫 회의를 가졌다. '한걸음모델'에서는 '알프스하동프로젝트'를 추진하려고 관련법 제·개정마저 논의과정에 포함했다.

▲ 2020년 11월 14일 한걸음모델 회의장 앞에서 시위하는 주민들.  /배혜원
▲ 2020년 11월 14일 한걸음모델 회의장 앞에서 시위하는 주민들. /배혜원

◇대규모 토목·건설사업 만능주의

나는 누구보다 윤상기 하동군수가 밉다. 형제봉 일대에 2019년엔 양수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2020년엔 산악열차를 놓겠다고 나섰는데, 그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 그것이 무엇이든 대규모 토목 건설 사업을 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일까. '알프스하동프로젝트'는 형제봉 정상에 호텔과 미술관, 산악열차 정류장을 짓고 화개에는 3.6km의 케이블카, 악양에는 2.2km 모노레일을 건설하고, 정상에서는 삼성궁을 향해 12km 길이로 산악궤도열차가 다니도록 하겠다는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다. 일단 건설을 시작하면 산림훼손을 비롯한 막대한 환경파괴와 대기업이 운영하는 호텔과 편의시설 등으로 관광객이 몰리게 되어 지역상권은 오히려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는 것, 민자유치를 통한 사업은 결국 이익보전에 대한 이면계약 등으로 군 재정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온다는 것이 반대운동을 시작한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지역에서 벌어질 대규모 건설사업에 대해 지역민들이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된다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이 아닐까. 윤상기 하동군수를 포함해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오직 주민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갈등을 겪는 것으로 강제로 책임을 떠안는 방식은 근대화 이후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일까?

▲ 2020년 7월 15일 정부서울청사 한걸음모델 회의에서 발언하는 배혜원(왼쪽) 씨.  /배혜원
▲ 2020년 7월 15일 정부서울청사 한걸음모델 회의에서 발언하는 배혜원(왼쪽) 씨. /배혜원

◇군·기획재정부 주민 갈등 조장·방조

기획재정부가 산림휴양관광 활성화를 목표로 '한걸음모델' 과제로 하동의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을 선정해 갈등이 시작된 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신사업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갈등을 해결하고자 시작한 '한걸음모델'은 지역에 아픈 상처만 남겼다. 나는 여전히 2020년 7월 9일 화개면 주민설명회, 7월 10일 악앙면 주민설명회, 10월 29일 사업대상지 현장답사를 포함한 한걸음 모델 5차 회의를 기억한다. 하동군 관계자는 사업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둘러댔지만 주민설명회에서는 주민 간에 고성과 욕설마저 오갔다. 현장 답사를 겸한 한걸음모델 5차 회의에서는 반대의견을 표현하고자 형제봉 정상에 모인 주민들을 피해 답사일정을 변경하고, 집결지인 녹차연구소와 다른 답사현장인 삼성궁에 찬성주민들을 미리 준비시키는 등 하동군과 기획재정부는 오히려 주민갈등을 조장하고 방조했다. 특히 2019년 양수발전소를 한마음으로 막아낸 경험이 있는 형제봉 일대 주민들은 다시 노골적인 갈등으로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하동군수 윤상기는 주민 갈등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다수 언론 인터뷰에서 반대하는 주민들의 목소리에 대해 '일부 환경단체의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고, '알프스하동프로젝트'에 대해 '군민의 절대 다수가 찬성하는 사업'이라는 표현으로 군민 여론을 호도했다.

▲ 올해 1월 14일 악양면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최난주 씨.  /배혜원
▲ 올해 1월 14일 악양면사무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최난주 씨. /배혜원

◇반발 거세자 주민 의견수렴 권고만

'알프스하동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는 2020년 11월 19일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한걸음모델'을 규탄하는 농성을 시작했고, 하동군청 앞에서도 산악열차 백지화를 요구하는 무기한 일인시위를 시작했다. 한파가 시작돼 유난히 추웠다. 주민들은 생업을 팽개치고 지리산에서 여의도를 오가며 싸워야 했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로 2020년 11월 27일에는 11명의 국회의원, 한국환경회의와 함께 한걸음모델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하동군과 기획재정부는 응답하지 않았고, 한걸음모델을 강행한 끝에 12월 11일 기획재정부는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합의된 결론을 도출하지 못함'이었다. 덧붙여 '관련 법률의 개정은 진행하지 않으며','하동군은 조정기구의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향후 원점에서부터 주민들의 의견을 중립적이고 공정한 방법으로 충실히 수렴하고, 주민 간 갈등을 해결할 것을 권고'하였을 뿐이다. 허탈했다. 우리나라의 가장 주요한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기관인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산림청 등 관계부처, 그리고 하동군이 주민을 괴롭혀 얻은 것이 고작 이런 결과일까.

▲ 올해 1월 14일 군청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최지한 씨.  /배혜원
▲ 올해 1월 14일 군청 앞에서 1인 시위하는 최지한 씨. /배혜원
▲ 2020년 7월 11일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배혜원<br /><br />
▲ 2020년 7월 11일 지리산산악열차반대대책위가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배혜원

◇군, 법 개정 불발에도 사업 강행 의사

2021년 3월 19일에는 '알프스하동프로젝트'의 사업자인 대림건설(MOU 체결 당시 ㈜삼호)이 하동군과의 MOU 해지를 통보했다. 법 개정이 진행되지 않아 정상부 개발이 불가능한 이유로 사업성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덧붙여 하동군에 주민 갈등과 환경 민원을 해결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동군은 오히려 다른 사업자를 찾아서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오늘로써 주민들이 하동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지 136일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하동군은 지난 1년간 주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고, 주민의견 수렴을 위한 노력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군수 면담을 요청하는 반대 주민들을 지속적으로 무시하고 돌려보낼 뿐이다.

나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동시에 가진 아름답고 풍요로운 하동에 살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다. 끊이지 않는 하천공사와 도로공사 등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고, 관광이든 인프라든 가리지 않고 대규모 개발사업을 하기 위해 주민 공동체도 함께 파괴하고 있다. '지리산산악열차'는 '산악벽지용 친환경 전기열차'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이번에는 국토교통부에서 추진을 준비하고 있다.

남원시에서 추진 의사를 밝힌 가운데 산악열차라는 악령은 전국을 떠돌아다니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개발과 성장이라는 맹목적인 환상에 가려진 채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과 사라져간 생명을 기억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곳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까? 그 결과로 우리 다음 세대 사람들은 하동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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