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때는 유배 거리 채우려 빙빙 돌고
코로나시대 면세 자격 얻으려 하늘 돌고

"지금 우리나라에는 호박잎 세대와 신문지 세대 그리고 비데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이 땅 신구 세대 간의 생활 경험 차이를 이보다 더 육감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경험이 극명하게 다르니 공감대도 그만큼 약한 그 세대들이 처음으로 경험 하나를 공유 중이다. 코로나 팬데믹!

2020년 초 코로나가 덮치기 직전까지 우리는 기록 하나를 계속 경신하고 있었다. 인천공항 1일 이용객 수!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면서 명절 등 연휴 기간이면 너도나도 비행기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수천 년 동안 반도에서 그리고 해방 후로는 사실상 섬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국경은 곧 한계였다. 드디어 그 한계를 본격적으로 돌파하기 시작했는데 엄청난 장애물을 만났다. 코로나 핵폭탄을 제대로 맞은 국제공항들은 한산하다 못해 황량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다. 과거의 영화는 언제쯤 회복할 수 있을까? 최근 그 열망과 코로나의 기이한 조합이 탄생했다. 비행기를 타고 살짝 국경을 벗어났다가 어디에도 착륙하지 않고 출발 공항으로 돌아와 양손에 면세품을 가득 들고 내리는 무착륙 관광 비행.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모르지만 참 기이하다. 지난 6개월 동안 물경 1만 6000명이 이 목적으로 비행기를 탔고 228억 원어치의 면세품을 샀다는데 그 신기록 요인 중 하나가 면세품이었단 말인가?

조선 시대 형벌은 다섯 종류가 있었다. 태(笞), 장(杖), 도(徒), 유(流), 사(死). 태형과 장형은 때리는 건데 장형에 쓰는 매가 태형에 쓰는 것보다 크니 당연히 더 아프다. 도는 가두는 거라 지금의 징역형과 비슷하고 사는 사형인데 죽은 사람을 다시 죽이는 부관참시까지 몇 종류가 있었다. 유형은 유배 또는 귀양이라고도 하는데 최근 인기를 끌었던 영화 <자산어보>가 220년 전 천주교를 믿었던 죄로 흑산도로 유배되었던 정약전의 이야기다.

유형은 죄의 정도에 따라 연고지로부터 3000리, 2500리, 그리고 2000리 떨어진 곳으로 보냈다. 1리는 4㎞로 환산하니 3000리면 1200㎞이다. 한반도에서는 남서쪽 끝 해남에서 북동쪽 끝 온정까지가 가장 긴 거리인데 직선으로 1000㎞ 남짓이니 이동 경로로 따지면 그 정도 되지 싶다. 하지만 죄인이 이 두 동네에서만 나온다는 보장도 없고 최악의 경우 죄인의 연고지가 반도 가운데면 통치권이 미치는 영토 안에서 절대 3000리를 확보할 수 없다. 그래서 세종대에 실거리는 무시하고 어느 지역이 연고지인 죄인을 어느 거리 유형에 처하면 어느 곳으로 보내는 식의 세트 메뉴를 만들어냈다. 기발하다. 역시 세종이다. 이 편법 아닌 편법의 탄생 전에는 유배 거리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빙글빙글 돌아서 유배지까지 갔다. 왜 이런 웃기지만 웃지 못할 일이 빚어졌을까? 이유는 이 제도가 수입품이기 때문이다. 한반도보다 열 배나 넓은 나라, 중국산이기에 현실성이 없다. 검역 담당 공무원이 잠깐 졸았나 보다.

600년 전 유배형을 받은 이 땅의 죄인은 유배지까지 거리를 채우기 위해 땅을 배회했고 그로부터 600년이 지나 코로나 대유행 시대를 사는 한계돌파 개척자들은 면세품을 살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하늘을 배회한다. 600년 후 이 땅에서 살아갈 이들은 어떤 이유로 어디를 배회할까? 바다가 남긴 했다. 그들은 또 1200년 전과 600년 전의 배회를 얼마나 달리 해석할까? 여하튼 우리는 지금 그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주 특별한 시기를 지나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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