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민주주의 생존과 직결
학력·성별·정규직 여부로 차별
결코 소수만이 겪는 문제 아냐
보수 눈치 보는 민주·국민의힘
결국 찬성할 수밖에 없을 것

정의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이 15년 가까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자, 참다못한 시민들이 행동에 나섰다. 지난달 24일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시작되고서 단 22일 만인 지난 14일 시민 10만 명의 뜻이 모였다. 관련 청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자동 회부됐다.

'차별금지법'은 성별·장애·나이·언어·인종 및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등을 이유로 고용이나 교육·행정서비스 이용 등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별 금지·예방뿐만 아니라 피해 구제, 형사 처벌 혹은 징벌적 배상 등도 포함됐다.

지난 23일 '정의당 차별금지법 제정 실천단'과 창원을 찾은 여영국 정의당 대표를 정의당 도당에서 만났다.

여 대표는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우리 삶과 직결되는 문제이자, 민주주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이제는 정치권이 답을 해야 할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 여영국 정의당 대표가 지난 23일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정의당 경남도당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 여영국 정의당 대표가 지난 23일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정의당 경남도당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국민이 밀어올린 차별금지법 = 여영국 대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여 대표는 "그동안 차별금지법은 2006년 7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입법 추진'을 권고한 이후 보수 개신교계의 강한 반발 등에 막혀 국회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며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10만 명 동의를 얻은 걸 보면 어느 때보다 국민적 여론이 무르익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고 말했다.

앞서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는 한국 사회 차별에 대응하고자 차별 금지를 법률로 제정하는 방안에 찬성한다고 답한 바 있다. 조사는 같은 해 4월 22∼27일 전국 성인 1000명(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을 대상으로 했다.

여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 "결코 소수가 겪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초 대구 '신천지 발' 코로나19 확산 때 얼마나 많은 대구 시민이 거부와 차별을 받았나.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임금 외에 노동조건도 차별받는다. 중대재해사고의 95%가 비정규직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결혼 여부로 여성을 면접에서 차별하고, 학력으로, 지방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취업 과정에서 아무렇지 않게 차별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일어난 공군 성추행 사망 사건, 네이버 직원 사망,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강제 전역당한 변희수 전 하사 죽음 등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의 배경을 추적해 들어가면 차별에 의한 정신적 고통, 우울증 등과 연결된다"며 "자신의 존재를 죽음으로밖에 알릴 수 없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한국사회를 이대로 둘 건가.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되는 문제이자, 민주주의 생존이 걸린 문제다. 반드시 제정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 제정에 거대 양당이 걸림돌" = 여 대표는 차별금지법 제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여전히 거대 양당이라고 했다.

여 대표는 "여당은 노무현 정신, 촛불정신을 계승한다고 말한다. 민주당만 해도 국회 300석 가운데 172석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아직 당론으로 확정하지 않았다"며 "대선을 앞두고 보수 유권자 눈치를 보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애초부터 차별금지법을 반대했다. 이준석 신임대표가 당선 직후 '충분히 분위기 성숙됐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최근에 다시 '시기상조'를 얘기한다"며 "그럼에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원하는 시민 여론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결국 정치권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정치권이 이러한 시민들의 열망에 제대로 답을 해야 할 시간이다"라고 강조했다.

차별금지법은 참여정부 때인 2006년 인권위가 '입법 추진'을 권고하고 2007년 12월 정부 안이 마련되면서 논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 발의와 폐기만을 거듭했다. 18∼19대 국회에서 노회찬·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 김한길·최원식 민주통합당 의원,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를 했지만 모두 회기 만료나 법안 자진철회로 폐기됐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는 아예 법안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제21대 국회에서는 지난해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과 이와 연동한 '10만 국민 청원', 차별금지법과 유사한 뼈대의 '평등법'(민주당 이상민 의원 등 24명 의원 참여)이 국회 법사위에 올려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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