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유일 기숙형 치유공간
학폭 피해 학생 학업 중단 없이
낮아진 자신감·마음 회복 도와
전국서 문의 KTX 등교생도

인구 감소 등으로 경남지역에 폐교가 늘고 있습니다. 경남도교육청은 올해를 '미활용 폐교 재산 감축의 해'로 정했습니다. 지난해 도교육청 행정사무감사에서 도내 미활용 폐교 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발생하는 폐교를 어떻게 잘 활용해나갈지, 경남을 비롯해 전국 폐교 활용 사례를 8차례에 걸쳐 찾아 나섭니다. 지역공동체가 함께 만들었던 학교가 그저 허물어지지 않고, 이제는 독서·예술·치유 공간 등 새로운 지역민의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유일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위한 기숙형 치유센터인 대전 '해맑음센터'. 대동초등학교였던 공간이 2013년 7월부터 학생들의 치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피해 학생들은 센터가 생기기 이전에는 가해 학생을 마주하기 어려워서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센터에서 학업과 치유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됐다.

▲ 대전 해맑음센터 전경과 교실, 기숙사, 식당 등 내부 모습. <br /><br /> /김구연 기자 sajin@
▲ 대전 해맑음센터. /김구연 기자 sajin@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곳 = 지난달 25일 오후 대전 유성구에 있는 해맑음센터를 방문했다. 금요일이어서 학생들이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하느라 분주했다. 단체 기숙사 생활을 하던 학생들은 주말 동안 집에서 보낸다. 해맑음센터 정원은 여학생, 남학생 15명씩 모두 30명이다.

차용복 해맑음센터 부장은 "이곳은 전국에서 유일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위한 기숙형 치유센터"라고 소개했다. 교육부 지원을 받아 (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가 수탁 운영하는 학교폭력 피해 학생 전문 심리·예술치유기관이다. 센터는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으로 낮아진 자신감을 회복하고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돕는 곳이다. 짧게는 2주, 길게는 1년간 센터에서 지낼 수 있다.

차 부장은 "전국에 학교 폭력 전담기관 130여 곳이 있지만, 대부분 교육청이 운영하는 위(Wee) 센터다. 위 센터에서 학생이 몇 차례 상담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못 된다"면서 "학생들이 상주하면서 수시로 치유 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 이곳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 대전 해맑음센터 전경과 교실, 기숙사, 식당 등 내부 모습. <br /><br /> /김구연 기자 sajin@
▲ 대전 해맑음센터 내부. /김구연 기자 sajin@
▲ 대전 해맑음센터 내부. /김구연 기자 sajin@
▲ 대전 해맑음센터 내부. /김구연 기자 sajin@

특히, 학교폭력 피해 학생 대다수는 가해 학생 탓에 두려워서 학교 가기를 기피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장기간 못 가서 유급하고, 학교를 그만둔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 보니 피해자 부모들이 모여서 (사)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를 꾸렸다. 학업과 치유를 동시에 수행하는 시설을 교육부에 수차례 요구했다. 센터에는 연간 60∼70명 학생들이 다녀간다. 개소 이후 지금까지 학생 340여 명이 머물다 돌아갔다. 학생들은 신체 폭행, 금품 갈취, 위협 협박, 언어폭력, 괴롭힘, 따돌림, 사이버폭력, 학교 부적응 등의 피해를 입고 이곳을 찾았다.

◇"마음이 맑아졌어요" = 해맑음센터에서 지냈던 김 모 학생은 '마음의 태양이 맑아져서 좋다'라고 표현했다. 이 학생은 지난해 발행한 해맑음센터 사례집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해맑음센터 문을 두드린 이유가 학교가 너무 힘든 장소였기 때문"이라며 "센터에서 지낸 후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집중하며 지내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교에 돌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웠다고 했다.

장 모 학생도 "늘 방구석에 틀어박혀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던 제가 해맑음센터 친구들과 함께 계룡산을 오르고 암벽등반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놀랍다"며 "학교로 돌아가서 씩씩하게 잘 생활하고 버티면 그 안에서 새로운 배움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내보였다.

이처럼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다친 마음을 치료하고 새살을 키워낸 곳이 해맑음센터다.

학생들은 다니던 학교의 원적을 유지하고 센터에서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한국사 등 공통 기본 교과를 배운다. 거기에다 미술·음악·원예·놀이·동작·연극 등 예술치유, 진로적성탐색·인터넷중독 예방 등의 전문교육, 심리상담, 체험 활동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역사 유적지 탐방, 래프팅, 등산, 봉사활동 등을 하는 체험 활동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 대전 해맑음센터 전경과 교실, 기숙사, 식당 등 내부 모습. <br /><br /> /김구연 기자 sajin@
▲ 대전 해맑음센터 내부. /김구연 기자 sajin@
▲ 대전 해맑음센터 전경과 교실, 기숙사, 식당 등 내부 모습. <br /><br /> /김구연 기자 sajin@
▲ 대전 해맑음센터 내부. /김구연 기자 sajin@

센터 곳곳에 학생들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도 마련돼 있다. 강아지, 고양이, 오리, 닭 등의 동물을 학생들이 돌보고 있다. 학생들이 동물을 돌보면 해맑음센터 전용 화폐 '써니'를 금액대별로 받는다. 다양한 활동으로 '써니'를 모아서, 휴대 전화 이용권, 마트 이용권 등을 지급 받는다.

학생들은 센터 인근 주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마을회관 어르신들에게 캘리그래피로 꾸민 여름 부채를 선물하고, 명절에 송편·만두 등의 음식을 빚어서 드리기도 했다. 어르신들을 찾아뵙는 '할머니 어디가', 어르신 장수 프로그램 등도 진행했다.

마을 이장인 심강백(58) 씨는 "사실 센터가 처음 생겼을 때는 걱정도 있었다. 지금은 학생들이 연극 공연도 보여주고,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 머리 염색, 어르신 사진 찍기 등을 하면서 이웃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서 좋다"고 말했다.

▲ 대전 해맑음센터 복도. /김구연 기자 sajin@<br>
▲ 대전 해맑음센터 복도. /김구연 기자 sajin@

◇"경남에도 치유센터 생겼으면" = 해맑음센터가 전국에서 유일한 곳이다 보니, 다른 지역에도 이런 기능을 하는 공간에 대한 요구가 높다.

차 부장은 "전국에서 정원 30명인 이곳을 찾아온다. 거제, 부산, 해남, 광주, 대구 등 다양한 곳에서 학생들이 온다"며 "교육부가 우리 센터 같은 곳을 더 늘린다고 했지만, 여전히 우리가 유일하다. 경남 등 남부 지역 학생을 위한 센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거제에서 온 한 학생은 매주 초 새벽 5시 전에 일어나서 부산에 가서 KTX를 타고 이곳까지 오느라 녹초가 됐다고 했다.

센터 측은 "학교폭력 피해를 당하면 학교와 학부모는 너무나 외롭고 막막하다. 학교는 가해자 편도, 피해자 편도 아니다. 피해 부모는 우리 애가 이런 일을 당할 줄 몰랐다고 말한다. 성폭력 피해자, 범죄 피해자, 학교 밖 청소년 등을 위한 공간이 있지만,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위한 공간은 사실상 거의 없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을 위한 지원 공간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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