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사는 나라라 업신여기지 않고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인식하길

집에서 아이들과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시청했다. 88 서울올림픽 추억이 있기에 올림픽 개막식은 언제나 기다려진다. 1988년이 되기 전에도 세상에 여러 나라가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은 나라가 있는지는 몰랐다. 개막식을 시청할 때에는 평소에 대형 재난이라도 나지 않는 한 미디어에서 자주 만날 수 없었던 지구 저쪽 편 나라들과도 오랜만에 인사할 수 있어서 반갑다.

방송국에서는 각국의 GDP와 백신 접종률 등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여러 수치를 띄워 주었지만, 올림픽과 메달이라는 개념을 생전 처음 접하는 한 자릿수 나이대 어린이들의 관심은 메달 개수에 쏠려 있었다. "하하하! 저 나라는 메달이 저렇게 없어!" "되게 못 하는 나라인가봐?" 엄마의 잔소리가 반격한다. "우리나라는 체육에 투자를 많이 하니까 메달을 따는 선수도 많지. 우리나라 선수를 응원하는 건 좋아. 그렇지만 메달을 못 딴 나라를 폄하하면 안되잖아? 그리고 한국 메달은 네가 딴 거니? 네가 성취하지도 않은 걸 가지고 남을 깎아내리면 안 돼."

세상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올림픽 메달도 공평하게 분배돼 있지 않다. '위키피디아'에 올라와 있는 표를 보면 미국은 역대 하계·동계 올림픽에서 수여된 총 메달 1만 8854개 중 15%인 2828개를 땄다. 상위 10개국인 미국과 소련,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중국, 러시아, 노르웨이가 역대 올림픽 메달의 절반 이상인 9654개를 가져갔다. 반면 올림픽위원회가 구성된 206개국 중 71개국은 아직 메달이 하나도 없다. 이 중에는 방글라데시, 콩고민주공화국, 미얀마 등 인구가 제법 되는 나라도 포함돼 있다.

필리핀은 1924년부터 올림픽에 참가했고 현재 인구도 1억이 넘지만, 첫 금메달은 이번에야 따냈다. 필리핀 최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역도 선수 하이딜린 디아스는 어려운 가정환경과 훈련 여건을 극복하고 이룬 성취로 화제가 됐다. 베트남은 불과 5년 전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사격으로 최초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고, 싱가포르도 같은 해 수영에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기록했다. 싱가포르와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 국가는 금메달리스트에게 억대 포상을 약속하며 메달 획득을 장려하고 있다. '메달 부국'들의 체계적으로 축적된 훈련 시스템을 쉽게 이길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노력으로나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더 많은 스포츠 영웅이 출현했으면 좋겠다.

지구적 기준으로 보면 이 정도 포상마저도 '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만한 소질을 가진 잠재적 선수 대부분은 자신의 자질을 깨닫지 못한 채 주어진 환경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것이다. 몽족 난민 가정에서 자란 미국인 체조선수 수니사 리의 시상식을 보던 남편이 묻는다. "그런데 라오스에 체조팀이 있나?" 리의 어린 시절 역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인인 리에게는 아버지가 깎아 준 평균대로 훈련해 금메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만일 리가 라오스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북한에서 태어났다면?

우리는 각자의 성취에 대해, 그리고 공동체의 성취에 대해 조금 더 겸허해져야 한다. 메달이 없는 나라, 백신이 없는 나라, 못사는 나라를 업신여기지 않고, 그들에 대해 알아 가고 함께 살아갈 이웃으로 인식하는 것. 아이들이 올림픽에서 이런 것들을 배웠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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