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탄소 없는 마을 목통·의신
태양광·소수력 등 신재생 발전
전기료↓ 마을수입↑ 주민 만족

기후재난은 뿌리 깊은 불평등 문제를 들춰내고 있습니다. 쪽방촌과 아파트, 농촌과 도시, 지구촌 남반구와 북반구가 모두 기후위기를 체감하지만, 그 격차는 큽니다. '기후정의'를 이야기하는 이유입니다. 내년 1월 시행하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기후정의'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온실가스 배출에 사회계층별 책임이 다름을 인정하고, 기후위기 극복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의사결정에 동등하게 실질적으로 참여하며, 기후변화 책임에 따라 탄소중립사회 이행 부담과 녹색성장 이익을 공정하게 나눠 사회적·경제적, 세대 간 평등을 보장하는 것.' 기후재앙에도 간과해서는 안 될 에너지 복지와 공동체가 지켜야 할 가치를 두 차례에 걸쳐 짚어봅니다.

'기후위기'를 불러온 지분에 차등을 둔다면 도시, 대규모 발전기업이 아닌 산골 마을에 책임을 지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기후위기 주범인 산업계가 지난 8월 국회에서 통과된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 하한선(2018년 대비 35%)마저 비현실적이라는 목소리를 낼 때, 탄소 감축과 기후위기 공감대 형성을 위한 노력을 이어오는 작은 마을들이 있다. 지난달 17일 하동군 '탄소 없는 마을' 11곳 중 1·2호로 지정된 화개면 목통·의신마을을 돌아봤다.

▲ 하동 목통마을에 있는 물레방아. 이 마을은 2000년대 초반까지 물레방아에서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밝혔다. /이창우 기자
▲ 하동 목통마을에 있는 물레방아. 이 마을은 2000년대 초반까지 물레방아에서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밝혔다. /이창우 기자

◇태양광·소수력·풍력이 한 마을에 = 하동 나들목에서 경남과 전남을 가르는 경계, 섬진강 변을 따라 가다 보면 그 유명한 화개장터가 나온다. 지리산에서 흘러들어오는 화개천을 거슬러 오르면, 갈라진 물줄기 끝에 각각 목통마을과 의신마을이 있다.

두 마을은 하동군 지원을 받아 곳곳에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두고 있다. 의신마을 입구로 들어서면 2차로 도로 양옆으로 이어진 주택 위 반짝이는 태양광 패널이 눈에 띈다. 이 마을 주민 56가구 중 70% 이상이 각자의 집 옥상에, 지붕 위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두고 있다. 2㎾ 기준 설비 총 설치비용은 약 560만 원이지만 정부·지자체 보조금을 지원받아 자부담 비용은 60만 원 정도다. 정봉선 탄소없는마을협의회 사무국장은 "발전시설을 설치한 가구마다 매달 나오는 전기요금이 절반 이하로 줄어 주민 만족도가 크다"라고 말했다.

마을 꼭대기 산악전문의용소방대 건물 옆에는 40㎾짜리 소수력 발전설비를 짓고 있다. 소수력이란 시설용량 1만㎾ 이하 소규모 수력발전을 말한다. 예를 들면, 작은 개울의 흐름을 이용하는 물레방아도 소수력의 일종이다. 화개천을 끼고 형성된 마을이라 가능한 시도였다. 현재 발전 효율을 올리고자 급수관 인입구를 옮기는 작업 중으로, 내년에는 가동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의신마을과 차로 10분 거리인 목통마을은 좀 더 본격적이다. 마을 중간에 대규모 태양광 패널이 30㎾ 이상 규모로 집중적으로 설치돼 있고, 온 주민이 공동으로 쓴다. 이곳 소수력 발전설비는 99㎾로 실제 가동 중이다. 이 마을에는 소형 풍력발전기도 2대(6㎾) 있다.

정 사무국장은 "의신마을 소수력발전기는 장마기와 갈수기를 빼고 1년에 7개월 정도 돌리는데, 전기를 판매해 한 달에 400만 원 정도의 마을 공동 수입을 올린다"라고 설명했다. 전력통제소에서 지난 5년여간 누적발전용량을 확인해보니, 소수력 149만 3815kwh, 태양광 15만 870kwh에 달했다. 다만, 풍력발전은 단 7kwh로 거의 정상 가동되지 않았다.

정 사무국장은 "의신·목통마을이 완전한 '탄소 없는 마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확히는 에너지 자립도가 높은 마을이라고 봐야 한다"라며 "탄소 감축 정책은 정부 정책의 큰 틀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마을 단위에서 하는 사업은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 하동 목통마을 소수력 발전시설.  /이창우 기자
▲ 하동 목통마을 소수력 발전시설. /이창우 기자

◇"탄소가 뭐고?" = 하동군은 2015년 목통마을을 '육지 최초' 탄소 없는 마을로 지정하고, 현재까지 10곳(목통·의신·단천·범왕·오송·부춘·명사·금남·매계·중기·청학마을)을 추가 지정했다. 기후위기 시대 속에서 마을 단위로 에너지 자립 여건을 조성하고, 천혜의 자연을 유지하는 생태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에너지 자립 기반시설 조성이라는 관점으로만 보면 미흡한 면이 많다. 목통·의신마을이 그나마 낫긴 하지만, 마을 대부분에서는 그만한 신재생에너지 설비도 갖추지 못하고 있어서다.

2018년 꾸려진 탄소 없는 마을 운영협의회가 계속해서 고민해온 지점은 오히려 기반시설 조성보다는 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의 의식 변화다. 공기 좋고, 물 맑은 산골짜기 마을에서 '기후 위기'의 위험성을 실감하는 주민들이 거의 없었던 탓이다. 이들은 올해부터 의신·목통마을 주민들에게 탄소 배출의 위험성을 전파하는 소통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최진기 협의회장은 "주민들 평균 연령이 60∼70대 이상"이라며 "탄소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말하면 '탄소가 뭐고?'라고 되묻는 노인들이 태반이었다"라고 말했다. 정 사무국장은 "처음에는 시간을 들여 기후위기의 개념을 설명해도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라노'라는 답이 돌아오기도 했다"라며 "함부로 나무를 베지 않고, 묘목을 심어 탄소를 포집하는 등,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여러 가지로 노력해야 자식들이 앞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설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공감하지 못하던 마을 주민들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시골 마을이 으레 그렇듯, 분리수거 없이 집 마당에서 쓰레기를 태워 없애던 모습이 일상이었지만, 이젠 그런 모습을 좀처럼 찾아볼 수가 없다. 생각 없이 쓰던 일회용품 사용도 줄었다. 읍내 시장·한의원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어딜 가나 협의회가 제작·배포한 친환경 가방(에코백)을 든 주민들을 볼 수 있다.

정 사무국장은 "그 외에도 어떻게 하면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지 주민들의 창의적인 의견을 모으고 있다"라며 "목통·의신마을을 제외한 다른 9개 마을에도 소통 교육을 계획하고 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하동 의신마을 주택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  /이창우 기자
▲ 하동 의신마을 주택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 /이창우 기자

◇'기후 위기'를 '기후 기회'로 = 또 다른 방점은 관광 활성화와 주민 자립 기반 증대다. 탄소 없는 마을 11곳은 평소엔 조용하지만, 섬진강과 지리산을 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다.

당장 의신마을은 화개에서 가장 사찰이 많았던 곳으로, 서산대사가 출가한 원통암과 통하는 트레킹 코스가 있다. 야생에서 적응하지 못한 멸종위기종인 지리산 반달가슴곰들을 볼 수 있는 '의신베어빌리지'도 여기에 있다. 목통마을은 '친환경 발전'의 전통이 깊은 곳으로, 1970년대부터 물레방아를 돌려 마을의 전등을 켜곤 했던 곳이다. 나머지 마을들도 각각의 특색을 살린 이야기가 있다. 경남도는 2018년 먼저 5개 마을을 경남 대표 생태관광지로 지정했고, 올해 11곳을 추가 지정했다.

운영협의회는 이러한 고유의 관광자원을 '탄소 없는 여행'으로 묶어내겠다는 계획이다. 예를 들면, 관광지를 찾은 손님들을 태울 이동수단으로 전기 버스 2대를 올해 안에 도입할 예정이다. 또한, 관광지 숙박 시설 업주들과 협의해서 편의용품을 일회용이 아니라 친환경 제품으로 제공하는 방편도 고려 중이다. 정 사무국장은 "관광객들이 지금까지 좋은 풍광만 찾아왔다면, 한 번의 여행으로 기후위기 시대 탄소 줄이기에 이바지했다는 효능감까지 제공하겠다는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수익을 다시 탄소 저감 노력과 마을 주민들의 수익으로 순환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탄소 없는 마을이라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작은 마을에서도 각자의 역할을 찾겠다는 책임감을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지난 1월 신년사에서 "기후 위기 대응은 더 미룰 수 없는 숙제"라며 하동 탄소 없는 마을 사례를 확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배재한 경남도 산업혁신국 에너지산업과 주무관은 "지금까지는 마을공동체발전소 혹은 마을 융복합지원사업 등 국가 공모사업에 응모하는 등 지역 단위로 각각 진행해 왔다"라며 "앞으로 '에너지자립마을'이라는 큰 틀에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내년에 연구용역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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