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 남성 과대 대표
도의회 운영 규정·조례 등에
성평등 조항 신설·강화 필요성

아름다운 노래 한 줄기가 들려온다. "저 하늘을 높이 날고 있어/그때 네가 내게 줬던 두 날개로(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 가사 일부)". 그렇다. 사람은 원래 새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날개는 물론 두 개였다. 두 개의 날개처럼 세계의 절반은 남성이고 또 절반은 여성이다. 그 둘이 평등한 날개를 펼 때 우리는 비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에서는 남성 지분이 100%에 육박한다. 전국 광역시도 단체장 17명(이하 최근 공직선거 당선 기준) 모두는 남성이다. 기초자치단체장은 226명 중 남성 218명(96.5%), 여성 8명(3.5%)이다. 국회의원은 300명 중 남성 243명(81%), 여성 57명(19%)이다. 전국 광역의원은 824명 중 남성 664명(80.6%), 여성 160명(19.4%)이다.

우리나라 성별 정치 대표성은 왜 이렇게 일그러져 있을까. 남성과 여성이 각각 절반이라면 정치 영역에서도 남녀가 동등한 양적 지위를 확보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의문들이 와닿지 않는다면 '기울어진 운동장'을 간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공고한 남성 기득권 때문에 여성들의 정치 참여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 경남도의회가 2019년 11월 경남형 여성일자리 관련 전시 및 정책 제안 원탁회의를 하고 있다.  /경남도의회
▲ 경남도의회가 2019년 11월 경남형 여성일자리 관련 전시 및 정책 제안 원탁회의를 하고 있다. /경남도의회

◇프랑스의 성평등 정치 혁명을 보라 = 프랑스는 이 문제를 법으로 해결했다. 2000년 남녀 동수법인 '파리테법(La Parite)'을 통과시킨 것이다. 성별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판단으로 극약 처방을 했다. 이 법이 시행되면서 프랑스 하원의원 선거에서는 여성 의원 비율이 1997년 10.9%에서 2017년 39.6%, 지방의원 선거에서는 1993년 6.5%에서 2015년 50%가 됐다. '성평등 정치'라는 혁명적 대전환을 맞은 것이다.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에도 제47조 4항에 '정당이 국회의원 선거 및 지방의원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각각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권고사항일 뿐이다. 지켜지지 않는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서 여성할당 30%를 권고 사항이 아닌 강제 규정으로 바꾸는 공직선거법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발의는 되지 않고 있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내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등 거대 양당에서 여성 할당 비율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센 이유다.

◇경남 여성 도의원들의 활약 = 여성이 더 세세하고 꼼꼼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남도의회도 그렇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경상남도의회 성인지적 운영 방안 모색을 위한 기초연구' 최종보고서를 살펴보면, 여성 도의원들의 활약이 남성 도의원들보다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의회는 2018년 지방선거 당시 기준 전체 58명 중 남성 50명(86.2%), 여성 8명(13.8%)으로 구성돼 있다. 여성이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 놓여 있다.

그런데 전반기 의회 기간 전체 가결 조례안의 17.7%가 여성 의원 발의 조례로 집계됐다. 조례발의 건수는 여성 도의원 1인당 5.3건, 남성 도의원 1인당 3.9건이다. 평균 발언 수에서도 여성 의원이 8.3회, 남성 의원이 4.2회로 2배가량 높았다. 성평등 정책을 위한 노력에서도 차이가 난다. 전반기 의회 성평등 관련 주제 5분 자유발언은 20회로 남성 도의원 1인당 평균 1회, 여성 도의원 1인당 평균 4.3회 발언했다. 도정질의에서 성평등 관련 주제 질의가 차지하는 비중은 8.5%(30회)였는데 이 중 남성 도의원 1인당 평균질의 수는 1.6회였으며, 여성 도의원 1인당 평균 질의 수는 3.4회로 두 배 이상 높았다. 또 아동·청소년·장애인·노인 등 약자를 위한 조례 제정 활동을 펼치면서 '작은 것을 위한 정치'를 현실화하고 있다.

◇심각성 못 느끼는 남성 도의원들 = 경남도의회 여성 의원 비율(13.8%)은 전국 광역의회 여성 비율(19.4%)보다 낮다. 이는 의원의 86%가 남성이라는 의미이자, 남성이 지나치게 과대 대표돼 있음을 나타내는 지표다. 이 문제를 두고 경남도의회가 지난해 12월 기초용역에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 의원 48.4%가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현재 구성이 적정하다'(12.9%), '지금 이미 많다'(3.2%) 등 도의원 65%가량이 남녀 동수 의회 구성에 관심이 없거나 낮고,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여성 도의원 8명 모두와 남성 의원 8명(28.6%)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답하는 등 응답 의원 전체 35%가 긍정적 견해를 보였다.

'65% 대 35%'라는 수치를 경남도의회 의원들의 현재 인식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인식은 의회 내 상임위 구성에 그대로 반영됐다. 전반기 7개 상임위원회 중 농해양수산위, 경제환경위, 건설소방위 등 예산이나 사업규모가 큰 3개 상임위에는 여성 도의원이 한 명도 들어가지 못했다. 기획행정위(3명)나 문화복지위(3명) 등에 여성 도의원이 대거 배치됐다.

◇도의회 조례·훈령·예규 성평등하게 바꿔라 = 상위법인 양성평등기본법 제25조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위원회를 구성할 때 위촉직 위원의 경우에는 특정 성별이 위촉직 위원 수의 10분의 6을 초과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각종 위원회 성비가 과대 대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경남도의회 위원회 조례'에는 성비 과대 대표 방지 조항이 없다. 제주도의회는 '양성평등 기본조례'를 제정해 상임위원회 특정 성별 과대 대표 방지 조항을 뒀으며 모든 상임위에 여성 도의원 1명이 반드시 들어가게 하도록 했다. 후반기 경남도의회도 상임위별 여성 도의원이 포진해 있지만, 제도화한 것은 아니라 정비가 필요하다.

도의회에 성인지 정책을 총괄할 전문가 1∼2명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도청에는 성인지 정책을 담당하는 기구들이 편제단위에 속해 있다. 반면 집행부 예산이나 정책을 심의하고 견제하는 도의회에는 성인지 담당관이 없다. 이에 내년 지방자치법 개정안 시행으로 정책보좌관을 추가 채용할 때 성인지 전문가를 채용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전국 시도협의회 차원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설문에 '성인지정책담당관이 필요한가'라는 문항이 들어있다.

이 밖에 경상남도의회 입법·법률고문 운영 조례, 경상남도의회 예산정책자문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조례, 경상남도의회 의원 행동강령 조례, 경상남도의회 견학 및 안내 규정, 경상남도의회 일일 명예의장 위촉·운영에 관한 규정, 경상남도의회소식지 편찬위원회 설치 및 운영 규정, 경상남도의회 의원숙소 관리 및 운영 규정 등 조례·훈령·예규 등에 성평등 조항을 신설하거나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희망 쏘아올린 경남도민여성의회 = 제도권 정치 체제 변화와 함께 경남 시민사회 차원의 여성정치에도 지원이 필요하다. 전국 최초로 민주당 광주광역시당이 여성특구를 지정해 여성 30% 이상을 도의원 후보로 공천하거나, 제주여민회가 '성평등마을규약'을 시행하며 여성정치 1번지로 떠오른 것만큼 혁신적인 정책이 경남에도 있다. 사회복지사, 직업상담사, 어린이집 원장, 고등학생, 시민단체 활동가 등 여성 시민이 참여하는 경남도민여성의회다.

지난달 25일 경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도민여성의원 42명은 노인종합상담기관 설치(황순정 도민의원), 한부모 가정 복지급여 개선(강태옥 도민의원), 석탄화력발전소 피해대책(전미경 도민의원), 여성가구 안심 공공임대주택(정상희 도민의원) 등을 제안하며 생활에서 발굴한 정책들이 제도권 정치와 결합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 역시 전국 최초다.

민주당 김경영(비례) 도의원은 이날 여성의회에서 가결된 '경남도민여성의회 구성·지원 조례안'을 도의회에 공식적으로 올려 여성정치 지원 방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조례가 통과되면 경남도민여성의회가 정기적으로 열려 제도권 정치와 결합, 여성들의 목소리를 정치에 담아 정쟁을 넘어선 '작은 것을 위한 정치'를 펼 수 있다.

김 의원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70년 역사에서 여성 정치의 주변화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변화와 개혁도 더디다"며 "장벽을 걷어내고 여성정치 참여율을 높이는 다양한 노력을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끝>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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