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내 지자체 20곳 보도자료
외국·외래·한자어 수두룩
언론도 대부분 그대로 사용
유형별 길잡이 무용지물

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는 정책 추진 상황이나 알리고 싶은 내용을 대부분 '보도자료'로 퍼뜨립니다. 당연히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말로 만들어야겠지요? 그렇다면, 경남 도내 공공 기관은 어떨까요? 외국어·외래어·합성어와 어려운 한자어·행정용어가 얼마나 있는지, 경남도·도교육청과 18개 시군이 9월에 낸 보도자료를 10건씩 살펴봤습니다.

경남지역 지방자치단체 20곳 보도자료 200건을 살펴보니 외국어와 외래어, 어려운 한자어가 한 번이라도 쓰인 비율은 74.5%(149건)로 나타났다. 아예 뜻을 알기 어려운 외국어·외래어가 있는가 하면, 뜻을 헤아릴 수는 있지만 우리말로 바꿔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살펴본 보도자료는 특정 기간에 10건씩만 추렸기 때문에 어떤 지자체가 더 낫다거나 부족하다고 콕 집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우리말 사용에 안일한 인식이 엿보이는 것은 공통적이다.

◇전달력 의문 = 공신력을 가진 보도자료는 기자에게 제공되고, 우리 사회에 보도되는 만큼 용어·표현 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경남도가 지난 9월 30일 자로 내놓은 '道, 스마트·그린특별도 경남 위한 새 정부 전략 과제 제안' 제목이 달린 보도자료는 말 그대로 가관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보도자료는 'G-city', '트라이포트', '메타버스', '국방 MRO', '바이오헬스', 'D.N.A(데이터, 네트워크, AI)', '바이오헬스케어', 'SW', '청년패스', '혁신클러스터', '신경제 벨트', 'R&D', '사천IC~하동IC', '부울경 로컬푸드', 'ICT 연계' 등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남발했다.

네이버·다음 등에서 검색해보면, 이 보도자료에서 나온 외국어·외래어 등이 그대로 보도된 기사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 이 보도자료는 기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누리집에서 볼 수 있는데,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예로 이 보도자료에 나오는 '트라이포트'는 항공·항만·철도를 연계한 것을 말하는데, 정책·행정 배경을 모르면 이해하기 어렵다. 인터넷에서 트라이포트를 검색하면 '카메라 삼각대'도 적지 않게 나온다.

이 보도자료를 작성한 경남도 공무원은 "대부분 정부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용어를 갖고 온 것인데, 앞으로는 보완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국어책임관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정확하게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살펴본 시군 보도자료 속에는 다음과 같이 외국어가 넘쳐 난다. 괄호 안처럼 우리말로 바꿔 쓸 수가 있는데도 말이다. 모두 문맥에 따라 괄호 속 표현으로 바꾸면 된다. 시스템(체계·제도), 컨설팅(조언·상담·자문),네트워크(관계망·연결망), 인프라(기반·기반 시설), 젠더(성 인지·성별), 스탬프(도장), 투어(여행·관광·탐방), 이벤트(행사·대회), 에코백(친환경 가방), 플로깅(쓰담 달리기), 캠페인(운동·홍보·활동), 프로젝트(계획·사업·과제), 모니터링(점검·조사·감시), 원스톱(통합·한 번에), 로드맵(이행안·일정 계획), ICT(정보통신기술), 업사이클링(새 활용), 인센티브(성과보수·특전) 등이다.

한자어는 제고(提高), 고취(鼓吹), 산파(散播), 봉행(奉行), 계도(啓導), 기(期)하다, 중차대(重且大), 선제적(先制的), 일환 (一環), 식재(植栽), 비점오염(非點汚染) 등이 나타났다. 순서대로 높이다, 북돋우다, 흩어지게 하다, 의식을 치르다, 알림·예고·일깨움, 이루어지도록 하다, 중요하고 크다, 먼저, ~ 중의 하나, 심다 등으로 바꾸면 누구나 이해하기 쉽다. 비점오염 같은 어려운 용어는 설명을 붙여야 한다.

또 보도자료에는 'Link 人 합성', '同GO洞樂(동고동락)' 같은 정체불명 조어와 '준공식을 갖고', '제막식을 가졌다' 등 번역 투도 있었다.

◇기준 있어도 몰라 = 국립국어원은 지난 3월 국민이 더욱 편하게 보도자료를 읽을 수 있도록 <유형별로 알아보는 보도자료 작성 길잡이>를 내놓기도 했다. 길잡이에는 보도자료를 만들 때 유형별 예시 등이 나와 있다.

외국어와 어려운 용어 등은 괄호 안에 적되, 별도로 설명을 붙이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도내 여러 자치단체가 외국어·외래어만 쓰거나 외국어를 먼저 쓰고 괄호 안에 우리말로 설명을 넣는 방식과 대조적이다.

특히 길잡이에는 '필수 개선 행정용어 100개', '어려운 한자어 정비 80개' 등도 적혀 있다. 여기에 포함된 외국어·한자어만 바꿔도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보도자료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 보도자료에 외국어·외래어 등이 남발되는 것은 국어책임관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쉬운 용어 개발·보급과 정확한 문장 사용 장려는 국어기본법 시행령에 명시된 국어책임관의 임무다.

도내 공공기관의 한 국어책임관은 "솔직하게 말하면 국어책임관이라고 해도 순화어 안내 공문이 오면 각 부서로 전달하는 역할 정도만 하고 있다"며 "국어 전공자가 아니어서 전문 지식도 부족하고, 순환 보직이라 크게 할 수 있는 부분도 없다"고 말했다.

 

감수 김정대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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