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지 않아도 물건 사들여
티브이 없애고 구매 유혹 차단
불안했던 마음 되레 편안해지고
남의 삶과 비교하지 않아도 돼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많은 시간을 실패하는 데 썼다. 시행 착오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아마도 그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 나는 버리고 나서 또 사는 걸까. 혹시 버리기 위해 사는 걸까, 아니면 사기 위해 버리는 걸까. 가끔은 헛갈린다. 그리고 나는 어김없이 미니멀리스트에 관한 책을 펼친다. 버리고, 사고, 책을 참고한다. 또 버리고, 또 사고, 또 책을 참고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을 꽤 보냈다고 생각한다. 물건을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은 어려웠고, 물건을 늘려나가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필요한 물건을 사러 시장이나 마트, 쇼핑센터에 가는 게 아니라 혹시나 살 물건이 없나 하고 살펴보러 가는 일이 잦았다. 당연히 많은 물건들을 새롭게 사들고 돌아왔다.

그중 충동구매가 다수를 차지하고, 구입한 물건의 반 이상은 한 번 정도 쓰거나 아예 쓰지도 않고 보관만 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어딘가 자리를 차지한 채 먼지만 쌓여갔다. 실내자전거는 아예 옷더미에 묻혀버려 본래의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랜만에 꺼낸 믹서 안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었다.

꼭 필요할 것만 같아 오랜 시간 알아보고, 큰 마음 먹고 구입한 카메라는 10년째 꺼져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특히 냉동실 안에는 언제 사 두었는지 알 수도 없는 무수한 먹거리들이 꽝꽝 얼어붙어 있었다. 더 이상 냉동실 안에 무엇을 넣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차 있었지만 그것들을 꺼내서 먹을 기회는 잘 오지 않았다.

◇소유와 불안 = 나는 왜 집안을 물건으로 채우고, 냉장고 안을 잘 먹지도 않는 무언가로 채우고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런 이유도 떠오르지가 않는다. 다만 이런 생각은 든다. 왠지 소유를 하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랄까. 구입하는 행위 그 자체로 어떤 쾌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구입하고 쌓아둔 것의 대표는 단연 책이다. 책을 구입만 하고 읽지도 않은 게 아니라, 읽지는 않을 거지만 소유하려 구입하였던 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책장에는 읽지도 않은 책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언젠가는 읽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언제까지나 펼쳐보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사이 또 한 권의 책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솔직히 나는 좀 불만이고 불안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물건의 개수는 참으로 많고, 그 물건들을 더 이상 구할 수 없을 때를 생각하면 불안해져 버렸다. 이런 저런 용도마다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물건의 개수가 많아서 불만이고 마땅히 놓을 곳이 없어서 널브러져 있는 것도 불만이며, 그 물건들이 내 곁에 다 없는 것도 불안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틀림없이 새로운 물건이 출시될 때마다 그런 마음에 사로잡혀 버렸다. 지금 쓰고 있는 물건이 멀쩡하더라도, 왠지 불만이었고 불안했다.

◇버림과 편안함 =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은, 책에서처럼 비움이라는 순수한 동기만으로는 이 사회가 우리를 미니멀리스트가 되도록 가만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니멀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의지만으로 불가능하며, 결의만으로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몇 가지 나만의 방법을 실행해 보았다. 그런데 그게 꽤 효과가 있었다. 결의를 아무리 다져도 안되는 것은 안되는 만큼, 차라리 결의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들면 좋다.

우선 티브이를 없앴다. 티브이를 본다는 것은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일이었으며,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며 나 자신을 평가하는 일었다. 더불어 수많은 최신 제품들이 티브이에서 나를 유혹했다. 티브이 안에는 엄청난 내공의 홈쇼핑 채널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잠자리에서 귓가를 맴돌 정도의 중독성 강한 CM송들이 반복적으로 흘러나왔다. 아울러 몰라도 되는 괴롭고 복잡하고 안타까운 뉴스들을 본 뒤, 이어지는 광고 화면을 통해 뭔가 저 물건을 사면 이놈의 스트레스가 날아갈 것 같다는 흐름에 젖어들기도 했다. 보험사의 광고는 불안한 앞날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티브이를 끄면 되지만, 잘 되지 않았다.

티브이를 없앤 뒤 왠지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로 내 삶의 여백을 어지럽게 채우지 않아도 되었다. 같은 맥락으로 스마트폰을 폴더폰으로 바꾸기로 했다. 스마트폰 이용자가 된 후로, 나는 단 한시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나면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보았고, 화장실에 가서도,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도, 운전을 하면서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언제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보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대부분 잊어버려도 될 만한 정보들이었으며, 심지어 몰라도 되는 정보들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지나치게 많은 정보들을 보고 있었다. 무슨 정보가 무슨 정보였는지 기억도 못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정보들을 다 알아야만 할 것처럼 굴고 있었다. 그런데 인터넷이 꼭 필요할 때만 스마트폰을 쓰기로 하니, 생활 전반이 여유로워졌다. 평소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했고, 내 머릿속 정보 창고는 점차 미니멀해졌다.

◇물건 사지 않기 = 마지막으로 실행한 것은 마트와 백화점 등에 가지 않기로 하고, 인터넷 쇼핑 아이디를 모두 없애는 일이었다. 마트와 백화점을 이길 자신이 없으니 아예 안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혹시나 살 것이 있나, 하면서 쇼핑센터를 기웃거리거나 진열대를 두리번거리면서 충동구매하는 일이 확 줄었다. 방바닥에 누워 쇼핑하던 버릇 역시 고쳤다. 나는 꼭 사려고 했던 무언가를 심사숙고해서 사는 게 아니라, 일단 편리하고 인터넷이 싸니까 사고 보자는 식으로 온라인 쇼핑을 했었는데, 그 모든 아이디를 삭제했더니 다시 아이디를 만들거나 결제 정보를 입력하는 것도 귀찮아지고 말았다. 그렇게, 안 사 버릇하였더니 정말 습관이 되었다.

나는 비로소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에 사로잡혔다. 미디어가 찍어낸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지 않고 살아가는 게 미니멀리스트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라고 믿게 되었고, 물건을 자꾸 사게 만드는 원인을 제거해 나간 것이 주효했다. 있는 물건을 줄이는 것만큼 새로운 물건을 사지 않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멈춤 = 어떤 사람은 가진 것이 덜 부끄러울 만큼만 가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가난한 사람보다 가난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진짜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두 말 다 옳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물건을 덜 소유하고 가난을 덜 부끄러워하기에는 장애물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의 욕망을 자극한다. 끊임없이 비교와 평가를 일삼으면서 쉽고 간편하게 소비를 하도록 부추긴다. 과잉 정보의 사회에서 날마다 여러 이유로 쇼핑은 진행된다. 그런 현실을 감안할 때, 진짜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우선 정보의 과잉에서 탈출해야 한다. 선택권이 너무 많은 대형 매장의 진열대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고, 가지고 있는 것들로 충분할 테니 말이다.

당신은 지금 미니멀리스트에 관련된 글을 읽고 있다. 가진 물건을 먼저 비워내고 티브이와 스마트폰과 인터넷 쇼핑 아이디를 없애라는 내용을 거의 다 읽었다. 그리고 창을 막 닫으려고 한다. 잠깐만! 오늘은 이 글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시청과 감상과 읽기를 멈추면 어떨까. 하나의 이야기가 온전히 스며들기도 전에 다른 이야기들로 뒤덮이지 않고, 깊고 온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바로 미니멀 라이프, 간소한 삶의 시작이라고 믿고 싶다.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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