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국어책임관 제도 도입, 2017년 국가기관 등에 의무화
도내 공문서 작성 담당 공무원 대부분 국어책임관 활용 안 해
역할 따른 상벌도 없어 관심밖... 순환 보직에 전문성 떨어져

공공기관이 우리말을 제대로 쓰지 않는 원인 중 하나는 '국어책임관'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국어책임관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2005년 국어책임관 제도를 도입하고 1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사용을 장려하고 알기 쉬운 공공 언어를 개발·보급해야 하는 국어책임관 제도는 무엇이 문제일까요?

앞서 경남 지역 공공기관 20곳 보도자료를 10건씩만 살펴봐도 외국어·외래어, 어려운 한자어 등이 보이지 않는 보도자료는 25.5%에 불과했다. 전체로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공공기관이 쓰는 언어 속에 외국어·외래어·한자어가 남발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보도자료를 만든 공무원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 나온다. 국어책임관이 누군지 모른다거나, 국어책임관과 부서가 달라 폐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이다.

국어책임관은 2017년 3월 국어기본법이 개정되면서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를 두도록 의무화됐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에 1874명이 지정돼 있다. 국어책임관은 정책 홍보를 위해 알기 쉬운 용어를 개발·보급하고, 정확한 문장을 사용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또 국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는 시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하며, 해당 기관의 국어 능력 향상을 꾀해야 한다.

대전시가 매주 한남대 국어문화원에서 받아 모든 공무원에게 공유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자료인 '우리말 소식지' 내용 일부.
▲ 대전시가 매주 한남대 국어문화원에서 받아 모든 공무원에게 공유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자료인 '우리말 소식지' 내용 일부.

◇못 하나, 안 하나 = 경남에서 공공기관 국어책임관 제도는 사실상 '있으나 마나'한 게 현실이다.

부서 간 존재하는 벽이 걸림돌이기도 하다. 도내 한 보도자료 작성 담당자는 "같은 과 계·과장과 내용을 검토하지만, 특별히 국어책임관과 소통하지 않는다. 계·과장도 국어 전문가가 아니어서 내용만 검토할 뿐 단어나 표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여러 공무원도 보도자료 등 공문서 작성 때 국어책임관에게 도움을 얻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국어책임관도 책임감이 부족하다. 한 국어책임관은 "부서 내 공문서는 꼼꼼히 살펴보려고 노력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부서까지 검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시의 노력이 눈에 띈다. 대전시는 지난해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국어책임관 업무 최우수 기관으로 선정됐었다. 2019년 바른 국어 사용을 위해 보도자료와 주요 보고 자료 1900여 건을 사전에 감수한 것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시 국어책임관이었던 문주연 대전시 인사혁신담당관은 "보도자료 등은 대변인실이나 홍보 담당을 통해 외부로 배포되는데, 그전에 먼저 내부 게시판에 공유를 하고, 그러면 실무자와 함께 외국어·외래어 등을 고쳤다"며 "사전에 계획됐거나 정기적으로 내는 보도자료와 보고서 등은 대부분 감수했다"고 말했다.

또 "초창기에는 외국어·한자어 등을 고쳐도 고쳐도 계속 틀렸는데, 지속적으로 감수하면서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올해 대전시는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도록 내부 게시판 등에 매주 '우리말 소식지'를 공유하고 있다. 한 사례를 보면 '악취 발생 우려 및 집중 호우 시 침출수 지하 토양 오염 우려' 문구는 대부분 명사로 구성돼 뜻을 파악하기 어려우니 조사와 어미를 적절히 사용해 이해하기 쉽게 써야 한다고 설명돼 있다. 그러면서 "악취가 발생할 수 있고 집중 호우 시 지하 토양이 침출수로 오염될 수 있음"으로 고쳐야 한다는 점을 덧붙이고 있다.

유영미 대전시 국어책임관(문화예술정책과장)은 "자치구와 행정복지센터까지 모든 직원이 볼 수 있도록 안내하고, 공공 언어 속 일본식 어투나 외국어,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 등을 알기 쉽고 복잡하지 않게 고치려고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근·채찍도 없어 = 한쪽에서는 공공기관 국어책임관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아무런 질책이 없고, 잘했다고 해도 포상도 없어 '당근과 채찍'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국어기본법과 시행령을 보면, 국어책임관은 △쉬운 용어 개발·보급 △정확한 문장 사용 장려 △국어 사용 환경 개선 시책 수립·추진 △기관 직원 국어 능력 향상 시책 수립·추진 등이 임무로 규정돼 있고, 해마다 한 차례 업무 실적과 자체 평가를 보고하게 돼 있는 게 전부다.

역할을 다하지 않았을 때 책임을 묻는 규정은 없다. 이 또한 국어책임관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해 충북도가 매년 진행하는 기초자치단체 종합 평가에 '공공 언어 개선 행정서비스' 항목을 추가한 것이 눈길을 끈다. 국어책임관 제도가 활성화될수록 '당근'을 얻을 수 있어서다. 주민과 소통을 위한 공문서·책자·홍보물 등에 우리말로 바른 언어를 사용해야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충북도는 공공 언어 개선 최우수 1곳, 우수 2곳 시군을 선정할 계획인데, 이 부문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아야 종합 평가 1위를 할 수 있고 성과급도 많이 받을 수 있다.

충북도 문화예술산업과 관계자는 "예를 들면 문화재 안내판 정비를 하면서 외국어, 한자어, 일본식 표현 등을 어떻게 고치는지 평가한다. 단순하게 용어만 바꾸는 개선 효과, 활용·전파 가능성 등도 따진다"고 말했다.

충북도는 오는 12월까지 기한으로 자체 공공 언어 사용 실태 조사도 하고 있다. 보도자료와 누리집, 공고문 등에서 어려운 외국어·한자어, 일본식 표현, 잘못된 표현·표기를 점검해 우리말로 바꾼다는 계획이다.

임병윤 충북도 국어책임관(문화예술산업과장)은 "공공 언어는 일반 국민 눈높이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북도 공공 언어 사용 실태를 분석해 쉽고 바른 우리말을 쓰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성은 숙제 = 도내 여러 국어책임관이 교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스스로도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한 국어책임관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부분을 배워야 하는지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국어책임관은 "전문성이 없고 순환 보직이라 크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국어책임관은 "제도 활성화를 위해 전문 인력을 배정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모든 국어책임관이 '국어 전문가'가 아닌 만큼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 인력을 두는 것도 공공 언어를 개선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충북도, 경기 성남시·포천시, 충남 보령시, 대구시 동구 등의 국어 관련 조례에는 국어책임관을 보좌하는 국어전문관을 둘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회에서는 국어책임관을 돕는 '국어전문관' 도입이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지난해 8월 도종환(더불어민주당·충북 청주시 흥덕구) 의원이 국어전문관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국어기본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처리 과정에서 삭제됐다.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오영우 문화체육관광부 1차관은 "국어책임관은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고 보통 홍보나 문화 쪽 담당 업무자를 지정하고 있다"며 "실질적으로 외래어 남용을 자제하고 올바른 우리말 사용을 장려하려면 보도자료 등을 전담할 수 있는 전문 경력직 등이 필요하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었다.

 

감수 김정대 경남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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