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관 당시 지역 여성경찰 15명뿐
1993년 경남 첫 여성수사관 발탁
경제·여성청소년 범죄수사 전문
업무 자부심…여경 혐오 속상해

9월 경찰청이 '2021∼2024년 경찰 성평등 목표 종합계획'을 수립, 조직 내 여성 경찰 비율을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여성 경찰 등용문이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전국 18개 시도 경찰청에도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1993년 경남경찰청이 여성 수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그때 수사과에 처음 문을 두드린 이가 있다. 바로 박병주(56)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특별수사팀장(경감)이다. 경남경찰의 '여성 시대'를 열어 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지금은 경남지역 여성 경찰관 비율이 13.6%(992명)까지 늘어나면서 조직 내 변화도 따르고 있지만, 그땐 달랐다. 1983년 경남과 울산지역 여성 경찰관이 15명에 불과했던 시절, 박 팀장은 순경 공채로 출발했다. 마산동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남경찰청 여성경찰기동수사반 대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박 팀장은 여성 안전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국무총리·대통령 표창과 여성아동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경찰의 날(10월 21일)을 맞아 박 팀장을 만나봤다. 그에게서 여성 경찰관으로서 삶과 지역 여성 안전 문제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 박병주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장이 20일 오전 경남경찰청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
▲ 박병주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장이 20일 오전 경남경찰청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

◇미스 박, 박 양이란 소리가 싫었다 = 시작은 형부의 권유였다. 운전면허증 갱신을 하러 경찰서 민원실을 다녀온 형부가 여성 경찰관 두 명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근사한 제복을 입고 있는 여성 경찰관을 떠올리면서 그는 순경 공채에 도전했다. 당시 경남과 울산지역에서 근무하는 여성 경찰관은 단 15명. 그 안에서 박 팀장은 '경찰'이 아닌 '미스 박', '박 양'으로 불렸다.

"호칭에서 불편함을 느꼈죠. 아가씨, 미스 박, 박 양…. 여성 경찰관이 너무 없다 보니 그렇게 부르는 분들도 계셨고요. 요즘에는 그런 소리 안 하죠."

여성 경찰관의 업무도 한정적이었다. 주로 내근직이었으며, 그나마 현장에 가까운 업무가 공항이었다. 비행기 탑승하는 여성 승객 몸을 수색하는 일은 여성 경찰관이 맡아야 했기 때문이다. 박 팀장도 사천공항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그사이 첫 아이도 가졌다. 출산 때까지 만삭인 배를 움켜잡고 공항에서 일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출산휴가를 썼지만, 그사이 다른 여성 경찰관마저 임신을 하자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출산한 지 20일 만이었다.

◇경남 최초 여성 수사관 = 박 팀장은 7년 동안 사천공항에서 일한 뒤 변곡점을 맞았다. 경남경찰청이 여성 수사관 제도를 도입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당시 여성 경찰관 업무가 몹시 한정적이었기에 더 넓은 분야로 진출할 기회라고 느꼈다. 범죄자들과 두뇌 싸움을 하면서 전문성을 키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박 팀장은 마산동부경찰서 수사과에서 경제범죄수사 업무를 맡은 뒤 지금까지 줄곧 '수사' 업무를 이어오고 있다.

"사건 수사를 하면 가해자 검거와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 보호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하거든요. 피해자와 그 가족과 친밀감, 신뢰 관계를 형성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여성청소년과에서 수사를 하면서 힘든 적도 많았다. 청소년들이 티켓 다방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듣고 단속에 나서기도 하고, 성매매 사건을 접하기도 했다. 사건 하나하나 마음 아프지 않은 일이 없다. 그는 곱씹어 보면 처음으로 성폭력 수사를 맡았던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엄마는 전국을 떠돌며 장사를 했고, 그사이 아빠가 딸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이었다. 가해자를 긴급체포한 뒤 조사실에서 마주했는데 소름이 쫙 끼쳤다. 박 팀장은 "어린 피해자가 엄마도 없는 공간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하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사건 이후 피해자는 다른 지역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지만,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남은 무거운 기억이다.

경찰이란 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온 그이기에 가끔 불거지는 '여성 경찰관 혐오'를 마주할 때면 속상한 게 사실이다. 박 팀장은 "우리 여성 경찰관이 맡은 업무에 제 몫을 다하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차별적인 시각을 마주하면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 박병주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장이 2019년 '여성아동인권상'을 받고서 팀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박병주
▲ 박병주 경남경찰청 여성대상범죄 특별수사팀장이 2019년 '여성아동인권상'을 받고서 팀원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박병주

◇"시민 도움 필요하다" = 박 팀장은 여성청소년 수사 업무를 가장 오랫동안 해왔다. 그만큼 여성 안전을 깊게 고민한 베테랑 수사관이기도 하다. 특히 지금 몸담은 여성대상범죄특별수사팀에서 마주하는 피해자들은 13세 미만 청소년이거나, 장애인인 경우가 많다.

"증거가 부족할 때가 많아 피해자 진술에 의존해서 수사해야 하는 경우가 잦죠. 그럴 때 피해자 진술 일관성이나 권력 관계 여부 등을 따져 봅니다. 가끔 가해자들이 피해자와 사랑하는 사이였다고 주장하거나, 피해자 탓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사관들이 다방면으로 끈질기게 자료를 찾아내 사건 처리를 합니다."

21일부터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경남경찰청 내 관련 부서들이 바빠질 전망이다. 박 팀장 부서에는 현재 수사관 8명이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스토킹 범죄를 저질러도 경범죄 수준 과태료 부과에 그쳤으나 이제 처벌 근거가 마련됐다.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이 과해진다. 일선 경찰관은 수사와 처벌, 피해자 모니터링 업무까지 담당해야 한다.

"스토킹 범죄는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은밀하게 이뤄집니다. 그만큼 시민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해요. 더 이상 피해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민간-경찰 협력 체계가 구축돼야 해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신고 정신이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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