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민운동가 삶 이해 담겨"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
학교 졸업 직후 사무 경험
꼼꼼함 익히고 시야 확장
40년 건설업 경력 토대로

고성군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설계자·건축주·시공자가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김해 봉하마을의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등을 설계한 승효상(설계자) 건축가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 고성군(건축주)이 주목을 받았지만, 경남지역 작은 건설업체의 꼼꼼한 시공도 있었습니다. 지난 22일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시공자 김철기 ㈜세움건축 대표이사를 만났습니다.

김철기 ㈜세움건축 대표이사는 지난 20일 열린 한국건축문화대상 시상식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는 운이 90%였다며, 설계자와 건축주에게 공을 돌렸다. 하지만 한국건축문화대상 심사평을 보면 '시공'도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는 고성 출신으로 빈민·노동운동을 했던 고 제정구(1944~1999년)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자 한 기념관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설계한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에 참여했고, 고성군이 추진했다. 2019년 12월 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8월 말 준공됐다. 고성군 대가면 유흥리 1만 9892㎡ 터에 454.93㎡ 규모로 지어졌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는 "사회 취약계층, 철거민과 평생 함께한 제정구 선생의 강직했던 삶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건축을 하기 위한 분주한 작업들, 분석, 논리, 무수한 협의들, 그리고 판단과 의지 등 그런 것들이 자연 앞에 수그러짐을 느낀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준공 후 전경. /고성군
▲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준공 후 전경. /고성군

◇비결은 '잘 짓기' = 김철기 대표는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설계자와 건축주(고성군)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하지만,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는 설계자의 의도와 건축주의 적극적인 지원, 꼼꼼한 시공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

김상길 2021 한국건축문화대상 심사위원장의 총평을 보면 사회공공부문 심사에서는 시공 또한 설계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사회적 실천을 가장 훌륭하게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부실 시공이 드러나 좌절된 작품도 있었기 때문이다.

김 심사위원장은 "사회공공부문 심사과정에서 시공사의 부실이 크게 대두되었다"며 "훌륭한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 현장 방문 때 부실 시공이 발견됐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공사가 규모만 놓고 봤을 때 6개월 정도면 끝날 정도였으나, 공사는 생각보다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애초 용접으로 마무리하게 돼 있었던 지붕 설치 작업을 팽창과 수축이 심한 철판의 특성을 고려해 '걸이 공법'을 적용하자고 제안했던 것, 경사가 큰 지붕 안쪽은 보통과 달리 합판을 사용하지 않고 안팎으로 거푸집을 대고 자국과 색이 다르지 않게 하루 만에 작업을 끝내야 했던 것 등 사례를 설명했다.

김 대표는 "설계자로부터 안쪽에서 보는 천장의 콘크리트 줄눈 등 시공이 아주 잘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의도했으나 알려주지는 않은, 단순히 '거칠게'로만 표현된 부분이 매우 잘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 김철기 세움건축 대표가 22일 오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세움건축 사무실에서 '2021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 수상작인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시공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
▲ 김철기 세움건축 대표가 22일 오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세움건축 사무실에서 '2021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 수상작인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시공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은주 인턴기자 kej@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외부에 보이는 녹은 앞으로 5년간 계속 생기고, 그러고 나면 진한 암갈색으로 바뀌어 더 부식하지 않는다.

또 보통 주변에 심은 나무(조경)도 건물을 가리지 않게, 건물보다 작은 것을 심는데 제정구 커뮤니티센터는 그렇지 않았다. 건물보다 키가 큰 백합나무 100그루를 심었다.

김 대표는 "설계자께서 빈민가 지도자였던 제정구 선생의 소박한 삶을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해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공사 현장.  /세움건축
▲ 지난해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공사 현장. /세움건축

◇착실히 쌓은 꼼꼼함 = 김 대표는 부경대 전신인 부산공업고등전문학교(5년제)를 졸업했다. 1977년부터 40년 넘게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다. 그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신세계백화점(옛 성안백화점)을 지을 당시 마지막 현장 소장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곧바로 건설 현장으로 가지 않고, 설계사무소에서 4년가량 훈련을 했던 게 오히려 꼼꼼함을 익히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건설 현장의 기능공은 대부분 일을 구전으로, 하던 대로 배웁니다. 예를 들면 설계는 벽돌과 벽돌 사이 줄눈 10㎜ 간격으로 쌓아야 한다고 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그렇게 못 한다고 안 하려 합니다.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던 경험은 대관 업무와 민원 처리 등 과정부터 건물을 짓고 났을 때 가치 등을 고려하게 하는 등 시야를 넓혔습니다."

김 대표는 이어 "설계도에 있는 모든 선은 낙서가 아니다. 선 하나가 구조고 예술이고, 현장의 법"이라며 "설계를 이해하고 현장에서 일하면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된 시공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2011년 11월 '김해 기적의 도서관'으로 경남도 건축대상제 '은상'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당시 공사 기한도 촉박하고 비도 자주 내렸고, 건물마다 각도 등이 달라 몹시 어려운 공사였다"며 "지금 생각하면 말 그대로 기적적으로 공사를 마쳤다"며 웃기도 했다.

김 대표는 획일적으로 비싼 아파트를 공급하는 주택 정책을 지적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모두가 양복을 입는 것은 아니지 않나. 다양한 삶이 있는 것처럼 대리석이 없어도 욕조가 없어도 살 수 있다"며 "왜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을 대단지로 집단화하는지 모르겠다. 일터와 가깝게, 교통이 불편하지 않은 곳에, 소규모로 필요한 곳에 마련해야 한다. 고급화로 건축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좋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헌 집을 고쳐주는 능력을 사회를 위해 쓰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김 대표는 "도심에도 빈집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40년 넘게 건설업을 하면서 익힌 기술로 어떻게 하면 헌 집을 잘 고칠 수 있는지 진단해주는 그런 일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내 제정구 선생 동상.  /세움건축
▲ 제정구 커뮤니티센터 내 제정구 선생 동상. /세움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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