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방역보다 우선인 게 대체 무언가
사생활이 아닌 범법을 따져야 하지 않나

출근 길. 여느 때처럼 택시 안에서 팟캐스트를 들으며 창밖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악~하는 나의 비명과 함께 택시 기사의 거친 욕설도 함께 튕겨져 나왔다. 옆 차로 승용차가 택시를 미처 보지 못하고 끼어들면서 생긴 일이었다. 승용차도 놀랐던지, 비상깜박이를 켜고 자신의 실수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승용차의 수줍은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도청으로 가는 8차로 도로를 아우토반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전속력으로 달리는 택시 안. 잔뜩 겁에 질린 내가 소리쳤다. "아저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소용없는 외침이었다. 기어이 택시는 승용차를 쫓아갔고, 쌍욕과 함께 운전을 똑바로 하라는 분풀이를 하는 데 성공했다. 화가 풀린 기사는 그제야 내가 생각난 듯 백미러로 나를 힐끔 쳐다봤다. 순간, 나의 분노 게이지는 폭발했다. "당장 차 세워요!" 나의 고함소리에 움찔한 택시가 섰다. 택시기사는 왜 자기한테 화를 내느냐며 도리어 반문했다. 그 물음에 내가 답했다. "사고가 날 뻔했으면 승객 안전을 먼저 물어보고 챙기는 게 우선 아닙니까? 저한테 괜찮으냐는 말 한마디 했어요?" 승객 안전은 뒷전이고 자신의 감정대로 보복운전을 하는 게 맞는 거냐고 따져 물었다. 택시기사에게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라며 택시에서 내렸다.

단계적 일상 완화 시대. 오랜만에 대중목욕탕을 찾았다. 너도나도 대부분 백신 접종을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고민 끝에 직장인이 출근한 시간 오전 9시를 선택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직장인은 없지만 하필 달 목욕을 하는 아줌마들이 모이는 시간이었다. 이미 온탕은 그녀들이 점령한 상태. 예닐곱 명의 아줌마들이 벌이는 수다는 목욕탕 천장에 반사돼 내 귀에 팍팍 꽂혔다. 주거니 받거니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는 그녀들을 보며 비말이 튈까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았다. 그동안 풀지 못한 얘기를 마치 오늘 다 풀고 가겠다고 결심한 듯 끝없이 펼쳐지는 수다 배틀에 더 이상 불안함을 참지 못하고 목욕탕을 나왔다. 몸은 찜찜했고 머릿속은 복잡했다. 옳지 못한 것을 보고도 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카운터 직원에게 물었다. "목욕탕 안에서 대화가 금지되어 있는데, 단속을 안 하나 봐요?" 내 물음에 목욕탕 직원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동안 많이 참았잖아요. 더 이상 얘기를 하지 말라는 말을 못해요." 직원의 대답이 어이가 없었다. 공공장소에서 방역만큼 우선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으며 목욕탕을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 조동연 씨가 자진 사임했다. 10년 전 사생활을 공격 받으면서다. 선대위원장은 나라의 녹을 먹는 선출직 공무원이 아니다. 선거기간 잠시 임명된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생활 검증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이다. 그것도 무려 10년 전 일을 거론한 것이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불륜 시비에 휘말린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이나 검증하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줄리라는 이름의 접대부 출신 의혹을 받는 윤석열 후보 부인 김건희 씨를 파헤치라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 사생활은 검증 대상이 아니라 존중해야 할 인권 문제이다. 설령, 선출직 공직자 사생활이라고 해도 만천하에 드러내서 갈기갈기 찢을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다. 김건희 씨 과거 직업이 뭐가 중요한가? 그보다 훨씬 중요한 건 검사 남편 권력을 이용해 주가조작을 했는지, 검사 사위 배경을 이용해 개발특혜를 받았는지 여부이다. 사생활 검증이 아니라 범법 행위를 검증해야 한다. 사생활보다 훨씬 더 엄격한 잣대로 부당하게 사익을 취득한 공직자에 분노해야 한다. 특권을 이용해 법망을 피한 공공의 적이 누구인지, 흥분하고, 공격하고, 만천하에 가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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