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공연 남다른 관심·애정
건물 4층 통째로 소극장 만들어
지역민 공연 갈증 해소 기여
가야시대 정통·역사성 녹인
무용극 대본·시놉시스 등 작업
"김해 미래 가치 알리는 길"

건물 4층을 통째로 소극장으로 만들어 26년 동안 지역 예술인들에게 무료로 임대해준 사람이 있다. "김해 문화예술을 각별히 짝사랑하고 있다"는 박경용(84·김해시 서상동) 수필가다.

김해 토박이 박 씨는 1992년 아버지가 물려준 김해도서관 옆 땅에 4층 건물을 짓고 4층 전체를 소극장으로 만들었다. 김해지역 최초 순수 민영 소극장이다. 소극장을 건립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높이(층고)인데, 일반 사무실 높이의 1.5배 이상 높게 만든 무대여서 지역 예술인들이 놀라워했다고 박 씨는 회고했다.

당시 이름은 가인소극장이었지만, 가인소극장을 운영했던 극단 대표가 2018년 '미투' 가해자로 구속되면서 소극장 문을 닫았다. 이후 2019년 5월부터 '회현동소극장' 이정화 대표가 소극장을 리모델링하고 새로운 무대 공연장으로 탈바꿈시켜 운영하고 있다. 소극장 무료 임대는 박 씨 사정상 2019년부터 멈췄다.

▲ 김해 문화예술을 각별히 사랑하며 지역과 공생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김해 토박이 박경용 씨.
▲ 김해 문화예술을 각별히 사랑하며 지역과 공생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김해 토박이 박경용 씨.

박 씨가 문화예술 환경이 척박했던 김해에 소극장을 만든 이유는 무대 공연을 하고 싶어하는 지역민들을 위해서다. 대학 시절 그는 연극 동아리에 참여하고 연극 오디션을 볼 만큼 무대 공연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그 열정은 지역민들이 무대 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 13일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십수 년 소극장 무료 임대'라는 공생 가치와 선한 영향력을 설파하리라 예상했던 판단을 밀어냈다. 김해는 지역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말을 먼저 꺼냈다.

"김해는 가야시대 정통성과 역사성을 살리는 것이 미래를 살리는 길이고, 본래 가야로 돌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길이다."

그는 가야권이 가진 독특한 특성으로 국제성, 예술성, 배려성, 민주성 네 가지를 손꼽으며, 이 정신을 현재에 잘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성은 김해시가 김수로왕과 인도 허왕후 인연을 토대로 인도와 교류하는 국제 공존 가치를 말한다. 그는 이 지역 가치를 계속 지키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예술성은 "구지가뿐 아니라 한반도 예술의 시원은 가야이며, <동이전>에서 한반도 대중가요의 시원은 김해라고 했다"는 점을 들었다. 가야 문화를 사례로 배려성을 제시했다. 가야는 부족국가를 공략해서 정복하거나 복속시키지 않았으며 정치집단을 배려했다고 한다. 그는 흉년이 들었을 때 곡식을 나눠줬던 가야 정신이 담긴 <김 동지 박 동지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기도 했다.

민주성은 김수로가 왕이 되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9개 지역 지도자(칸)를 지배·복속하거나 그들에게 군림하지 않았으며, 다수결로 추대를 받아 왕이 된 점이 민주적이라는 관점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현재 김해 모습은 어떨까. 그는 "지방자치를 하려는 방침은 긍정적이나 경제적 지방자치는 아직 멀었다"고 평했다.

언론의 중앙집권화에도 쓴소리를 했다. "유럽 선진국에도 중앙지가 있지만 지역언론을 싹쓸이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서울지역 언론이 지역 언론을 싹쓸이하는 모습이 보기 흉하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지역언론 정책을 장려했던 점을 기억하면서 "지역언론이 왜 중요하냐면 지역 현장에서 분석 능력이 뛰어나고 중앙으로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역 문화 육성도 중앙지가 하지 못하므로 지역언론이 큰 사명을 가지고 힘을 키워 지역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그가 추진하는 일들은 지역 문화예술인들과 공생하면서 김해 문화예술 가치를 드높이는 내용들이다.

김해문인협회 고문이며 김해스토리텔링협회 회장을 맡았던 그는 지난해 구지가문학상 제정에 힘을 기울였다. 구지문학관을 설립해 관광지로 만들면 좋겠다는 희망도 밝혔다.

▲ 박경용 씨는 자신의 건물 4층 전체를 통째로 소극장으로 만들어 1992년부터 2018년까지 약 26년 동안 지역 예술인들에게 무료로 임대해줬다. 2019년부터는 '회현동소극장'이 새로 들어섰다. /이수경 기자
▲ 박경용 씨는 자신의 건물 4층 전체를 통째로 소극장으로 만들어 1992년부터 2018년까지 약 26년 동안 지역 예술인들에게 무료로 임대해줬다. 2019년부터는 '회현동소극장'이 새로 들어섰다. /이수경 기자

가야 문화에 심취해 문화예술에 가야 문화를 녹이는 작업도 한창이다. 그는 가야 이야기를 담은 무용극 대본을 써서 최선희가야무용단과 함께 오랫동안 작품을 만들어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스토리텔링 무용극 <가야! 가야! 가야!>를 김해서부문화센터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가야시대 춤 '가야무'를 현대화해 선보이고자 시놉시스(간단한 줄거리)도 완성했다.

이와 별개로 홍익정신을 기반으로 한 박이 장군 이야기를 그린 뮤지컬 시놉시스도 준비 중이다.

요즘 그가 골몰하는 생각은 '김해를 알리는 일'이다. "부울경 메가시티에 공감한다. 김해를 알리려면 가야 문화를 세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 상당한 확신을 갖고 있다. 인도 정부와 손을 잡아야 한다. 김해 지역을 알리고 지역민이 공생할 길을 만들어가는 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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