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실 운영하며 생계 수단으로 인물화 시작
올 초 감사·응원 담은 손편지와 그림 선물
"청와대 결정 고마울 따름…묵묵히 작업할 것"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유명해져 있었다'는 영국 시인 바이런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청와대에 걸린 문재인 대통령의 공식 초상화를 그린 창원지역 화가 김형주(41) 작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창원에서 화실을 운영하는 김 작가는 올해 초 직접 그린 문 대통령 초상화를 "임기 마지막까지 힘내시라"는 응원이 담긴 손편지와 함께 우체국 택배로 청와대에 발송했다. 퇴임 전 선물이었다. 그림을 보낸 지 몇 개월이 흐르고 나서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그린 초상화를 문 대통령 퇴임에 맞춰 '역대 대통령 초상화'로 건다는 소식이었다. 이후 김 작가 초상화는 두세 번 보정 작업을 거쳐 청와대 본관 세종실 전면 벽면에 걸리게 됐다.

▲ 김형주 작가가 문재인 대통령 초상화를 완성하고 촬영한 작품 사진. /김형주
▲ 김형주 작가가 문재인 대통령 초상화를 완성하고 촬영한 작품 사진. /김형주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 시작 전 자신의 초상화를 처음으로 공개하고 나서 김 작가에게 연락했을 때 그는 이미 수많은 언론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어서 직접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서 서면 인터뷰를 하기로 했고, 지난 8일 새벽 그가 메일로 답장을 보내왔다.

-갑자기 많은 관심을 받았을 텐데 지금 심정은 어떤가.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현 상황을 문득 떠올려 본다. '지금 벌어진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익숙하진 않다. 살면서 지인들과 기자들 전화를 며칠 만에 이렇게 많이 받아본 적이 없다. 스스로는 얼마나 부족한지 잘 알지만, 작품에 관심을 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대통령께서 제 작품을 직접 소개해주는 꿈같은 영상을 봤다. 이런 소개 자체도 이례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가문의 영광은 물론이고, 작가 인생 최대의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인터뷰 답변지를 쓰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있다. 기쁜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부터 더 발전해야 할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김형주 작가.

-사진으로 초상화를 보니 대통령 미소가 '모나리자'급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릴 때 어떤 점에 중점을 뒀는지?

"모나리자는 가장 좋아하는 초상화 중 한 작품이다. 초상화에 입문했을 때 처음부터 모나리자를 연구해 작품에 접목한 건 아니다. 닮게 그리려고 오랫동안 작품 완성도를 높이다 보니 색과 색이 다른 경계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게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모나리자에서 '스푸마토' 기법이었단 걸 나중에 알았다. 그러면서 어려웠던 점은 얼굴의 해부학적 접근과 표현이다. 단순히 사진의 겉만 보고 적당히 따라 그리는 게 아닌, 얼굴 뼈와 근육을 떠올리며 미세하게 관찰되는 부분도 놓치지 않고 표현하는 게 어려웠다."

-유화 물감을 쓴 건가?

"캔버스 바탕 칠은 젯소와 아크릴 물감 혼합으로, 건조된 후에는 모두 유화물감으로만 작업했다. 머리카락처럼 얇은 붓 터치로 세밀하게 그리는 걸 좋아한다. '세계에 존재하는 좋은 재료를 모두 구입해보자'라는 생각에 다양한 붓과 물감, 보조제, 캔버스 천을 수백 종류 사서 경험해 보고 저에게 맞는 걸 찾은 결과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무엇보다 '경험'을 중요시한 작가로 기억한다. 저 역시 그게 가장 현명하다고 생각해 실행했다."

김형주 작가 작업실에 걸려 있는 초상화들.

-배경색이 초상화와 잘 어울린다.

"대통령 초상화뿐 아니라 제가 작업하는 모든 '유화 초상화'는 네 종류의 물감만 사용한다. 색상 수가 적어 다양하게 섞어볼 색도 없다. 얼굴과 배경에서 사용하는 물감이 같다 보니 어울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 만들어진다. 보통 인물과 배경이 따로 노는 이유는 자신만의 원칙 없이 초반부터 너무 많은 종류의 색을 사용했을 때라고 생각한다. 색 조합을 연구하면서 수백 종류의 물감 중 저만의 물감 네 개만 잘 골라도 상상 이상으로 풍부한 색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경험했다."

-주로 초상화를 많이 그린다고 했는데, 초상화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

"현재의 제 처지에서 판매가 잘 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만일 초상화가 아닌 다른 분야 작품으로 전시회를 연다고 가정하면, 일단 작품 콘셉트를 잡기 위한 시간부터 많이 걸릴 것이고, 작품 준비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간 생계도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준비해서 전시회가 끝나면, 다 팔릴 수도 있고 한 점도 못 팔 수도 있다. 이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지금은 초상화만 작업한다. 그렇지만, 언젠가 마티스의 정물화, 김환기의 우주와 같이 전혀 다른 장르를 선보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초상화도 좋지만 그런 아름다운 작품들은 또 다른 감성을 크게 자극한다. 수집가 중에 어지간한 화가 이상으로 날카롭게 작품 가치를 평가하는 분들이 많다. 저는 스스로 정말 준비가 잘 되었다고 판단할 때 초상화와 다른 분야의 작품을 경매에 출품할 것이다."

김형주 작가가 쓴 책 표지.

-혹시 초상화를 그려준 사람 중에 알려진 인물이 있을까?

"비공개 주문 비중이 높아 비서실을 통해 주문이 들어온다면 그냥 '어떤 기업 회장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공개적으로는 SBS <온에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집에 사용될 대형 초상화를 의뢰받아서 그린 적이 있다. 또 외국 유명 운동선수가 방한했을 때, 초상화를 그려서 특집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 외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의 감독에게 배우 네 명의 선물용 초상화를 의뢰받은 적이 있고, 모 기업 사장단을 20점 정도 그린 적도 있다. 모두 인터넷을 통해 의뢰가 들어왔다."

-그림은 언제 시작했나?

"고2 말에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7년 정도 입시학원에서 수험생들을 가르쳤다. 미술대학 입시제도가 바뀌자마자 학원을 그만두고 제 작업에만 전념했다. 당장 '팔리는 그림'을 그려야 화가의 삶이 유지될 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연필초상화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2007년부터 그린 연필초상화가 4000점 이상 된다."

-인상 깊은 초상화 중 렘브란트 자화상과 윤두수 초상화가 떠오르는데, 초상화에서 추구하는 김 작가의 예술세계가 있다면?

"현재 제 초상화는 스푸마토에 기반한 부드러움을 유지하면서도, 면을 분명하게 쪼개서 입체감을 더 풍부하게 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구를 하나 그리더라도 매끄럽게 그린 구와 붓 터치가 큼직하게 그린 구를 비교해보면, 후자가 훨씬 입체감이 좋다는 걸 알 수 있다. 렘브란트뿐 아니라 벨라스케스, 할스, 사전트의 초상화를 보면 나이에 따라 작품이 변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 초창기 젊은 나이에는 부드러우면서 사실적 표현에 기반해서 작품을 완성한다. 화가의 나이가 들수록 붓 터치가 살아난다. 그러면서 작품의 개성은 더 살아난다. 저 역시도 많은 경험을 쌓아 사진 출력한 거 같은 초상화가 아닌, 개성이 넘치는 작품으로 발전시키려 한다. 어떤 화가들은 '이미 지난 역사상 초상화 작업에서 나올 수 있는 표현은 다 나왔다'라고들 한다. 이는 다른 구상 분야도 마찬가지다. 크게 보면 저도 그 주장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아직 어떤 한 자리에는 자신만의 표현 기법을 개척할 수 있는 자리가 분명히 생길 거라 생각하고 작업한다."

김 작가는 아직 자화상을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최근 TV나 언론에 알려져 관심 받는 것도 잠깐이라고 그는 받아들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조용하고 묵묵히 작품 경험을 많이 쌓을 거라고 다짐했다.

화가가 직업인 만큼 그는 재료나 기법을 많이 연구하고 싶고, 취미로 명화 연구·저평가된 옛 화가 발굴·남이 그림 그리는 영상 감상하기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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