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예술이다 (19) 오은영 가야금 연주자

'줄의 어울림으로 소리를 안다.'

화현지음(和絃知音)을 추구하는 국악인 오은영(54)은 가야금 연주자이다. 그가 대표로 있는 연주단체 이름도, 국악 청소년을 양성하는 공간 이름도 화현지음이다.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던 오 대표가 최근 초청 공연 무대에 자주 등장했다. 3월 함안에서 열린 40회 경남연극제 폐막공연 여는 무대에도, 5월 진해문화센터에 마련된 전시 식전행사에도 참여했다. 지난 19일 함안 가야읍에 있는 작업실에서 오 대표를 만나 40여 년 동안 어루만진 가야금에 얽힌 실타래를 풀었다.

 

10살에 처음 접하게 된 국악기
중학교 때 이미 전국대회 두각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서 일해

◇10살에 처음 만난 국악기 = 가야금 소리가 좋았다. 마산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오은영은 동네친구들이 피아노 학원에 갈 때 다른 길을 택했다.

"유아교육과를 가고자 했던 언니가 피아노를 배웠는데, 부모님 이야기로는 언니가 하는 것을 보고 바로 따라했다고 하더라고요. 음악적 소질을 확인하고는 혹시라도 피아노를 하면 나중에 유학을 보내달라고 할까 봐 한국에서 지내면서 특기를 살릴 수 있는 가야금을 접하게 해주셨어요."

중학교 1학년 때 KBS가 주최한 전국 청소년국악제에서 1위를 했고, 마산 성지여고를 졸업한 그는 1988년 경북대 국악과에 들어갔다.

"진해 군항제, 진주 개천예술제 대회에 주로 나갔고 전국대회는 중1 때 처음 나갔는데, 1등을 해서 얼떨떨했습니다. 끊임없는 연습 끝에 실력을 점차 인정받고는 자연스럽게 전공으로 삼았지요."

1991년 대학 졸업 전에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에 뽑혀 부수석까지 지내며 20년 넘게 그곳에서 일했다.

▲ 오은영 화현지음 대표가 3월 함안에서 열린 40회 경남연극제 폐막식 식전행사에서 가야금 연주를 하고 있다.  /화현지음
▲ 오은영 화현지음 대표가 3월 함안에서 열린 40회 경남연극제 폐막식 식전행사에서 가야금 연주를 하고 있다. /화현지음

◇어울림 봉사 공연 14년 = 국악 공연 문턱을 낮췄다. 오은영은 함안으로 오기 전 부산에서 오래 연주활동을 했다. 한얼악회 소속 국악인들과 봉사 공연도 14년 정도 다녔다. 밀양 오순절평화의마을, 부산 송도에 있는 재활시설 등을 찾아 노인·장애인과 국악으로 만났다.

"공연장에 오지 못하는, 그러니까 쉽게 닿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직접 찾아갑니다. 이동이 어려운 척수장애인들이 저희 소리를 듣고는 누워서 장단에 맞춰 손발을 조금씩 움직이며 춤을 추던 모습이 잊히지가 않습니다."

국악교육이 필요하다고 하면 어디든 달려갔다. 2004년에는 경남음악교사연구회 연수강사로 활동했다. 말 그대로 선생님들의 선생님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학교 교육 안에서 음악은 소수, 그중에서도 국악은 점점 소수를 넘어 소외라고 여겨질 만큼 비중이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나라는 멸망해도, 그 나라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 스스로 등한시하고 있지 않나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방문 공연 봉사·교육활동도
"시각장애인 제자 기억 남아"
연극·무용 등 장르 협업 활발

◇잊지 못할 시각장애인 제자 = 국악으로 맺은 인연 중에 잊지 못할 사람이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한 제자를 잊을 수가 없다. 부산에 있는 특수학교에 다니던 아이를 중학교 때 만나 6년 정도 가야금 연주 지도를 했다. 훌쩍 자라 지금은 대구대 특수교육과에 다니며 임용 준비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녹내장을 앓고 시력을 점차 잃어가던 친구였습니다. 처음에는 제 손 위에 학생 손을 얹고 가야금 연주를 합니다. 그다음에 학생 손 위에 제 손을 얹고 반복합니다. 배우는 데 5배 정도 시간이 걸립니다. 배우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한 번 익힌 소리는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소질을 가진 친구였어요."

오 대표가 달고 사는 말이 있다. "국악은 5살부터 80살까지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전 국민이 국악기 하나씩은 했으면 좋겠다"고.

가야금을 배우고 싶다고 찾아온 70대 어르신도 소중한 인연 중 한 사람이다.

"가야금 수업에 참여한 여러 사람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분이셨어요. 총명한 어르신이셨어요. 듣고 외우고 제법 잘 따라오셨지요. 알고 봤더니 글자를 모르시더라고요. 본인이 내색하지 않으시기에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저도 다른 방식을 고안해 악보를 읽게 만들어 드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는 사단법인 경남여성교육연구원 이사를 맡고 있기도 한데, 가야금 입문자를 위해 아오로연주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아오로'는 '아울러'의 옛말로 서로 어울리며 소리를 안다는 뜻을 담았다.

"나이 불문·성별 불문·국적 불문 가야금에 관심 있는 이들로 배움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있지요. 합주는 협동에 기초하는 것이니 자신의 소리만 앞세우면 나아갈 수 없음을 함께 알아갑니다."

▲ 오은영 가야금 연주자가 19일 함안에 있는 화현지음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 오은영 가야금 연주자가 19일 함안에 있는 화현지음 작업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연극·무용인과 협업 나서 = 가야금 연주자 오은영은 최근 연극인, 무용인 등 타 장르 예술인과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작업실도 자택도 함안으로 터를 잡으면서 극단 아시랑과 연을 맺었다. 객원 단원으로 음악디자이너 역할을 하기로 했다.

"제가 부산시립관현악단에 있을 때 시립예술단 차원에서 총체극을 여러 차례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극단에서 시대극이나 막을 연결하는 요소에 국악이 필요한 경우에 협업하는 거죠. 동선도 파악해야 하고 또 다른 묘미가 있지요."

그는 올해 40회 경남연극제가 3월 함안에서 개최되면서 폐막식 식전 행사에서 독주를 30분 정도 보였다. 이어 화현지음 청소년 가야금연주단이 6월에 열리는 경남청소년연극제 여는 마당에 오를 예정이다. 지난 3일에는 진해문화센터에서 열린 전시에 앞서 무용인과 협업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국악 매력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 '화현지음' 유튜브도 개설해 만화·영화·드라마 수록곡 등 익숙한 음악을 가야금으로 선보이는 영상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오은영은 국악을 아끼는 이들이 늘어갈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 가야금을, 그리고 사람을 어루만지는 삶을 아낀다.

/박정연 기자 pjy@idomin.com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