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 돌아가며 밤새 소리쳐
욕설·소음 마을 노인 건강 위협
주민들 자제 당부에도 우격다짐

양산시 평산마을 주민들이 잇단 보수단체 집회로 말미암은 피해를 호소하다 직접 시위자들에게 자제를 요구하고 나섰지만 시위자는 집회를 강행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전후로 평산마을에는 보수단체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차량에 설치한 확성기를 이용해 애국가와 국민교육헌장, 군가 등을 반복해서 마을 방향으로 틀고 있다. 한 단체는 11일부터 30시간 연속 집회를 강행했고, 주민들은 밤에도 소음에 시달려야 했다. 또 다른 대표는 문 전 대통령 귀향 다음날인 11일부터 사저 앞 도로에서 숙식을 하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7∼8개 단체는 돌아가며 집회를 하고 있다.

평온한 마을에서 살아온 고령의 주민들은 온종일 소음에 시달리며 불면증과 스트레스는 물론 식욕 부진으로 말미암은 신체 이상까지 호소하고 있다. 소음도 문제지만 집회 참가자들이 성적인 표현을 비롯해 욕설을 해대는 바람에 정신적인 충격도 크다.

이에 주민은 마을 곳곳에 '당국은 주민생활권을 보장하라', '집회로 노인이 병들어간다', '소음으로 농작물이 성장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적은 펼침막을 내걸었다. 앞서 일부 주민은 경찰에 집회 금지를 위해 시설보호 요청을 하기도 했다.

▲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양산 평산마을이 매일같이 보수단체의 고함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24일 욕설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하는 평산마을 주민들에게 시위자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현희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양산 평산마을이 매일같이 보수단체의 고함과 욕설에 시달리고 있다. 24일 욕설을 자제해달라고 요구하는 평산마을 주민들에게 시위자가 격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현희 기자

주민들은 지난 23일 70대 중반에서 90대 초반 주민 10명이 신도시 병원 2곳에서 정신과 심리 상담을 받는 일까지 벌어지자 마을 회의를 열어 1인 시위자에게 욕설을 자제하고 과도한 확성기 사용을 줄여달라고 요구하기로 했다.

24일 오후 5시 일과를 마친 주민 20여 명은 1인 시위자를 만나 마을 회의 결정 사항을 알리고 자제를 거듭 요청했다. 주민들은 '욕설은 이제 그만', '시끄러워 못 살겠다'는 팻말을 들고 집회장소까지 함께 걸어갔다.

마을 이장이 "욕설 없이 논리적으로 집회를 해달라"고 요구하자 시위자는 "정당한 집회 자유를 방해한다"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주민들은 전날 병원에서 받은 진료소견서까지 보이며 소음과 욕설로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다고 자제를 요구했지만 시위자는 "문재인은 간첩"이라며 욕설을 섞으며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시위자가 주민에게 '빨갱이가 됐다'고 말하자 고성이 오가며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큰 충돌로 이어지지 않았다.

마을 이장은 30분가량 대화를 시도했지만 막무가내로 욕설을 외치는 시위자에게 원하는 답은 듣지 못했다. 오히려 시위자가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경찰과 문재인이 주민을 부추기고 있다"고 하자 주민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70대 한 할머니는 "밤낮으로 이상한 노래를 틀어대고 욕설을 하는 바람에 보고 싶은 손자도 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며 "집안일을 하다가도 갑자기 고함이 들려 깜짝 놀라는 일이 다반사"라고 말했다.

주민들이 떠난 뒤에도 시위자는 욕설을 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경찰은 거주자나 관리자가 시설이나 장소 보호를 요청할 때 집회나 시위 금지 또는 제한을 통고할 수 있다는 관련 규정을 근거로 내달 5일까지 야간 방송을 금지한 상황이다. 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집회가 반복되고 있는 데다 시위자들이 주민과의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어 주민들 피해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현희 기자 hee@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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