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경남을 읽다 (11) 이광수의 〈무정〉과 김정한 〈뒷기미나루〉에서 읽는 삼랑 뷰(view)

밀양강·낙동강·바닷물 모여
나루터 생기고 기차역 놓여
이광수 소설 〈무정〉 배경 등장

뷰(view).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물가에 산다. 옛사람들은 생존 때문에 물가에 살았지만 현대의 사람은 기호(嗜好) 때문에도 물가에 산다. 옛사람들은 좋은 물가를 쟁취했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매할 수 있다. 바다가 보이는 오션뷰, 강이 보이는 리버뷰는 부동산 가격 덕분에 알러뷰해진다.

오션뷰라고 해서, 리버뷰라고 해서 알러뷰할 만큼의 부동산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어디 오션인지 어디쯤의 리버인지가 더 중요하기는 하다. 알러뷰할 부동산의 뷰(view)에는 살아보지 못해 비교할 수는 없으나 자본주의적 기호와 상관없이 기가 막힌 경관이라 싶은 데를 몇 군데 안다. 그중 한 곳이 삼랑진이다.

▲ 옛 뒷기미나루터라고 알려져 있는 곳에서 바라본 밀양강. 이곳 바로 아래에서 낙동강과 밀양강이 합류한다.  /이헌수 시민기자
▲ 옛 뒷기미나루터라고 알려져 있는 곳에서 바라본 밀양강. 이곳 바로 아래에서 낙동강과 밀양강이 합류한다. /이헌수 시민기자

◇밀양강

대구시 달성군 비슬산부터 흘러내린 청도천과 운문호에 머물다 내린 동창천이 하나로 만나 밀양강을 이룬다. 밀양강은 이름값을 하느라 밀양 곳곳을 굽이 흐른다. 섬을 만들고, 둔치에 모래를 쌓고, 들녘을 적신다. 물길이 굽은 자리마다 생활의 자리도 생겼다. 생활 터전을 다 내어놓고서 밀양강은 낙동강을 만난다.

두 물이 만나는 자리를 흔히 두물머리라 한다. 두물머리로 가장 유명한 곳이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양평이다. 밀양강과 낙동강 두 물이 만나니 이곳도 두물머리, 양평이어야 하는데, 이름이 삼랑(三浪)이다. 삼랑, 두 물이 아니라 세 물이 만나는 곳이란 말이다.

밀양강과 낙동강이 두 물이고 또 하나의 물은 바닷물이다. 삼랑진까지의 낙동강은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아 강물의 염분, 수위, 속도 등이 변하는 감조하천이다. 세 물이 제 방향대로 흘러도 세 물은 맞닥뜨리게 돼 있다. 때문에 삼랑진에서 물은 방향을 잃고 머문다. 물이 머무는 자리에 나루가 생겼고 기차역이 생겼다.

 

◇삼랑진역, <무정>

삼랑진역은 이광수(1892~1950)의 소설 <무정>에 등장한다. 세 물이 머무는 삼랑진에서는 방향을 잃은 물이 자주 넘쳤다. 물이 넘칠 때마다 기찻길이 끊겼다. 수해로 오갈 데 없어진 사람들은 기차역 플랫폼에 업고 이고 온 생활 도구를 널어 말리며 물이 빠지길 기다려야 했다. 이광수에게 삼랑진의 뷰는 이랬다.

 

"저것 보게. 저기 저 집들이 반이나 잠겼습니다 그려!" 하고 마산선으로 갈려 나가는 길가에 있는 초가집들을 가리킨다. 과연 대단한 물이로다. 좌우편 산을 남겨 놓고는 온통 시뻘건 흙물이로다. 강 한가운데로 굼실굼실 소용돌이를 쳐가며 흘러 내려가는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그 물들이 좌우편에 늘어선 산굽이를 파서 얼마 아니 되면 그 산들의 밑이 빠져 나갈 것 같다.

 

이광수는 홍수에 살림이 무너진 백성들을 불쌍하고 그 까닭이 무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니 백성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소설에 연사(演士)들을 세우고 소리 높였다.

 

"그렇지요, 불쌍하지요! 그러면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요?"

"무론 문명이 없는 데 있겠지요. 생활하여 갈 힘이 없는 데 있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저들을…… 저들이 아니라 우리들이외다…… 저들을 구제할까요?"하고 형식은 병욱을 본다. 영채와 선형은 형식과 병욱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병욱은 자신 있는 듯이, "힘을 주어야지요. 문명을 주어야지요."

"그리하려면?"

"가르쳐야지요. 인도해야지요!"

 

힘이 없어 나라를 빼앗긴 건 위정자였는데, 나라를 뺏기고도 잘 먹고 잘사는 위정자는 그대로 두고서 이광수의 일장연설은 모두를 싸잡아 탓하는 척하면서 민중을 탓한다. 억울하다. 그들은 나라를 뺏기기 전에도 생활은 곤궁했고, 나라를 뺏기고는 더욱 곤궁했다. 가해자는 그대로 두고 피해자만 탓하는 꼴이다. 이를 피해자 중심주의라 해야 하나 가해자 중심주의라 해야 하나. 제대로 탓할 줄 모르는 이광수의 계몽주의는 결국 친일을 지나 일본과 하나되길 바라는 내선일체로까지 나아갔다.

▲ 삼랑진역 급수탑.  /이헌수 시민기자
▲ 삼랑진역 급수탑. /이헌수 시민기자

◇뒷기미나루, <뒷기미 나루>

삼랑진에서 소설가 김정한(1908~1997)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낙동강의 파수꾼으로 불리길 바랐으며 낙동강 하구에서 이곳 삼랑진까지를 당신의 소설 주요 배경으로 삼았다. 김정한은 뒷기미나루의 뷰를 이렇게 적었다.

 

물이 맑아 초가을부터 기러기떼며 오리떼가 많이 모여들었다. 그렇게 많이 모이던 기러기며 오리 등이 간다 온다 말도 없이 훨훨 날아가기 시작하면, 뒷기미의 하늘에 별안간 아지랑이가 짙어 오고, 모래톱 밭들에는 보리 빛이 한결 파릇파릇 놀랄 만큼 싱싱해진다.

 

세 물이 만나는 삼랑진에서 남쪽으로 경부선이, 서쪽으로는 경전선으로 갈라져 이어진다. 거침없이 강을 건너는 철길과 달리 삼랑진을 오고가는 민중들은 주로 나룻배를 이용했다. 멀리로는 명지로부터 소금배가 이곳에 닿았고 가까이로는 삼랑진 장을 오고 가는 발길이 뒷기미나루를 이용했다. 김정한이 삼랑진에서 본 것은 신고(辛苦)한 민중의 삶이었다.

 

가을되면 으레 덮쳐 오게 마련인 비료대며 영농자금, 그리고 그 무서운 고리채를 안 갚고 배겨 낼 재간이 없는 그들이었다. 제때 안 내면 마구 차압 딱지가 붙고 현물을 싣고 가는 판국이었으니까……"저 영감 옛날에는 아이(애) 징용 보내면서 저렇게들 울어 쌓더니……!"

 

피붙이를 징용 보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이 삼랑에 더해졌을까. 해방이 되어서도 쌀, 보리, 소를 빼앗겨야 했으니 또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해마다 삼랑(三浪)에 눈물을 더해 사랑(四浪)이 되었으니 낙동강이든 밀양강이든 마를 날이 없었을 터이다. 민중의 눈물을 볼 줄 알았던 김정한은 이렇게 일갈했다.

"사람답게 살아라!"

 

◇다시, 뷰(view)

삼랑진역에는 한 시절 의무를 다한 급수탑이 하나 남아 있다. 늙은 급수탑을 아이비가 해마다 감아둘러 초록빛으로 생생하다. 급수탑이 제 몸을 내어주어 아이비를 길러낸 것인 듯도 싶고, 늙은 급수탑을 아이비가 안아서 버티게 해주고 있는 것인 듯도 싶다. 언제는 아이비가 먼저 뵈고 또 다른 날엔 급수탑부터 보인다.

의무를 마친 장소는 스산하다. 화양연화 동안에는 자신이 있는 곳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추앙받는 시간은 생각하기보다 즐기는 것이다.

어떤 이는 멈추고서야 뵈는 게 있다 했다. 스산한 곳에 머물며 그곳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몸을 기울인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뷰를 돌아보게 된다. 삼랑진에서 이광수의 계몽주의와 김정한의 민중주의 어디쯤을 여전히 헤매는 나를 보았다.

/이헌수 시민기자(메깃들마을학교 운영위원)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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