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정책, 현장과 동떨어져
다양한 중기 목소리 들어야
경쟁력 있는 새 시장 진출 시급
현지 정보·대사관 도움 필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지난해 한국을 선진국 집단으로 분류했다. 그동안 눈에 띄게 발전한 분야 중 방위산업도 빠질 수 없다. 하지만, 정부가 자랑하는 숫자가 우리네 삶에 쉬이 와 닿지 않듯, 방위산업 중소기업들이 체감하는 현실도 마냥 희망차지만은 않다. 이 같은 상황은 한국 최대 방위산업 집적지 창원도 마찬가지다. 23일 ㈜창원기술정공 본사에서 오병후(62) 창원시방위산업중소기업협의회장을 만났다. 수출 축포 속에 묻힌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사실 좀 지친 상태입니다. 10여 년 동안 비슷한 이야기를 수없이 했지만, 현실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관이나 대기업에 한마디 하기 어려운 중소기업 목소리는 업계에서만 맴돌다 흩어져버립니다. 최대한 전달하려 하지만 사정상 외로운 처지가 될 때도, 들어주기는커녕 정책에 찬물만 끼얹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오 회장은 짐짓 이런 걱정은 제쳐놓고 회사 경영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도 안다. 누군가는 현실을 이야기해야 하고, 객관적인 진단 위에서만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화려한 수출지표 뒤 그림자 = 국방기술진흥연구소 연감을 보면, 한국은 지난 5년간(2016~2020) 세계 9번째 무기 수출국이었다. 창원시는 2018년 '창원 방위산업 활성화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며 이 흐름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창원시·경남도가 한국방위산업학회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창원은 2020년 기준 국내 방산매출 27.3%, 수출액 33.5%를 차지했다. 실제 이 기간 정부가 타국에 수출한 조 단위 수출계약 주인공 상당수가 창원 기업체였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성과는 이처럼 화려하지만, 산업생태계 전체에 이득이 고르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오 회장은 "최근 수출계약은 대부분 현지생산 조건을 거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이라도 가까운 나라에서 납품받으려 하지 않겠느냐"라며 "수입국이 자국 이익을 위해 조건을 붙이는 만큼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중소기업 처지에서는 어려운 흐름"이라고 말했다. 계약 성사 여부로 성과를 홍보할 수 있는 정부나, 어디서 생산하든 매출을 올릴 수 있는 대기업과는 입장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방산물품을 수입할 때 기술이전·공동생산·부품 역수출 등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일을 '절충교역'이라 부른다. 한국 정부가 타국에서 무기를 수입할 때, 우리 중소기업에 납품 기회를 부여하기도 한다. 오 회장은 "국외기업들은 납품사에 엄격한 인증을 요구하는데, 기준을 모두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라며 "절충교역으로 활로를 열자는 이야기가 한때 성행하다 지금 쏙 들어간 이유"라고 설명했다.

▲ 오병후 창원시방위산업중소기업협의회장이 23일 ㈜창원기술정공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hsm@idomin.com
▲ 오병후 창원시방위산업중소기업협의회장이 23일 ㈜창원기술정공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황선민 인턴기자 hsm@idomin.com

생산공간 문제뿐 아니다. 수출협상에서 계약단가가 깎이는 상황이 오거나, 원자재 가격 상승 국면에 들어서면 부담은 고스란히 중소기업에 전가된다. 오 대표는 "중소기업 납품단가 연동제가 도입된다 해도 큰 기대가 없다"라며 "대기업은 바로 경쟁입찰을 붙여 더 나은 가격을 제시하는 업체로 거래처를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정책과 현장 사이 괴리 = 창원시는 지난 3월, 특례시 방위산업 대전환 계획을 발표했다. △국내외 네트워크 강화 △기술혁신형 강소기업 육성 △중소기업 수출 역량 강화 △전문인력 역량 강화 등 굵직한 방향은 4년 전 중장기 계획과 비슷하다. 오 회장은 "정책 방향은 하나하나 잘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면서도 "구체적 실현 방안은 현장과 동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지자체가 지원하는 국외시장 개척 활동, 국외 기업인 초청, 화상상담회 등이 대표적인 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장이기 때문에 가서 배우고 만나야 한다는 취지지만, 정작 지역 중소기업 산업 특성과는 맞지 않는 곳으로 갈 때가 잦습니다. 기업인을 초청하면서 우리 물건을 사갈 수 있는 제조업이 아니라, 엉뚱한 비제조 분야 관계자를 부르기도 합니다. 화상상담회 역시 양해각서 체결 등 적당한 홍보 효과는 볼 수 있지만, 직접 마주 볼 수 없으니 실제 성과로 이어지지 않죠."

기대감을 품었던 기업들도 정책사업에 들러리 서는 경험을 몇 번 한 뒤에는 더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참여 기업만 바뀌어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오 회장은 정책 입안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는 창구가 너무 좁았던 결과라고 진단했다. 위원회·협의체 등에 의견을 수렴할 때, 공무원·학자 중심으로 이상적인 그림만 좇다 보니 정작 현장에서 당연시되는 문제점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외 기업 전시회는 약 1년 전부터 신청해야 잘 보이는 곳에 전시관을 마련할 수 있는데, 예산 통과 문제로 촉박하게 준비하다 보니 항상 변두리로 밀려요. 국외시장 개척단을 파견할 때도 현지 컨설팅 회사에 기업 목록을 받아 파견 직전에 전달할 게 아니라 실제 현장에 갔을 때는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충분한 사전조사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면밀히 준비 제3시장 개척해야 = 오 회장은 지역 방산 중소기업들이 함께 살려면, 미국·유럽뿐 아니라 제3의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지금까지 축적한 방산 기술로도 뚫을 수 없는 곳이 있는가 하면, 충분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틈새시장도 존재한다는 이유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조건은 정보의 확보다. 즉, 어느 나라에서 어떤 상황 때문에 특정 부품이 필요한지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빠듯하게 인력을 활용하는 중소기업 처지에서는 막연하고 어려운 일이다.

오 회장이 전부터 제안했던 방법이 국외 대사관 무관들과의 접촉이다.

그는 "각국 사정에 밝은 무관들이 다양한 품목을 생산하는 지역 중소기업에 맞춤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면 수출 마중물이 될 수 있다"라며 "최근 어렵사리 그런 자리가 마련된 일이 있지만, 정작 초청받은 중소기업이 별로 없어 아쉬워하는 기업이 많았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각국 대사관을 통해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방법도 제시했다. 실제 협상에 들어갈 때, 대사관 직원 동행 여부가 양측 신뢰 구축에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자체가 이런 부분들을 정부에 요청·건의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 제도 개선도 건의했다. 오 대표는 "국산화 개발계획에 들어가 있는 품목에 한해, 기술 개발에 참여한 업체에 5년간 생산물량이 보장되지만, 그 외 품목은 다 경쟁입찰"이라며 "기업이 개별 부대와 공동으로 개발한 기술인데, 개발비용만 들이고서 다른 업체에 물량을 빼앗기는 경우가 허다하다"라고 지적했다. 과도한 규제는 풀어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오 회장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한국 방위산업 규모와 방산 대기업들의 성장은 뿌리에서 지역 중소기업들이 받쳐왔습니다. 우리도 많은 인력을 뽑아 좋은 임금·복리를 제공하고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납품단가 연동이든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관리기준이든, 실제 현실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거나 강제하는 제도를 설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후 국외시장을 뚫어 경영이 호전되면, 별다른 인재 양성 정책 없이도 사람들이 일하러 올 겁니다."

/이창우 기자 irondumy@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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