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의 굳은 믿음 얻은 건 한결같은 행동
먹이 먹고 나면 돌변하는 것들도 많은데

이건 개똥 이야기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가 시끄럽다. 닫아놓은 창문을 뚫고 새된 고함이 들린다. 조용하던 골목에 웬 일인가 싶어 소리를 좇았다.

- 한두 번도 아이고 작게나 싸나. 사람 똥만한 거를 맨날 남의 집 앞에 와서 싸고.

- 그거를 와 우리한테 그랍니꺼. 개 키우는 집이 우리뿐이가. 우리가 그라는 거를 봤습니꺼.

- 꼭 봐야 아나. 쌌으모 치우기나 하든가. 휴지만 덮어놓고 가면 누구 보고 치우라는 긴데. 내가 열불이 안 터지게 생겼나.

-하이고 참, 우리 개는 그런 짓 안합니더.

대충 이랬다. 개똥이 발단이었다. 얼마 전 캄캄한 밤, 차에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주차장에 내려갔다가 슬리퍼를 신은 채 물컹한 똥을 밟았던 게 떠올랐다. 나도 밟은 개똥. 누구나 밟을 수 있었던 개똥. 개똥은 그 옆집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다시 떠오른 그 찜찜한 기억보다 더 깊게, 더 오래 곱씹었던 건 저 자신만만한 외침이었다. '우리 개는 그런 짓 안합니더.'

종종 목격되는 질펀한 똥이 진짜 그 집 개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심증만 있을 뿐 물증도 없고 현장을 직접 본 이도 없으니. 야무지게 '우리 개는 그런 개가 아니다'라고 항변하는 주인은 진심으로 그리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개와 동거한 수년간 개의 행동을 지켜보며 단단하게 굳어진 것이었다.

주인의 설명처럼, 개는 사료를 먹어 단단한 똥을 적게 쌌고 정해진 자리에만 쌌으며 주인과 함께 목줄을 하고 산책할 때에도 함부로 아무 데나 변을 보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이 '안돼' 하면 즉시 행동을 멈추었을 것이고 '기다려' 하면 문 안으로 한 발짝도 들여놓지 않고 얌전히 앉아있으며 늘 주인 가까이에서 주인의 기색을 살폈을 것이다.

평소 정말 그랬다면, 그렇게 꾸준히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 주인은 그런 자신의 개를 믿을 수밖에 없겠지. 맹신은 위험하다. 똥을 싸지 않는 개가 있을 리 없다. 그래도 말로만 떠들다가 배신하는 어떤 부류의 인간보다야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개를 믿는 쪽이 덜 위험한 선택이다.

누군가 손에 먹이를 들고 있을 때에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와 세상 순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때로 발라당 드러누워 배를 까 보여주며 애교를 부리다가도, 보상이 끝난 후에는 언제든 자기 심신이 불편하다 싶은 순간 돌변해서 주인인지 누군지 가리지 않고 마구 입질을 하는 개…도 많지 않은가.

물론 한결같은 개도 주인 앞에서만 그랬을 수 있다. 동네 주민으로서는 진짜 개똥 같은 일이다. 개똥보다 못한 놈이 저지른. 그리고 사실 가장 불쌍한 건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이겠다. 다행인 건 실체를 밝혀낼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개똥같이 마무리하는 이건 6월을 앞둔 어느 아침의 그냥 개똥 이야기다.

/임정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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