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부부 막걸리 빚어 판매
남편 건강 악화·2월 운영 중단
주민 "추억 가득한데 아쉬워"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에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배우 탕웨이가 가장 좋아하는 막걸리로 알려진 남해군 서상양조장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찾는 이가 드문 한적한 시골마을인 남해군 서면 소재지의 도로 옆에 있는 서상양조장. 수십 년을 훌쩍 넘긴 듯한 건물 벽에 걸린 낡은 간판이 서상양조장의 오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60년 간 전통 막걸리의 맥을 이어온 서상양조장은 2대에 걸쳐 노부부가 운영했던 곳이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50여 년 전 부모의 가업을 이어받은 남편 곽명선(79) 씨와 아내 이정언(75) 씨가 수작업으로 막걸리를 빚었다. 서상양조장의 또 다른 매력은 뒤뜰에 있는 400여 년 된 아름드리 느티나무다. 서상양조장과 노부부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집 주변을 살짝 감싸고 있다.

서상막걸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부의 손길이 오롯이 닿아야만 완성된다. 막걸리 빚는 과정은 고령의 부부에게 힘에 겨운 고된 일이다. 그래서 막걸리는 주문이 들어온 만큼만 만들었다.

막걸리는 주로 지역 마트나 알음알음 알게 된 전국의 막걸리 마니아들에게 택배로 판매됐다. 남해지역 주민들에게는 마을 잔치나 각종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추억이자 보배 같은 막걸리였다.

▲ 남해군 서면 서상양조장. /허귀용 기자
▲ 남해군 서면 서상양조장. /허귀용 기자

최근 개봉한 화제작인 영화 <헤어질 결심>에 출연한 영화배우 탕웨이가 방송에서 가장 좋아하는 막걸리라고 소개하면서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탕웨이와 노부부의 인연은 지난해 3월 시작됐다. 그때 <헤어질 결심>의 촬영지 서면을 찾았던 탕웨이는 우연히 서상양조장을 알게 되면서 인연이 맺어졌다. 아내 이 씨는 "탕웨이가 막걸리를 먹고 맛있다고 하면서 많이 사갔다. 내가 화장을 하지 않아서 같이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다"라며 아쉬워했다.

탕웨이가 다녀간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서상양조장은 안타깝게도 문을 닫았다. 올해 2월쯤이었다.

막걸리를 빚는 장인인 곽 씨의 건강이 나빠져 더는 양조장을 운영할 수 없게 됐다. 나빠진 건강은 50여 년을 천직으로 여기게 했던 그의 일을 내려놓게 했다. 이 씨도 막걸리를 빚는 과정에서 남편을 보조하는 고된 노동과 교통사고 후유증 탓에 온몸이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 때문인지 부부 사진을 찍자는 제안에 이 씨는 극구 손사래를 쳤다. 양조장 문을 닫은 후 여러 사람이 도맡아 하겠다고 제안이 들어왔지만, 노부부는 남한테 맡길 수 없는 일이라서 거절했다.

이 씨는 "부산에 있는 아들이 가업을 잇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말을 흐렸다.

막걸리 애호가 정영식(남해군 남해읍) 씨는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듣고 알게 됐다"라며 "마을 잔치나 축제 때 즐겨 마시던 막걸리 중의 하나일 정도로 향수가 가득한 서상막걸리를 더는 먹을 수 없어서 매우 아쉽다"라고 말했다.

/허귀용 기자 enaga@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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