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는 대한민국연극제 (상)역사·연극인 삶 속으로

8일부터 30일까지 밀양서 열전... 각 지회 대표 16개 극단 공연
역사적 인물 다룬 작품부터 서민 삶·연극세계까지 다채

15년 만의 경남 개최다. 전국 연극인들의 축제 '제40회 대한민국연극제'가 오는 8일부터 30일까지 3주간 밀양에서 열린다. 2007년 거제시에서 개최된 이후 15년 만에 경남에서 맞는 연극축제다. 한국연극협회 소속 16개 지회 16개 극단(광역자치단체별 대표 1곳) 작품이 10∼28일 차례로 무대에 오른다. 본 공연은 밀양아리랑아트센터와 해맑은상상홀 두 곳에서 펼쳐진다.

개막식은 8일 오후 7시 밀양아리랑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제22회 밀양공연예술축제와 공동으로 열리며, 개막공연으로 <다시, 동지섣달 꽃 본듯이>를 무대에 올린다. 연극제 기간 본선 경연을 비롯해 명품 단막 희곡전·프린지 페스티벌·포럼과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한국연극협회와 경남도·밀양시가 주최하는 올해 연극제 출품작 내용과 연출 의도를 미리 소개한다. 예매와 자세한 내용은 연극제 누리집(ktf365.org)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10일 진주 극단 현장 <나는 이렇게 들었다>
▲ 10일 진주 극단 현장 <나는 이렇게 들었다>

◇실제 역사에 픽션 가미한 작품 셋 = 경남 대표로 나서는 진주 극단 '현장'의 <나는 이렇게 들었다>(김인경 작·고능석 연출)는 조선 후기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낭독가 전기수를 다룬 작품이다. 전기수는 조선시대에 실존했던 직업으로, 연극은 이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주변에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련 얘기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고능석 연출은 "이야기는 어떤 논리적인 주장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세다"며 "우리 삶에 조금이라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이야기를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고, 이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그 질문에 접근하고 싶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강원 대표 극단 '씨어터컴퍼니 웃끼'가 선보이는 연극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다>(이석표 작·최규창 연출)는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더 많이 알려진 조선왕조 7대 왕 세조 이야기다. 1417년(태종 17년) 9월 29일 문종에 이어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端宗)의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과 당시 수양의 심리상태를 다룬다.

▲ 23일 강원 씨어터컴퍼니 웃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대한민국연극제 집행위원회
▲ 23일 강원 씨어터컴퍼니 웃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다> /대한민국연극제 집행위원회

최규창 연출은 "조카 왕위를 빼앗고 죽음으로 내몬 수양대군이 만약 타인에 의한 선택의 길을 걸었다면 세조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고민했다"며 "내적 갈등을 극대화하여 세조의 다른 모습을 표현해 보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경북 대표 극단 '문화창작집단 공터다'는 <삼장사의 용감>(김인경 작·황윤동 연출)을 내놓는다. 일제강점기 해방을 위해 맞서 싸우며 삼장사로 불렸던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 박희광 의사를 비롯해 김광추·김병현을 조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황윤동 연출은 "1920년대 3인조 암살특공대란 이름으로 친일파와 일본 주요 인물을 암살하는 등 독립운동을 했다"며 "단군 때부터 대대로 이어져 온 이 땅에서 우리말로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조심스레 던져본다"고 말했다.

▲ 11일 대구 극단 헛짓 <반향>
▲ 11일 대구 극단 헛짓 <반향>

◇연극인 삶을 무대로 = 대구 대표 극단 '헛짓'의 출품작 <반향>(김현규 작·연출)은 연극인들의 삶을 풀어낸다. 소설가 조지 오웰이 쓴 동명의 원작 <동물농장>을 공연하고자 모인 연극인들이 공연 준비 과정에서 갈등하는 일련의 사건을 담았다.

김현규 연출은 "(이 작품은) 연극을 하는 나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반성문"이라며 "자신을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연극을 보고 공감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 대표로 참가하는 극단 '까치동'의 <팥죽, 그리고>(정경선 작·연출)도 연극인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전주에 내려오는 팥죽배미 설화를 주제로 공연하게 된 배우들이 공동으로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13일 전북 극단 까치동 <팥죽, 그리고>
▲ 13일 전북 극단 까치동 <팥죽, 그리고>

정경선 연출은 "이 작품은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며 "지역 설화와 연극배우로서 작품에 임하는 자세와 갈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서울 대표 극단 '혈우'도 <작가노트, 사라져가는 잔상들>(한민규 작·연출)에서 작가와 연극인들의 동시대 아픔을 이야기한다.

어떻게든 올해 안에 공연을 올려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극중 등장인물 작가는 기존 결과물과 다른 시도를 한다. 이후 여러 극단과 만나 공연 계획을 논의하지만, 작가의 작업물을 난해하게 느낀 극단들은 모두 거절 의사를 밝힌다. 옛 동료들과 다시 작업을 시작하지만, 그들 역시 작가의 예상치 못한 작품에 난색을 보인다.

한민규 연출은 "작품 장르는 '작가 판타지 서사'라고 할 수 있다"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에 연극적 판타지를 부여한 작품"이라고 했다.

▲ 12일 인천 극단 태풍 <가족>
▲ 12일 인천 극단 태풍 <가족>

◇평범한 사람들 삶 그린 작품들 = 인천 대표 극단 '태풍'의 <가족>(장경섭 작·강미혜 연출)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을 그린다. 하숙집 주인 지도산이 연정을 품고 있는 우봉자, 인생은 한방이라면서 도박에 빠져 사는 이기철, 이런 이기철을 사랑하며 배우 꿈에 도전하는 김선녀, 동자신이 잘 찾아오지 않는 무당 장길순, 공중부양에 성공하지 못하는 철학자 나철학의 이야기다.

강미혜 연출은 "혈연이 아닌 다양한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상을 함께하며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며 "지금 이 시대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찾아본다"고 밝혔다.

울산 대표 '울산씨어터예술단' <달빛에 젖어 잠들다>(지호원 작·백운봉 연출)는 1980년대 시대적 상황을 무대화했다. 한국 현대사 속 광풍(狂風) 시대에 평범하게 살아가던 한 중년 가장을 다룬다. 공권력에 의해 막다른 골목으로 몰려가는 과정 등을 한 가정의 이야기로 풀어낸다.

▲ 15일 울산씨어터예술단 <달빛에 젖어 잠들다>
▲ 15일 울산씨어터예술단 <달빛에 젖어 잠들다>
▲ 16일 충남 극단 예촌 <손은 행동한다>
▲ 16일 충남 극단 예촌 <손은 행동한다>

백운봉 연출은 "시간이 제약하는 물리적 존재와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것이 DNA의 전달이라면, 시간이 제약하는 정신적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역사의 전달"이라고 설명했다.

충남 대표 극단 '예촌'이 선보이는 <손은 행동한다>(김태현 작·이승원 연출)는 노동자를 소재로 삼았다. 극 중 등장인물로 나오는 극단 대표이자 극작가 박효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효주는 월세와 대출이자를 내기 위해, 또 먹고살기 위해 택배 물류 창고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어느 날 효주가 일하던 물류창고에서 불이 난다. 이 사고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효주는 인간다운 삶을 둘러싸고, 깊은 생각에 빠진다.

이승원 연출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 사건, 2021년 6월 17일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 등 여전히 노동의 본질은 처참하다"며 "노동자 운명이 최후로 내몰리는 상황을 연극으로 묻고 싶었다"고 작품의도를 밝혔다.

/최석환 기자 csh@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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