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시티 김해 ‘느린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 (7) 임철진 회현연가협동조합 이사장

국내 첫 토종 유산균 개발 레스토랑 오픈…청년ㆍ경력단절여성 일자리 창출
올해말 김해치즈 대량생산 체제 구축, 치즈 제조기술 교육 ‘치즈스쿨’도 운영

'슬로시티가 품어야 할 것은 사회적 가치입니다. 식품이 잘 팔리고 안 팔리고 하는 문제보다 슬로 특산물로 마을공동체를 만들고 느린 가치에 맞는 자기 몫을 하면서 나눔 노력을 해야 진정한 슬로 철학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임철진(58) 회현연가협동조합 이사장은 로컬푸드(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에 관심이 많다. 김해 고유 특산물인 장군차와 산딸기로 우리나라 최초 토종 유산균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올해 5월 김해시 봉황동 '봉리단길'에 근사한 회현치즈 레스토랑 문을 열어 김해치즈와 요구르트를 대량 생산해 유통할 준비를 하고 있다. 레스토랑을 열며 청년과 경력단절여성을 고용해 일자리 창출 경제 구조를 만들었다.

임철진 회현연가협동조합 이사장은 김해 고유 특산물인 장군차와 산딸기로 우리나라 최초 토종 유산균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올해 5월 김해시 ‘봉리단길’에 근사한 회현연가치즈레스토랑 문을 열어 김해치즈와 요구르트를 대량 생산해 유통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수경 기자
임철진 회현연가협동조합 이사장은 김해 고유 특산물인 장군차와 산딸기로 우리나라 최초 토종 유산균을 개발한 주인공이다. 올해 5월 김해시 ‘봉리단길’에 근사한 회현연가치즈레스토랑 문을 열어 김해치즈와 요구르트를 대량 생산해 유통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수경 기자

◇국내 첫 토종 유산균 개발…치즈체험장·레스토랑 운영 = 임 이사장이 치즈 개발을 하게 된 동기는 2004년 설립한 생명나눔재단에서 만난 경력이 끊긴 여성들에게 정년퇴직 없이 오래도록 일할 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어서였다. 이 여성들은 난치병 아동을 둔 부모들이다. 

회현연가협동조합은 2020년 난치병 아동을 둔 부모들에게 사회적 일자리를 마련해주고자 만들었다. 김해시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다. 2018년 회현연가 치즈연구소를 설립해 3월 치즈 교육 사업을 시작했고, 2022년 5월 이 여성들과 청년들이 일할 공간인 회현연가 치즈레스토랑을 지었다. 

처음 임 이사장이 치즈 개발을 생각한 까닭은 김해에 치즈를 만들 만한 역사성이 있어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젖소가 들어온 곳이 김해다. 한국전쟁 이후 연합군이 부산항으로 사육 젖소를 싣고 와 양산과 김해에 내려놨다. 현재 빙그레 우유(김해 진영)와 부산우유 등이 경남·부산 낙농업 기점이 된 배경이다. 

김해는 원유가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으니 치즈만 만들면 됐다. 임 이사장은 전국서 가장 유명하다는 전북 임실치즈를 처음 개발한 김상철 선생을 만나 유산균과 치즈 만드는 법을 배웠다. 그곳에서 알아낸 사실은 국내 모든 치즈 재료가 수입유를 사용한 수입균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김해시는 원유 공급 지역이니 김해 토종 김해균으로 치즈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아모레 화장품 회사가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녹차에서 균을 추출해 화장품을 만든다는 내용을 보고, 김해사람들이 즐겨 먹는 장군차와 산딸기 등 지역 농산물에서 균을 추출해내 치즈를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2019년 시작한 김해 토종균 만드는 작업은 쉽지 않았다. 장군차와 산딸기 와인에서 발견한 유전자 세포를 유청스타터(유청으로 치즈나 발효유를 만들고자 배양한 유산균)로 만드는 것 자체가 고난이어서 시행착오를 여러 번 겪었다.

약 2년간 연구 끝에 2020년 말 김해 최초 천연발효균(모균)을 확보해 '김해치즈' 생산에 성공했다. 모균주는 스트렙토코커스 서모필러스(Streptococcus thermophilus)와 락토바실러스 퍼멘텀(Lactobacillus fermentum) 유산균으로 장내 유익균 생존을 돕는 기능성 유산균이다. 

2021년 말엔 부산경남우유협동조합과 물품공급 계약을 체결해 원유를 가져오고 있다. 김해 토종균으로 발효유(요구르트)는 물론 모차렐라치즈, 리코타치즈, 할루미치즈 등 생치즈와 카망베르치즈, 체다치즈, 라클렛치즈, 고다치즈 등 숙성 치즈까지 생산할 수 있다. 숙성 치즈 만드는 시간은 최소 3개월~10년 걸린다. 원유 100㎏으로 치즈는 10㎏ 안 되는 양이 나오고, 요구르트는 100㎏ 만들어진다.

회현연가치즈레스토랑에 전시돼 있는 김해치즈들. /이수경 기자
회현연가치즈레스토랑에 전시돼 있는 김해치즈들. /이수경 기자

◇청년·난치병 아동 엄마에게 일자리 마련 '나눔 가치' = 김해치즈와 요구르트로 만든 이탈리아 요리를 선보이는 회현연가 치즈레스토랑에는 청년셰프 3명이 주방에서 요리하고 있다. 홀서빙은 시니어 3명이 고용돼 일한다. 치즈체험관에는 마을주민과 노인 3명이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 치즈 생산은 치즈 교육을 받은 난치병 자녀가 있는 엄마 4명이 도맡아 하고 있다. 

임 이사장은 올해 8월 회현연가협동조합을 사회적 기업으로 만들려고 신청했다. 예비사회적 기업을 먼저 진행한다. 사회적 기업이 되면 신규 일자리가 생기고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전문 교육 예산 지원과 세제 혜택도 있다. 협동조합은 600명 넘는 시민이 조합원이며, 10명으로 이사회를 구성했다. 3년이 지나면 또 다른 이사와 유통전문가들이 조합 방향성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현재는 일반인들이 김해치즈와 요구르트를 사먹을 수 없다. 회현연가에 치즈 대량 생산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치즈레스토랑을 찾는 손님들에게 애피타이저로 치즈와 요구르트를 내놓으며, 치즈체험관에서 사용할 만큼만 만든다. 치즈 만들 재료를 안전히 놔둘 수 있는 시설을 보완해서 올해 말쯤 대량 생산 체제를 가동할 계획이다. 

◇김치 담가 먹듯 '김해치즈' 지역에 스며들게 하는 게 목표 = 임 이사장은 우선 친환경급식지원센터와 치즈 애호가를 중심으로 김해치즈 유통 계획을 세웠다. 올해 말에는 탈학교 학생들에게 치즈 제조 기술을 가르쳐 치즈 관련 취업을 하거나 창업할 수 있도록 치즈스쿨을 만들 생각이다. 다음 세대에 김해치즈 제조 기술을 이어주겠다는 포부다.

회현연가치즈레스토랑 옆에 마련된 치즈체험관. 시민과 학생들이 다양한 치즈체험을 할 수 있다. /이수경 기자
회현연가치즈레스토랑 옆에 마련된 치즈체험관. 시민과 학생들이 다양한 치즈체험을 할 수 있다. /이수경 기자

그는 "김해교육지원청에 공문을 보내 치즈스쿨에 참여하도록 하고 치즈학과가 있는 순천대에 진학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치즈 관련 일을 잘하도록 학생들을 키워내면 요리 배워 창업하고, 교육 강사로 홈치즈 기본교육도 하는 다양한 청년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치즈와 요구르트 산업을 블루오션 산업이라고 판단했다. 특히 김해치즈와 요구르트는 국내산 원유 100%로 만들기에 전 세계 치즈산업과 경쟁력도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회현연가 치즈체험관은 치즈 체험을 하기 어려운 소외된 이들,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 미래를 정하지 못한 청년들을 성장시키는 인큐베이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최초 김해치즈를 개발했지만,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다. 임 이사장은 "김해치즈를 아름답게 만들어서 먼 훗날 김해치즈로 지역 축제를 만들고, 김치 담그는 것처럼 김해치즈가 모든 행사장에서 누구나 쉽게 접하는 만만한, 지속가능한 식품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 "불완전한 슬로시티만큼 느린 게 슬로시티 홍보다. 시민들이 슬로시티에 의문을 품지 않고 이해도를 높이도록 슬로시티의 사회적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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