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희망연대 서훈 신청 주도
북한 관련 학계 전문가들도 힘 보태
"열린 역사관으로 독립운동가 재평가를"

독립운동가 김명시(1907∼1949·건국훈장 애국장)가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김명시가 사망한 지 73년 만이다. 우여곡절 끝에 유공자로 인정받았지만, 재심 청구 등 서훈 결정이 나오기까지 3년 7개월이 걸렸다. 김명시 고향인 창원에 있는 시민단체인 열린사회희망연대(상임대표 백남해·이하 희망연대)가 사방으로 공적 자료를 수집하고 친족을 찾아 나서는 등 발로 뛴 결과물이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고문이 11일 독립운동가 김명시와 동생 김형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박신 기자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고문이 11일 독립운동가 김명시와 동생 김형윤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박신 기자

희망연대는 2018년 12월 창원시에 김명시 흉상 건립을 제안하면서 그의 공적을 지역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고문 주도로 2019년 1월 최초로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 서훈을 신청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보훈처는 ‘사망 경위 등 광복 후 행적 불분명’을 이유로 김명시를 독립유공자 심사에서 제외했다. 희망연대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재심 청구에 필요한 관련 자료를 찾아 나섰다.

유공자 선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김명시 사망 당시 직책 ‘북로당 정치위원’이었다. 희망연대는 해당 직책의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고 근거 자료를 찾기로 했다. 정부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관련 전문가들을 수소문했지만, 지역 시민단체가 접근할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었다.

1년 7개월 가까이 전국에 있는 북한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한 끝에 국토통일원(현 통일부)이 발표한 ‘북한로동당 창당대회’ 회의록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해당 자료는 김영만 고문의 요청에 북한 전문가인 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이 제공했다.

독립운동가 김명시. /경남도민일보DB
독립운동가 김명시. /경남도민일보DB

정 소장은 “김영만 고문에게서 김명시 장군 서훈 신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이 될 자료를 찾아 전달했다”며 “사실 도서관에 소장된 자료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자료지만, 학자가 아니고서야 이런 자료가 있는지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정권 수립에 공을 세운 사람들이 안장된 북한 국립묘지인 ‘신미리애국열사릉’에 김명시라는 이름이 없다는 점도 찾아냈다. 관련 자료는 황교욱 경남도남북교류협력연구센터장이 제공했다.

황 센터장은 “<명시>라는 소설로 김명시 장군을 자세히 알게 됐는데, 북한·남북문제를 전공했던 사람으로 부끄러움을 느껴 돕게 됐다”며 “북한 전문가 한 분이 신미리애국열사릉 묘비를 하나하나 찍어놓은 자료가 있어 거기에 김명시 장군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희망연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재심 청구를 위한 소명 자료를 모은 희망연대는 2021년 7월 보훈처에 다시 서훈을 신청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첫 번째와 같은 이유로 ‘보류’ 통지를 받았다.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거라고 확신했던 김영만 고문은 보훈처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김 고문은 “두 번째 신청 때도 같은 이유를 들어 심사에 제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화가 났다”며 “그때 보훈처가 사회주의 운동에 편견이 있다는 점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민단체가 신청했는데 이렇게 무성의하게 답변할 정도면 유족은 재신청할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며 “보훈처 관계자들의 관료주의를 허무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희망연대의 거듭된 항의로 보훈처는 그해 11월 학예연구사 등을 창원으로 보내 유족을 만나고 현지 조사를 벌였다. 이후 약 9개월간 조사를 마친 보훈처는 지난 12일 마침내 김명시를 독립유공자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김 고문은 “주변에서 빨갱이한테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며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이 많았다”며 “하지만 김명시 장군이 21년 동안 무장 항일투쟁을 한 사실은 변함없다고 믿었고 자랑스러운 영웅을 앞으로도 지역에 널리 알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 소장은 이번 김명시 독립유공자 선정을 두고, 조선의용군 출신이 서훈을 받을 근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948년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이전에 남쪽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고 할지라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서훈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경남지역에도 해방 이후에 사회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조명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이 있는데, 이런 분들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보훈처는 지난 12일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 선생과 윤도중 선생 등 조국 독립을 위해 희생·헌신한 303명을 독립유공자로 선정·발표했다. 이번 포상자 가운데 경남 출신은 김명시를 포함해 총 28명이다. 2명이 건국훈장(애국장 1명·애족장 1명)을, 26명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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