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일 파업 끝 노사 합의했지만
대우조선·하청 고용 승계 외면
노조 상대로 470억 규모 손배소

"조합원 고용 승계 문제가 하루빨리 해결돼야 하는데…. 추석 때 고향은 못 갈 거 같습니다."

박성현(48) 전국금속노동조합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조선하청지회) 대의원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표정은 밝았지만, 아쉬움이 묻어났다.

앞서 조선하청지회는 51일간(6월 2일~7월 22일) 파업 끝에 대우조선해양 사내 협력사 측과 협상이 타결되면서 투쟁을 마무리했다. 노사는 임금 인상 등과 함께 계약이 끝난 협력사 노동자를 최우선으로 고용하는 데 최대한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 합의 사항은 파업 종료 한 달이 넘도록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일터로 돌아가길 바라는 하청업체 노동자(조합원) 42명이 거리로 내몰린 처지다. 이에 김형수 조선하청지회장이 노동자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18일부터 국회 앞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박 씨도 고용 승계가 안 된 하청 노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남 목포가 고향인 그는 대우조선해양 거제 옥포조선소 한 사내 협력사에서 '파워공(선박 도장 전 철판에 묻은 이물질 제거 작업을 하는 노동자)'으로 일했다. 그런데 지난 6월 말 업체가 폐업하면서 일터를 잃었다. 노사 합의로 파업은 끝났지만, 돌아갈 곳이 없어진 셈이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파워공은 조선소 여러 직종 중에서도 힘들고 험한 일로 꼽힌다. 박 씨는 조선소 쇳밥 경력 20년이 훌쩍 넘은 숙련공이다. 대우조선에서만 10년 정도 일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에서도 일했다.

▲ 박성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대의원이 5일 거제시 대우조선 앞 노조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 씨 안경 너머로 대우조선 크레인이 보인다. /김구연 기자 sajin@
▲ 박성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대의원이 5일 거제시 대우조선 앞 노조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박 씨 안경 너머로 대우조선 크레인이 보인다. /김구연 기자 sajin@

"1996년도에 이 직종을 택해서 계속 일하고 있습니다. 중간에 몸이 아파 쉰 적은 있어요. 지난해 일하다 뒤로 넘어져 꼬리뼈에 금이 가 산재로 10개월 정도 입원·통원 치료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조선소 파워공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느껴졌다. 노조 활동은 지난해 봄 대우조선해양 파워공 임금 인상 투쟁 때 동료와 조선하청지회에 단체로 가입해 시작했다.

당시 파워공들은 일당 인상, 퇴직 적치금 폐지, 단기 계약 폐지 등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벌인 끝에 사측과 합의하고 투쟁을 마무리했다.

노조 가입 전과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일을 시키면 예전에는 위험해도 불만이 있어도 그냥 했는데, 지금은 부당한 점이 있으면 얘기한다"고 답했다.

장기간 파업 투쟁은 그에게 값진 경험이자 노조 활동을 이어갈 희망이 됐다.

"51일간 투쟁하면서 몸은 힘들었지만, 희망을 안고 즐겁게 했습니다. 조합원들과 인사하고 격려하고 독려하면서 사이가 더 돈독해졌거든요. 서로 속사정도 많이 알게 됐습니다."

파업 이후 고용 승계가 안 되는 상황은 부담이다.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실직 조합원들은 생계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 실업 급여로 버티고 있습니다. 고용 승계를 위해서 투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생활이 힘들어 빚을 내서 생계를 꾸리는 조합원도 있을 거 같네요."

이런 점을 우려해 금속노조 경남지부와 조선하청지회는 천막 농성 등으로 투쟁 수위를 높이며 원청 대우조선과 하청업체 측에 합의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계약 종료 협력사 노동자 고용 노력에 관한 노사 합의 의미는 '100% 고용 승계'라고 주장하면서 추석 전 합의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금속노조를 비롯한 노동계는 폐업 업체 조합원 고용을 보장하기로 한 합의가 하루빨리 이행돼야 한다며 대우조선해양과 협력사에 노사 합의 정신으로 합의 이행에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추석 전 해결이 힘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씨도 우려 섞인 전망을 했다. 그는 "추석 전 합의 이행이 힘들 거 같다. 최대한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며 "고용 승계 투쟁은 합의 이행이 될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직 고용 승계가 안 된 조합원 42명은 파워공, 도장공 등이다. 박 씨는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업체에서 받아들이길 꺼리는 분위기라며 사실상 '노조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파워공 노동 강도는 더 세졌다고 했다. 예전에는 탱크에 들어가 6~7일 한 작업을 지금은 4~5일 정도에 마치는 수준으로 일이 더 힘들어졌다는 설명이다.

"2인 1조 작업인데 혼자 할 때도 있어요. 최근 몇 년간 힘들었습니다. 저희는 일당제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급제보다는 잔업에서 더 많이 불었는데(받는데), 2010년께부터 일감이 줄면서 일당이 깎이고 했습니다. 세후 280만~290만 원 정도 되는데, 예전보다 많이 줄어서 계속 마이너스 상황입니다."

국내 조선 산업 인력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생산 대부분을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도 고령화하고 있다. 박 씨와 함께 투쟁하는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은 대부분 40대 이상이다. 20~30대 젊은 사람이 없다. 노동 강도는 세고 위험한데, 임금은 적다 보니 젊은 층이 조선소를 외면하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 조선소에서 일하느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낫다는 인식도 있다.

 

쇳밥 먹은 지 20년 넘은 파워공
"조합원이란 이유로 고용 꺼려
합의 이행 때까지 투쟁 각오"

 

산업계 다른 업종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고위험 저임금' 구조인 조선소 현실에 인력은 수도권 등으로 빠져나간다. 반도체 공장을 대규모로 짓는 평택 등으로 이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박 씨와 같이 일했던 동료 반원 중에도 평택 등으로 이직한 사람이 있다.

고용 승계 문제와 함께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을 힘겹게 하는 요인은 또 있다. 대우조선해양이 하청 노동자 파업 기간 입은 손실을 주장하며 조선하청지회 집행부를 상대로 제기한 470억 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기간 공정이 중단되면서 금전적 손해가 발생했다는 견해지만, 손해배상 청구 소송으로 헌법에서 보장한 정당한 쟁의 행위 등 노동권이 침해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씨는 "조합원 고용 승계가 더딘 가운데 대우조선해양이 노조를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며 "노조를 압박하려는 카드"라고 꼬집었다.

정치권은 이러한 노동자 쟁의 행위를 향한 손해배상 청구 문제를 풀 해법으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입법을 제안한다. 노란봉투법은 19·20대 국회에서 폐기됐으나 21대 국회 들어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 씨는 "같은 생각이다. 손배소 부담은 노조 활동에 제약이 된다"며 "하루빨리 제정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바람도 전했다. "고용 승계 문제가 빨리 해결되길 바랍니다. 일을 해야 먹고사는데 길어지면 더 힘들거든요.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고용을 꺼리는 건 차별이라고 봅니다. 힘들겠지만 하나하나 바꿔나가고 싶어요. 파워공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손목도 어깨도 아프지만, 솔직히 뭘 다시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하고, 다른 지역으로 갈까 이직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내 손으로 하나라도 뭔가를 바꿔보고 싶어요. 몸이 따르는 한 노조 활동하면서 건강하게 일하고 싶습니다."

/이동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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