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형편 탓 고졸 행원으로
뒤늦게 대학 진학 교직 이수
노조 임원 거쳐 지점장 맡아

육아와 학업 병행 속 영업 성과
2019년 상무로 첫 여성 임원에
ESG 등 변화 속 여성 역할 고민

어떤 조직에서든 최초라는 이름을 얻는 것은 자랑이자 무거운 의무이다. 누군가 최초의 자리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그 조직의 표준으로 굳을 수 있다. 그러기에 최초의 길은 무겁고 조심스러운 길이다. 이정원(56) 경남은행 상무는 유리 천장을 깬 경남은행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2018년 상무 대우가 된 뒤 2019년 1월 상무가 되었다. 37년 6개월을 보내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최초의 길을 지나왔기에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말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이정원 경남은행 상무는 유리천장을 깬 경남은행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경남은행
이정원 경남은행 상무는 유리천장을 깬 경남은행 최초의 여성 임원이다. /경남은행

◇행원 = 그는 1966년 마산 진동에서 태어났다. 2남 4녀의 다섯째, 딸로는 셋째였다. 완월초등학교와 창원여중을 거쳐 경남여자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중학교 다닐 때 공부를 곧잘 해서 600명 중 1·2등을 놓치지 않았는데,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집안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져 다니던 중학교와 같은 재단의 상업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진학 무렵에 이미 언니 둘은 결혼했고 큰오빠가 제대 후 복학, 작은오빠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상처가 컸지만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 

3년간 학비 면제 수석 입학과 3년 내 1등을 놓치지 않으면서 학생회장으로 교사 보조 역할까지 해냈다. 졸업 전에 경남은행 입행이 확정됐고 1985년 3월 여행원이 되었다. 당시는 같은 업무를 해도 여행원은 행원보다 직급이 낮았다. 그들의 출근부는 언제나 남자 직원들의 뒤쪽에 자리했고, 일정 근무 기한을 채워 시험을 쳐야 행원이라는 이름을 달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행원 전환 고시를 '성전환 고시'라 불렀다. 게다가 당시 기혼 여직원은 퇴사가 암묵적인 원칙이었다. 입행 단계에서 결혼 후 퇴직 서약서를 써야 했기에 입사 당시에는 이토록 오래 근무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주경야독 = 두 살 터울의 동생은 언니의 희생으로 제 나이에 87학번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동생의 모습을 보며 가슴 속에 감추어 두었던 학업에 대한 열의가 솟아났다. 결국 88학번으로 경남대학교 야간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공부 하나는 자신 있었는데 학업 중단에 자존심도 상했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마음도 컸다. 

고된 생활이 시작됐지만 공부도 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공과목에 더하여 교직을 이수하며 대학 3학년 때 행원 전환 고시까지 준비하는 생활은 그야말로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6시 퇴근, 10시 하교 후 새벽 2~3시까지 공부하고 겨우 서너 시간 눈 붙인 뒤 출근하는 생활은 시간, 그리고 집중력과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강단 있게 해냈다. 은행 내 그의 호칭은 '이 양'에서 '이 주임'으로 바뀌었고 위상도 달라졌다.  

이정원(뒷줄 왼쪽서 넷째)이 NC 야구 홈 경기장에서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경남은행
이정원(뒷줄 왼쪽서 넷째)이 NC 야구 홈 경기장에서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경남은행

교원 자격증 취득을 위해 필수 과정인 교생 실습은 모교로 나갔다. 낮에 업무를 마친 뒤 야간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공부하는 후배들을 가르치는 감회는 남달랐다. 그는 교단에서 뿌듯함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자 노력했고 매사 열심히 했다. 집안 형편으로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열일곱 살 무렵의 자기 얼굴이 그 아이들 위에 겹쳤다. 

어린 날의 자신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더니 대학 졸업 후 학교에서 교사로 채용하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잠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은행에 다니면서 비록 성차별이 있었지만 은행원으로서 그때까지 쌓았던 경력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이면엔 그토록 힘든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조직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그때 이후로는 단 한 순간도 진로 고민 없이 오직 은행원으로 살았다.

◇노동조합 = 온 국민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IMF 사태는 금융권에 가장 강력한 태풍을 몰고 왔다. 당시 은행이 통폐합되고 부실 금융기관 퇴출 사태를 겪으며 여직원들이 대거 퇴직하는 아픔이 있었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그때 노동조합에서 여직원 구심점 역할을 요청했다. 그사이 결혼하고 돌 지난 딸이 있었기에 상황이 녹록지 않았지만 기꺼이 나섰다. 1998년 1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4년 동안 노동조합 국장(현 부위원장)을 맡았다. 

인터뷰 도중 그는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보였다. 그의 남편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행정관과 직전 허성무 창원시장 시절 경제특보를 지낸 사람이다. 겉으로는 출세 가도를 달린 듯 하지만 압도적 보수 편향의 지역 정치권에서 진보 정치인으로 보낸 시간은 고달프고 힘들었다. 세 번의 출마와 낙선은 그를 단단하게 했지만 아버지는 사위의 정치 활동에 딸 고생시킨다고 못 마땅해 하셨다. 하지만 아이의 하원 시간 이후에 기꺼이 외손녀를 돌봐주고 사위의 선거를 도우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은 남편의 첫 국회의원 보궐 선거일이었다. 직장과 선거로 바빠서 암투병하시던 아버지 병실 한 번 제대로 못 지킨 미안함이 지금도 남아 그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정원(뒷줄 가운데) 경남은행 상무가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경남은행
이정원(뒷줄 가운데) 경남은행 상무가 직원들과 함께한 모습. /경남은행

◇인맥왕 = 그는 2005년 10월에 지점장으로 승진했다. 둘째가 세 살 되던 해, 육아로 힘든 시기였지만 은행에서는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노동조합 활동을 한 뒤 여자 지점장을 맡았다는 상황의 특수성으로 주시하는 눈이 많았다. 지배인인 지점장과 조합원 사이에서 균형을 지니고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 역할 또한 멋지게 해냈다. 사용자이지만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적극 권장하고 인정했다. 후배들은 이런 지점장의 입장을 먼저 헤아리고 이해해 주었다. 사람 마음에 가장 빨리 가닿을 수 있는 길은 진정성임을 깊이 느꼈다.  

육아와 업무, 사회적 관계, 영업해야 할 일은 많았고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경남은행 여성 지점장이라는 이름은 자랑이자 부담이었기에 최선을 다해 잘 해내고 싶었다. 

시간을 쪼개가며 대학원에 진학해 2013년 무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회단체 활동을 하며 CEO 과정 등으로 인맥을 쌓고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경남은행 인맥왕이 됐고 차츰 영업 성과로 증명했다. 그는 이런 노력 끝에 마침내 2018년 1월 상무대우로 영업 본부장에 올랐다. 

이 길고 긴 시간에 우여곡절인들 없었을까. 특히 그가 담당 임원일 때 겪었던 라임 펀드 사태는 고객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면 뼈아픈 일이었다. 

◇또 다른 항해 = 앞으로 은행은 지금과는 다른 거대한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전의 대면 영업 중심의 업무에서 비대면 중심, 디지털 혁신 요구는 더욱더 거세게 몰아칠 것이고, IT 기반의 다양한 경쟁 회사들의 도전도 더욱더 강해질 것으로 생각한다. 기존 IT 업체에 금융의 옷을 입히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전통 은행에 IT를 제대로 접목하여 혁신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취약 계층 금융 교육, 보이스 피싱 방지 강화 등의 새로운 역할도 해내야 한다. 그는 창의력 강화와 디지털 혁신이라는 역할이 지금 해내야 할 눈앞의 숙제라 생각하고 그 방법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이정원 경남은행 상무가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윤은주 시민기자
인터뷰에 응한 이정원 경남은행 상무. /윤은주 시민기자

이전에 그는 치마를 즐겨 입었지만 이제는 바지정장이 옷차림의 공식이 됐다. 자신 스스로 전투 복장이라 부르는 이 차림은 유리천장을 깼지만 여전히 눈에 보이지 않는 편견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여성이 아니라 임원으로 인정받겠다는 다부진 각오의 표시였다. 그는 언제나 개인 이정원이 아니라 '경남은행의 대표인 이정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생활한다. 자신을 바라보며 가정과 직장의 두 가지 추 사이에서 갈등하는 후배들을 위해 갈 수 있는 만큼 멀리 가보고 싶다는 꿈을 지니고 있다.

현재 경남은행 행원 수는 2700여 명인데 남녀 비율은 반반 정도다. 하지만 전체 임원 17명 가운데 여성 임원은 단 두 명뿐이다. 2022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 이상 상장기업은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하지 못하도록 자본시장법이 개정돼 여성 등기이사를 의무화했다. 산업 전반에 확산하는 ESG 경영 흐름과 조직 내 여성의 역할을 확대하고, 이사회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외부 영입이 아닌 조직 내 인재 육성으로 여성 이사가 선임된다면 조직 발전에 훨씬 긍정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는 때로 홀로 우뚝하게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이거나 폭풍우 거센 바다를 앞서 헤져 나가는 선장이다. 앞으로 어떤 항로를 개척해나갈지 남은 항해를 기대와 응원으로 바라볼 참이다.
/윤은주 시민기자(수필가·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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