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성격장애부터 평범한 사람까지 다양
정신질환으로 한정할 수 없어 치료 답 못 찾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 속담은 아무리 뜻이 굳은 사람이라도 여러 번 권하거나 꾀고 달래면 결국은 마음이 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과거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선 지속적인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통용되었으며, 특히 일방적인 구애를 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말이기도 했다.

당신은 여전히 이 속담이 구애할 때 유효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재고해보시라.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구애 행위, 이는 그냥 스토킹일 뿐이다. 사람은 나무가 아니다.

또 죽었다. 하나도 새롭지 않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스토킹 범죄에 관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늘 그랬다. 불과 지난해 세 모녀를 살해한 스토커 김태현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음에도 현실적으로 나아진 건 하나도 없다. 인터넷 포털 검색창에 "왜 안 만나줘"를 검색하면 스토킹 범죄 기사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진다. 실제로 많은 이가 스토킹 피해 경험을 토로하지만, 강간이나 살인으로 이어진 후에야 반짝 관심을 얻을 뿐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입법부와 사법부에 계신 분들의 입에서는 "구애하는 청년들을 다 전과자로 만들 셈이냐", "좋아하는데 안 받아줘서"와 같은 말들이 나온다. 피해 현실과 사회 인식의 격차가 천리나 된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18일 한 시민이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연합뉴스

◇전형적인 스토커 프로파일은 없다 = 스토킹은 상대방 의사에 반하여 의도적·악의적·지속적으로 따라다니며 정신적·신체적으로 괴롭히는 행위를 뜻한다. 스토킹이 살인사건으로 이어져 언론이 주목하게 되면, 사람들은 피해자의 행동, 즉 '그럴만한 여지를 주었는가'를 따진다. 또 가해자가 성격 이상이나 정신 병력을 두고 있는지를 궁금해한다. 때문에 망상장애·우울장애·조현병 등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음을 주장하는 건 극악무도한 살인범들의 필수 선택사항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이번 신당역 스토킹 살해범도 평소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아 형법 제10조 2항의 심신미약을 들어 감형을 노리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이 스토커가 될 가능성이 높은가? 아니면 스토커는 모두 정신 질환자인가? 뉴욕시티 대학의 심리학 교수이자 임상 심리학자인 미셸 갈리에타 (Michele Galietta)는 스토킹 범죄자들의 숨겨진 심리와 행동 특성을 연구한 결과 '전형적인 스토커 타입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그가 만난 스토커들은 경계선 성격장애를 가진 사람부터 매우 평범해 보이는 이까지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었다.

◇스토킹은 정신 질환이 아닌 행동이다 = 다음 사례를 보자. 30세 남성 ㄱ 씨는 전 여자친구가 원치 않음에도 과도하게 전화를 하였으며, 연락이 닿지 않으면 그녀의 가족에게 접근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전 여자친구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마치 관계가 종말에 이른 듯 해 더욱더 연락에 집착하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전 여자친구가 자신에게 스토커라는 단어를 쓰기 이전에는 자기 행동이 스토킹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심각성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는 대인관계를 맺는 데 미숙했고, 인생 경험도 적었다. 협소한 사회적 상호 작용 속에서 전 여자친구와의 관계에 집착하는 것이 그에게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 고백했다. 

스토킹 문제를 다룬 저널리스트 크리스틴 로(Christine Ro)가 파악한 유형이다.

갈리에타의 연구에 따르면, 스토킹을 유발하는 핵심 동기는 로맨틱한 운명에 대한 망상적 믿음, 이전의 관계를 되찾고자 하는 욕구, 피해자를 괴롭히고자 하는 가학적인 충동, 비대한 자기 존재감 등이다. 스토커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좁은 관심사, 적은 여가 활동 등의 특성을 보이며, 어린 시절부터 비롯된 분노와 불안감, 그리고 충동 조절 실패가 흔하다고 한다. 하지만 덧붙여 이러한 성향과 과거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스토킹을 저지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를 비롯한 청년단체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 발생지) 10번 출구 앞에서 스토킹 범죄 피해 대응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를 비롯한 청년단체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중구 신당역(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 발생지) 10번 출구 앞에서 스토킹 범죄 피해 대응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토커의 5가지 종류 = 1993년 스토킹에 관한 권위자인 정신과 전문의 폴 멀렌 (Paul Mullen)은 스토커들의 행동을 분석해 5가지 하위 유형을 제안하였다. 해당 하위 유형은 현재 스토커의 행동을 분류하는 데 가장 널리 사용된다.

'거부된 스토커'. 가까운 관계가 깨지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피해자는 주로 전 연인 혹은 배우자이다. 그 외에도 피해자의 가족·친구·동료와 같이 스토커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한 사람들이 주요 표적이 된다. 이 유형의 스토커는 관계 회복을 시도하면서도 거절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한다.

'분노한 스토커'. 스토커가 자신이 학대받았다고 느끼거나 어떤 형태의 부당함 혹은 굴욕의 희생자라고 느낄 때 발생한다. 피해자는 주로 낯선 사람이거나 약간의 면식이 있는 사람이다. 분노한 스토커는 피해자에 대한 편집적 사고를 발달시켜 복수의 한 방법으로 스토킹을 한다. 주로 심각한 정신 질환과 관련이 있다. 피해자에게 공포를 유발하면서, 여기서 얻는 힘과 통제를 느끼는 것이 핵심이다.

'친밀감을 추구하는 스토커'. 30세 남성 ㄴ 씨는 단골 카페의 여자 종업원에게 시식 서비스를 받은 것을 계기로 서로가 사랑을 키우고 있으며 특별한 관계라고 믿고 있다. 매일 카페에 방문하여 종업원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편지를 전한다. 이 사례에서 보듯 피해자들은 보통 스토커의 연애 욕구 표적이 되는 낯선 사람이다. 해당 유형의 스토커들은 피해자에 대한 망상적 믿음을 갖고 있다.

'무능력한 구애자'. 외로움이나 욕망의 맥락 속에서 스토킹이 발생하며 피해자는 낯선 사람이다. 친밀감을 추구하는 스토커와 달리, 그들의 첫 번째 동기는 데이트 혹은 단기적인 성관계를 맺기 위한 것이다. 보통 짧은 기간 동안 스토킹하지만, 그 기간이 오래 지속될 수도 있다. 스토커들은 통상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고통에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하다. 낮은 인지력 혹은 낮은 사회적 관계와 관련이 높다.

'포식자 스토커'. 40대 남성 ㄷ 씨는 같은 동네에 사는 10대 소녀를 스토킹하기 시작했다. 그 소녀의 등하교 시간에 맞춰 지켜보거나 학교를 배회하기도 하고, 성관계를 맺고 싶다는 욕구를 편지로 쓰기 시작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4년이 지나자 그는 소녀의 집에 침입하여 침실에 있는 사진첩과 속옷을 훔치기 시작했다. 이 사례에서 가해자는 보통 남성이고 피해자는 스토커가 성적 관심을 보이는 낯선 여성이다. 스토킹은 보통 성적 만족을 얻기 위한 방법(예: 관음)으로 시작되며, 성폭행의 전조로 볼 수 있다.

◇누구나 스토커의 표적이 될 수 있다 = 대중문화 콘텐츠에 등장하는 로맨틱한 이성 관계는 종종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상대가 데이트 신청에 동의할 때까지 따라다니거나, 마음에 드는 여성의 정보를 알기 위해 친구들을 동원해 미행하는 일들은 낯설지 않다. 크리스틴 로는 스토커들이 구애 방식을 미디어를 통해 학습하면서, 자신을 남자 주인공에 대입해 멜로 혹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이를 통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현실에서 스토킹은 명백한 학대에 해당한다. 친밀한 관계, 특히 전 파트너로부터 발생하는 위험도가 가장 높고, 훨씬 더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스토커를 치료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스토킹 행동의 다양성을 고려할 때, 일반적인 치료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심리학자들 또한 치료를 어떻게 구체화할 것인지에 대해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그들의 충동과 강박을 중점에 두어 치료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이마저도 성공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예방과 엄벌이 최선이지만 우리 법과 사회가 스토킹 범죄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더 많은 여성이 희생되어야 할 듯하다. 

/구연수 시민기자(심리학 작가)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업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