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저쪽 보고 들어야 공명정대
국민 내면 헤아리는 혜안 가져야

조선 중기 시인 백호(白湖) 임제(1549∼1587)는 전남 나주 사람이다.

서로 헐뜯고 파당을 지어 공명을 탐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관직생활 10년을 청산하고 나라 곳곳을 떠돌며 가는 곳마다 숱한 일화를 남겼다. 술을 좋아하여 잔칫집에 갔다가 술에 흠뻑 취해 집으로 돌아가고자 말을 탔는데 신발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다.

하인이 "나으리, 신발을 짝짝이로 신으셨습니다요"라고 하자 임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야 이놈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길 왼편에서 나를 본 이는 나막신을 신었구나 할 테고, 오른편에서 본 이는 가죽신을 신었구나 하겠지. 괘념치 말고 어서 집에나 가자."

사람에게 왜 눈이 두 개인가? 그것은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아라는 뜻이고, 사람에게 귀가 두 개인 이유는 이쪽 말도 듣고 저쪽 말도 들으라는 뜻이라 하였다. 왼쪽의 나막신을 보고 저편도 당연히 나막신이겠지 판단하기 쉽지만 진실은 가죽신이다. 진실을 꿰뚫는 두 눈이 필요하다. 법정에 왜 검사와 변호사가 필요한가? 이런저런 죄를 지었으니 벌을 주십사 청하는 검사도 필요하고, 죄를 지었으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음을 대변하는 변호사도 필요하다. 이쪽 말도 듣고 저쪽 말도 듣고 나서 판사는 판결을 내린다.

이것은 공정한 판결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넉 달을 넘기고 있다. 국민의 신음소리, 고통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여야 간 창과 방패의 부딪치는 시끄러운 금속음만이 천지에 가득하다.

그래서 국민은 절망의 한숨을 내쉰다. 입으로는 서로 민생, 민생 하는데 민생은 어디로 갔는가.

원불교를 창건하신 소태산 대종사는 <요훈품> 4장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돈이나 지식이나 권리가 많으면 그것이 도리어 죄악을 짓게 하는 근본이 되나니, 마음이 바른 뒤에야 돈과 지식과 권리가 다 영원한 복으로 화하나니라." 바른 마음이란 무엇일까? 왼쪽도 보고, 오른쪽도 보이는 밝은 눈을 가진 지혜의 마음이다. 한 아이를 놓고 서로 친모를 주장하는 두 여인을 놓고 이쪽 말도 듣고, 저쪽 말도 듣고 나서 아이를 두 토막 내어 서로 나누어 가지라 했을 때 안 가져도 좋으니 아이를 토막 내지 말라는 친모를 가려내는 솔로몬의 지혜가 오늘날 목마르다. 바른 마음은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공명정대'한 마음이다. 국민이 진정 바라는 내면을 헤아리는 혜안을 가진 마음이다. 장유 대청천 천변의 산책길에 나오면 많은 사람을 보게 된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사람, 반려견과 함께 행복한 미소를 보내는 사람, 흰머리 휘날리며 두 손을 꼬옥 쥔 노부부의 힘겨운 발걸음도 보인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 피부를 스치는 상쾌한 바람소리, 머얼리 개 짖는 소리까지 두 눈과 두 귀를 가지고 오늘도 일상을 살고 있다. 마음의 두 눈과 두 귀도 밝았으면 좋겠다.

/김진성 원불교 김해장유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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