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65세 이상 고령자 사고는 아이러니하게도 노인의 날(10월 2일)이 있는 10월(9.7%)에 가장 많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보행 교통사고 가운데 노인 비중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행정안전부 통계) 중 고령자 비율은 54.1%에서 59%로 오름세입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드는 지금, 교통약자 가운데 이제 '노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두 차례에 걸쳐 노인 보행권 실태와 개선 방안을 짚어봅니다.

노인 보행자는 교통사고가 나면 대부분 크게 다친다. 무릎이나 허리 등 비교적 불편한 신체 특성 때문에 울퉁불퉁한 보도블록도 노인이 보행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노인보호구역은 노인 보행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해 실속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과 18일 창원시 마산합포노인종합복지관과 마산어시장 일대에서 노인들을 만났다.

◇걷는 노인들 = 김영식(67·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 씨는 하루 3시간 이상을 걷는다. 현동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댓거리, 어시장 등으로 나와 일을 보는데, 걷는 환경에서 차이를 느낀다. "댓거리 쪽은 잘돼 있는데, 나이 많은 사람이 자주 오가는 어시장 쪽은 오히려 보행로가 불편하다. 어시장 버스정류장 근처 보도블록이 너무 울룩불룩하다. 완만하게 해줘야 하는데, 튀어나온 블록은 젊은 사람 발에도 걸리고 꺼진 곳도 많다."

실제로 어시장 돼지골목 앞 보행로는 평탄했지만, 건너편 담한의원 앞 '어시장'(KT서마산지점 방면) 버스정류장 주변 보행로는 울퉁불퉁한 편이었다. 정류장 앞 도로와 보행로 경계석도 어른 손 한 뼘이 훌쩍 넘을 정도로 맞은편 경계석보다 높았다. 버스를 타거나 내릴 때 경계석이 높으면 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자산동과 어시장 사이 3·15대로와 합포로변을 따라 걷는 노인이 많았다. 창원 마산합포구 자산동에서 손수레를 끌고 어시장으로 향하던 70대 여성 2명도 "(보행로는) 대체로 잘 되어 있는 편인데, 보도블록에 발목이 접질리거나 주차방지시설(볼라드)에 부딪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어시장 근처 안과에 들렀다가 자산동 집으로 돌아가던 할머니 김모(85) 씨는 경남대 창업보육관 앞 계단에 앉아 쉬었다. "수술을 해서 허리가 안 좋지만, 집에 들어앉아 있으면 뭐 하노. 마을버스가 다녀도 걷는 게 건강에 좋으니까. 좀 힘들면 이렇게 앉아서 사람 구경하고, 일부러 걸어다니며 운동한다."

정필인(83) 씨는 부림시장과 어시장에서 50년째 과일·채소 장사를 하고 있다. 자산동 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장사하러 나오는데, "큰길(현 합포로)이 새로 나는" 장면도 목격했다. 정 씨는 "주로 할머니들이 걷거나 버스를 타다가 넘어져서 119구급차량이 오는 것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실속 없는 노인보호구역? = 어시장 일대는 노인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5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마산합포노인종합복지관이 있다. 복지관 근처는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더 많은 노인이 오가는 어시장 일대는 노인보호구역 밖이다.

노인보호구역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도 명확하지 않다. 복지관에서 이마트 마산점 방면 서성로를 따라가면 불과 100m 만에 '노인보호구역 해제'라고 노면에 표시돼 있다. 그런데 어시장 방면 서성광장 교차로 200m 구간에는 '노인보호구역'이라고 적혀 있음에도, 시작과 해제 지점을 인지하기 어렵다. 심지어 제한속도는 시속 50㎞다.

노인보호구역이 형식적으로 복지관, 경로당 등 시설 중심으로 생기는 데다 노인 동선이 복잡한 곳은 제외돼 있어 보행자 안전 대책으로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민모임 '걷는사람들' 최명 활동가는 "어린이보호구역과 비교하면 노인보호구역은 도로 상에 흰색 글씨가 적혀 있지만, 시인성이 떨어지고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사고가 월등히 많은 어시장 주변 등이 빠져 있는데, 노인보호구역 지정 과정이 합당한지 의문이다. 노인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면 보행자와 운전자 모두 인지하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TAAS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서 '교통안전지도'를 보면, 노인보호구역인 마산합포노인복지관 반경 300m 안에서 최근 3년간(2019~2021년) 65세 이상 노인 보행자 사상 사고는 10건(사망 1명·부상 10명)이었다.

이와 비교해 어시장에서 200m 정도 떨어져 있고 창동·오동동 들머리인 국민은행 사거리 반경 300m 안에서는 25건(부상 26명)으로 노인 보행자 사고가 더 잦았다. 국민은행 사거리는 2020년 행안부 '노인 보행자 사고 다발지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노인 보행자는 사고가 나면 크게 다쳤다. 복지관 주변 5명, 국민은행 주변 22명이 '중상'이었다. 대부분 안전운전 의무 불이행,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 사고로 이어졌다.

◇경남, 초고령사회 코앞 = 경남은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19.1%(전체 329만 991명 중 62만 9143명, 올 8월 주민등록인구 기준)다. 이 수치는 증가하고 있다. 2018년 15.5%, 2019년 16.3%, 2020년 17.4%에 이어 지난해는 60만 명을 넘어서며 18.4%를 기록했다. UN은 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라고 구분한다. 경남 비율은 전국 평균(17.7%)보다 높다. 전남(24.9%), 경북(23.5%), 전북(22.9%), 강원(22.4%), 부산(21.1%), 충남(20.4%), 충북(19.6%)에 이어 전국 17개 시도 중 여덟 번째다.

경남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노인 보행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조은희(국민의힘·서울 서초갑) 국회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2021년 시도경찰청별 전체 교통사고, 노인보행자 교통사고' 자료를 보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노인 보행자 비율이 경남은 25%로 대전(31.6%), 광주(30.6%), 서울(28.8%)에 이어 전국 네 번째다. 이는 전국 평균(20.6%)보다 높은 수치다. 지난해 경남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252명) 가운데 노인 보행자는 63명(25.0%), 부상자(1만 5049명) 가운데 노인 보행자는 671명(4.5%)이었다.

최명 활동가는 "최근 12세 이하 어린이나 고령자 사고 수치가 낮아졌는데, 안전대책 강화도 있겠으나 코로나19로 야외 활동이 줄어든 영향도 있을 것"이라며 "전국 보행 사상자 59%가 노인인데, 이 비율은 계속 늘어나지 않을까 싶다. 고령화 속도에 맞춰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행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최 활동가는 "자전거, PM(전동킥보드 등 개인형 이동장치), 전기자전거까지 보행로를 침범하면서 관련 사고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며 "보도에 있으면 차를 피할 수 있어 안전하다고 여기지만, PM이나 전기자전거 등은 예측할 수 없어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사고가 나서 뭔가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보행자가 위협을 느끼지 않는 보행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짚었다.

최 활동가는 "노인 보행권에 깊이 관심을 둔 시민단체가 없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복지관에서 노인 운전면허 반납과 관련한 교육을 하는데, 운전을 안 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돼 보행권 안내 또한 필요하다. 설문조사 요청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동욱 기자

※ 이 기사 취재보도는 경남도민일보 후원회원이 제안했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