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1980년대 녹화공작 가해자 의혹
공안회귀 아니라면 정부가 진실 밝혀야

일제 강점기도 아니고 군부 독재시대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난데없이 '밀정'(프락치)이 소환됐고, 강제징집(강집)과 '녹화사업'이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윤석열 정부가 논란 끝에 행정안전부 산하에 경찰국을 신설하고 초대 국장에 김순호 치안감을 임명하면서다.

군사정권 시절인 1980년대 함께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했던 옛 동료는 3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김 국장을 향해 밀정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어 국장 사퇴와 함께 옛 치안본부 부활로 의심받는 경찰국 해체를 요구했다. 이에 김 국장은 자신도 강제징집·녹화사업 피해자라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인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

진실화해위원회는 올 초 마산 오동동 하천가에 마련된 사무실에서 3.15의거 관련 인권침해 사건 조사를 벌이면서 한편으로 강집 및 녹화공작 피해자로부터 출장조사를 받았다. 강집과 녹화공작 피해자는 전국적으로 3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집과 녹화사업은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을 군대로 끌고 가는 데서 나아가 생각과 이념 바꾸기를 시도하고, 출신 대학 운동권 관련 첩보를 수집해 보고토록 한 더러운 공작이었다.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 고문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친구와 조직을 배신하지 않으려고 버티거나 드러난 사실을 중심으로 적당하게 '보고'해주고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 복학 후 사회로 진출했다. 이 과정에서 8명은 안타깝게도 의문사 형태로 발견돼 유족들이 지금도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김 국장은 강제징집에 이은 녹화공작 과정, 전역 후 노동운동 시기 두 차례 밀정 의혹을 받고 있다. 먼저 1981년 대학 입학 후 서클에 들어가 학생운동을 하다 강집이 됐는데, 보안사에 그가 낸 보고서엔 서클 관련 조직도와 핵심인물 관련 사항이 너무 상세히 기록됐다고 한다.(MBC2022.9.14.) 1985년 전역 후엔 1988년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에 가입, 부천지구 조직책임자까지 지냈다. 그러던 그가 치안본부가 인노회를 이적단체로 몰아 탄압하기 시작할 즈음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인노회 8월 7일 성명 일부) 경찰에 끌려가 조사를 받은 동료들은 김 국장만 알 수 있던 내용을 경찰이 너무 상세히 파악하고 있어 놀랐다고 증언했다. 이후 인노회 관계자들은 줄줄이 구속됐다. 김 국장의 서클 선배이자 인노회를 함께 했던 최동은 경찰에서 심한 고초를 겪고 풀려난 후 정신분열증 등 후유증을 앓다 분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인노회를 벗어난 김 국장은 주사파 활동을 했노라며 경찰에 자수를 했고 직후 대공분야 전문가로 특채돼 승승장구했다. 그는 녹화사업 당시엔 친구들과 술 마신 내용만 보고했고, 인노회 사건 수사가 끝난 시점에 경찰을 찾아갔기 때문에 동료 구속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대공경찰 특채도 운동권 경험을 토대로 증거물 분석 특기를 인정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럼, 김 국장 자신은 물론이고 그가 강집 피해자 신분일 때와 공안당국에 협조해 동료를 밀고한 것으로 의심받은 시기 진술 내용을 모두 보고 알고 있는 이 정부가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래야 경찰국 신설 논쟁에 앞서 초대 국장을 둘러싼 음험한 공안회귀 의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경찰 가족뿐만 아니라 이 땅의 민주화 과정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전국에서 처리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이 정권은 과거로 퇴행할 것인가, 미래로 나아갈 것인가.

/정학구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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