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위해 현재 견디라는 기성세대 훈계
삶 안정성 보장없는 청년세대에 안 통해

청년들의 선택이 문제라고 말하는 기성세대들이 많다. 더 이상 결혼이나 출산을 선택하지 않으며, 장시간 노동 등 회사 일에 전력을 쏟는 것도 싫어한다면서.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참기보다는 당장의 쾌락만을 추구한다고 훈계하는 이들도 많다.

'이대남'과 '꼴페미'로 표현되는 심각한 젠더갈등이 문제라고 말하는 경우도 많다. 역으로 청년을 하나로 묶지 말라는 반론도 많다. 과거처럼 비슷한 세대라고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각자의 처지, 가령 사회경제적 위치 등에 따라 생각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지나친 개인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청년에게서 공통으로 드러나는 감각이 있다. 그건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더라도, 그들의 선택 대부분은 불행을 피하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그 불행이 먼 미래의 불행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 행복을 위해 당장의 불행을 참으라는 것은 거짓말 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본적인 감각이다.

미래 직업이 달라진다면서 지금은 열심히 공부하라고 선생님이나 부모들은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는 것 자체도 힘든 일이거니와, 그렇게 해본들 미래에 안정적인 직업과 안락한 가정을 꾸린다는 보장이 없다. 그게 가능한 것은 상위중산층을 꿈꿀 수 있는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설사 가능하다고 해도 그건 직장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본인 또는 다른 사람, 가령 온갖 돌봄의 부담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여성 등의 희생 대가라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이미 과거의 고도성장은 불가능해졌다는 명백한 사실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견디라는 것은 그게 좋으냐를 떠나서 이후에는 좋아진다는 것이 확실할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더 안 좋아질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코인이나 주식, 좀 더 여유가 있는 경우 '영끌'해서라도 내 집을 마련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기성세대가 생각하듯이 그 위험성을 모르는 한탕주의가 아니라, 그렇게 해서라도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절박한 노력에 가깝다. 입시 등 각종 공정성에 분노하는 것도 그나마 그런 기회를 불공정하게 빼앗아간 이들에 대한 분노이며, 서로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일단 피해를 보면 나중에 그걸 회복하기 어렵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성세대가 우선으로 고민해야 할 일은, 최소한의 안정성을 만들어주려는 노력이다. 스스로 반성한다면서 우리는 이제 물러나고 젊은 사람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도 일부만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청년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가? 스스로 양보해서 관문을 좀 넓히자는 식이 아니라, 관문 밖 사람들도 최소한의 안정성은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산층이 아니라 노동자, 수도권이 아니라 지방, 남성이 아니라 여성 등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도 최소한의 안정성은 확보되도록 전자의 사람들이 더 많이 부담하려는 실질적인 노력 없이, 값싼 반성과 훈계만 늘어놓는 것은 일종의 립서비스일 뿐이다.

/이장규 노동사회교육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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