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거제시 거제면 외간리는 둔덕면 바깥쪽에 있다고 해서 외간덕(外看德)이라 불렸다. 1769년에는 외간덕방(外看德坊)이라는 이름이 쓰이다가 1915년 들어 현재 지명인 외간리(外看里)가 되었다. 읍내에서 바라볼 때 가장 가까운 바깥쪽에 있는 큰 마을이라는 뜻도 지니는데 이곳에는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작디작은 마을이 여럿 나뉘어있다.

이번에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딘 곳은 남해 물줄기를 끼고 도는 외간마을 동네길이었다. 길 이름은 외간옥산1길. 대봉산과 둔덕면 옥동으로 이어지는 고갯길을 넘으면 나온다. 이곳에 들어서면 좁디좁은 골목 사이사이로 오래된 가옥들이 고개를 삐죽 내민다. 따닥따닥 붙어있는 시골집이 오밀조밀 정겨운 시골 운치를 한껏 뽐내기도 한다. 희미하게 난 숲길과 띄엄띄엄 골목을 잇는 마을길은 아늑한 풍광을 이룬다.

거제 외간리 동백나무. 부부나무라도 불린다. /최석환 기자
거제 외간리 동백나무. 부부 나무라도 불린다. /최석환 기자

◇외간마을을 지킨 수호신 = 외간리 외간마을에는 수호신처럼 여겨지는 나무가 두 그루 있다. 외간리 동백나무다. 높이 7m, 둘레 2m 크기인 이 나무들은 글자 그대로 겨울에 꽃이 핀다고 하여 동백(冬柏)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두 그루는 동쪽과 서쪽으로 나란히 마주 보고 심겨있다. 그래서 부부 나무로도 불린다. 현재 울타리 안에 둘러싸여 보호되고 있다.

외간마을회관 방면으로 쭉 올라가면 동백나무가 모습을 드러낸다. 겨울철 나무들이 빛바랜 잎을 떨구고 앙상한 모습을 보일 때 부부 나무는 꼿꼿이 꽃을 피운다. 10월부터 한 송이씩 나오기 시작해 이듬해 3월 절정을 이룬다.

4월까지도 꽃을 피운다. 수령은 300년으로 추정되는데 지금도 여전히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 오래 산 나무임에도 예나 지금이나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외간리 동백나무. /최석환 기자
외간리 동백나무. /최석환 기자

1991년 12월 경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부부 나무는 마을 사람들에게 수호신으로 각인돼 있다. 주민들은 부부 나무를 가정의 화목과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존재로 여긴다. 매해 12월 마지막 날이 되면 나무 밑에 자리를 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외간마을에서는 부부 나무가 조선시대 전주 이씨 효령대군 9대손인 이두징(1623∼1660) 선생 입향 기념으로 심긴 것으로 전해진다. 동백꽃이 골고루 피면 그해 풍년이 들고, 어느 한쪽만 피면 흉년이 든다는 전설도 입에서 입으로 퍼져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청마 유치환 생가. /최석환 기자
청마 유치환 생가. /최석환 기자

◇청마 유치환 선생 숨결 깃든 방하마을 = 대봉산과 산방산 등 구불구불 이어지는 숲길 구간을 지나면 둔덕면 방하마을과 맞닿는다. 산방산과 산방마을 아래쪽에 있는 방하마을은 시인이자 교사였던 청마 유치환(1908~1967) 선생이 나고 자란 곳이다.

1908년 음력 7월 14일 방하리에서 태어난 유치환은 평생을 시와 함께한 인물이다. 이 동네를 걷다 보면 그의 생전 흔적이 하나둘 나타난다. 마을 여기저기에는 그가 썼던 시가 적혀있다. 그를 기념하는 공간인 청마기념관과 생가(방하리 507-5)도 있다. 생가는 초가집 두 채와 텃밭, 우물 등 1908년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바로 옆에 기념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유치환 일대기가 기록됐다. 그의 묘소로 이어지는 산책길도 만들어져 있다.

청마기념관 앞 유치환 선생 동상. /최석환 기자
청마기념관 앞 유치환 선생 동상. /최석환 기자

유치환은 1931년 <문예월간> 제2호에 시 ‘정적’을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했다.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 발간을 시작으로 생전에 시집 14권을 냈다. 청년문학가협회장과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문인 경력을 인정받아 서울시와 부산시, 경상북도가 주는 문화상을 받았다. 대한민국예술원 공로상도 거머쥐기도 했다.

방하마을 팽나무. /최석환 기자

방하마을 하면 대표적으로 유치환이라는 인물이 먼저 꼽히지만, 청마기념관 앞쪽에 심긴 350년 된 팽나무도 볼거리다. 노랗게 물든 나무가 우뚝하게 서서 마을 초입부터 방문객을 맞아준다. 높이는 18m, 둘레는 3.5m에 이르는데 마을 주민 사이에서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금 이 마을에 가면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갈아입은 팽나무가 줄기차게 가지를 내린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다.

마을에는 고려 공주샘도 있다. 공주샘은 무신들에 의해 일어난 정변으로 고려 의종이 둔덕지역에 머물 무렵 같이 있던 공주가 의종에게 찻물을 받치고자 매일 같이 물을 길었다고 전해지는 우물이다. 주민 사이에서는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으로 유명하다. 우물 주변 벽면에는 공주 벽화가 생생하다.

고려 공주샘. /최석환 기자
방하마을 벽화. /최석환 기자
방하마을 벽화. /최석환 기자

◇신라시대 때 지어진 성벽 둔덕면 산자락에 켜켜이 = 거제 둔덕기성(屯德岐城)은 방하마을 맞은편 해발 325m 산속에 꼭꼭 숨어있는 유적이다. 이 성곽은 7세기 신라시대 때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현문식(懸門式·성벽의 외면에서 바라볼 때 凹형태) 구조인 동문, 그리고 삼국시대때에 처음 지어지고 나서 고려시대때에 정비된 성벽 등이 이곳에 남아 있다. 축성법 변화를 연구하는 데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둔덕기성. /최석환 기자

방하마을에서 기림마을을 지나 구불구불 이어지는 언덕을 넘은 다음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산밑으로 내려오면 얼추 4㎞ 거리다. 오르는 길이 그리 험하지 않다. 둔덕기성은 2010년 국가지정문화재가 됐는데 그 덕에 성벽 바로 밑까지 길이 정비됐다. 차가 오를 수 있을 정도로 잘 닦여 있다. 주차장도 만들어져 있다.

둔덕기성. /최석환 기자

성은 4만 4060㎡로 면적도 넓고 다소 경사도 있지만 천천히 둘러보며 가을 정취를 맛보기 좋게 조성돼 있다. 이곳 산밑 풍경이 절경이다. 한 바퀴를 쭉 돌아보고 나서 맨 꼭대기에 올라 산 밑을 바라봤더니 바다는 하늘하늘한 에메랄드빛이었다. 내리쬐는 햇볕에 바다 군데군데가 하얗게 반짝이기도 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삼은 성벽, 파란 하늘과 어울린 단풍나무가 그윽한 정취를 뿜어내는 듯했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뤄 만들어낸 풍광을 뒤로하고 성에서 내려왔다.

둔덕기성에서 만난 풍경. /최석환 기자
둔덕기성에는 돌탑이 여럿 쌓여있다. /최석환 기자

 

길라잡이
남파랑길 26코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쭉 거제지만, 27코스는 종착점이 통영이다. 시골길이 대부분이라 중간중간 편의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행도 있어 물은 미리 준비해서 가야 한다. 등산 구간이 많으나 난도가 높진 않다. 코스 주변으로는 문화재가 많으니 여정이 끝난 뒤 둘러보는 것도 묘미가 될 테다.

/최석환 기자

둔덕기성 밑 거림마을 풍경. /최석환 기자
둔덕기성 밑 거림마을 풍경.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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