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7대 도시 명성 되찾으려 무리하게 기업 유치
경제적 효과에 '의문' 품은 전문가들
개발 보상금으로 주민 갈라놓은 행정과 기업

2007년 어느 가을날이었다. 조용한 마을 안에 어디선가 쉴 새없이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들려왔다. 희뿌연 먼지까지 날려 기침이 저절로 나왔다. 대형트럭들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마을로 향했다. 트럭이 무거운 자재를 싣고 좁은 시골길을 지나다녔다. 지반이 약한 땅이 흔들리면서 오래된 집들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바다가 메워진 수정마을 공유수면매립지(21만 44㎡·6만 3538평) 위로 조선 블록 용접을 위한 변전 시설, 가스 저장탱크, 관로 등이 세워졌다. 집채보다 커다란 선박 블록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마산시는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파제 공사를 한다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공유수면매립지는 1990년 택지 용도로 만들어졌다. 마산시는 2006년 STX중공업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들은 매립지를 택지 용도에서 산업 용도로 바꾸는 매립사업 목적변경신청을 했다. 아무도 모르게 조선 기자재 생산공장이 수정마을 안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2001년 9월 창원시 마산합포구 수정마을 매립지 현장. /김구연 기자
2001년 9월 창원시 마산합포구 수정마을 매립지 현장. /김구연 기자

◇기업 유치에 목마른 마산시 = 이 모든 과정에 ‘수정마을 주민’은 빠져있었다. 주민 설명회가 있었지만 피해 대책 마련은 논의되지 않았고, 주민 동의도 받지 않은 일이었다. 조선 기자재 생산 공장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거리로 뛰쳐나갔다.

시는 조선 기자재 공장이 지역 사회에 가져다줄 경제적 효과만을 거듭 강조했다. 그 즈음 STX중공업은 개발 보상금과 마을 기금을 주민들에게 제안했다. 그사이 수정마을 개발을 외치면서 매립목적변경에 찬성하는 주민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7년 11월 27일 반대 주민의 거센 항의에 부딪힌 마산시는 수정만 매립목적변경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3개월 만인 2008년 2월 26일 다시 강행으로 돌아섰다. 반대 주민들은 황철곤 전 마산시장에게 달걀을 던졌다.

당시 황 전 시장은 “STX중공업이 마산을 포기하면 다른 어떤 대기업도 마산에 오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행정 절차는 예정대로 추진하고 충분한 보상으로 주민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강경한 태도를 고집했다.

마산시는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마산 경제를 견인하던 한국철강(2003년), 한일합섬(2004년)이 연이어 마산을 떠나면서 지역 경제에 고심이 깊어갔다. 마산시는 기업 유치에 목말라 있었다. 마산시가 전국 7대 도시라는 명성은 옅어져만 갔고, 경남 7대 도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실감에 빠져있었다. 어떻게 하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가 최대 난제였다.

그 무렵 STX중공업은 본사 사옥에 ‘마산시민이 원하지 않으면 마산시에서 공장을 하지 않겠습니다’, ‘STX는 지역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곳에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쓰인 펼침막까지 내걸었다. 매립목적변경을 반대하던 주민들은 지역 사회로부터 지탄받기도 했다.

지난 2008년 3월 STX중공업 조선 기자재 공장 설립을 반대하기 위해 수정마을 주민들이 마산시청을 찾았다. /김구연 기자
지난 2008년 3월 STX중공업 조선 기자재 공장 설립을 반대하기 위해 수정마을 주민들이 마산시청을 찾았다. /김구연 기자

◇부풀려진 경제적 효과 = 이옥선 전 마산시의원은 조선 기자재 공장 조성에 부정적이었다. 그는 “여태까지 기업이 돈만 벌고 빠지기는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지역을 책임지지 않을 수 있겠다 싶었다”며 “STX중공업이 땅만 사놓고 분할해 다른 공장이나 산업으로 팔아넘기는 것 아닌가 불안했다”고 설명했다.

마산시는 수정마을에 STX중공업이 들어서면 3000~5000명 고용 효과, 2011년 6000억 원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마산시와 STX중공업이 제시한 자료를 불신했다. 심상완 창원대 교수와 정성기 경남대 교수는 경제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마산시가 제시한 고용 창출 효과 근거는 조선소 단위 면적당 고용 효과로 정확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본사 직접 고용인원, 하청업체 고용인원 비중 등을 따져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은 경제 효과도 매출액이 아닌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사회 경제적 손실, 생태계 손실 등은 계산되지 않았다고 짚었다.

장상환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조선업의 미래를 진단하면서 조선 기자재 공장의 경제적 효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장 교수는 STX중공업이 제시한 자료를 놓고 “조선산업 호황이 지속될 것을 전제로 작성됐기 때문에 고용 효과, 매출액 증대 효과, 세수 증대 효과도 과장됐다”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마산시는 지역 경제가 어려우니 기대한 만큼 성과가 안 나오더라도 무리하게 추진하려고 했었다”며 “그렇게 되면 지역 주민도 환경 문제 등으로 피해 보지만, STX중공업도 (조선 기자재 공장 유치를) 고집하는 게 맞지 않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회상했다.

◇“행정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사례” = 2009년 7월 24일 마산시의회 의정 시정질문과 답변 과정에서 당시 송순호 마산시의원은 정규섭 마산시 비전본부장을 상대로 마산시의 지방세 수입 효과를 추궁했다.

마산시는 STX중공업으로부터 매년 191억 원 지방세 수익을 얻는다고 했다. 유치 첫해만 해도 취등록세, 주민세 등 71억 원의 지방세를 거둘 수 있다고 홍보했다. 송 전 의원은 산업단지 안에서는 취등록세가 100% 면제된다는 점을 들어 ‘사기’라고 비판했다. 마산시가 STX중공업으로부터 투자확약서를 받지 않고 무리하게 조선 기자재 공장 유치를 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2011년 5월, 통합창원시가 수정산단 조성 포기를 선언했다. 2011년 7월, 감사원은 ‘수정산단 공유수면매립공사 총사업비 산정’ 관련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수정마을 매립지 소유권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87억 6699만 6301원에 해당하는 땅이 STX중공업에 넘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잘못된 회계 처리로 24억 원이 보상금 명목으로 빠져나갔다.

송 전 의원은 “마산시와 STX중공업이 기대 효과를 부풀리고,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면서 시민들을 속였다”며 “아직도 수정마을 때문에 마산이 발전되지 않았다고 인식하는 시민이 있다. 수정마을 주민들을 지역 발전을 가로막은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는 수정마을 갈등을 행정이 반면교사 삼아야 할 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행정이 욕심을 부려서 밀어붙이는 바람에 한 마을이 풍비박산이 났다”며 “잘못된 판단으로 20년 동안 마을공동체가 찢어지고 회복하기 힘든 상황에 놓였다”고 꼬집었다.

지난 2008년 3월 마산시청 브리핑룸에서 황철곤 마산시장이 STX중공업 조선 기자재 공장 유치를 강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지난 2008년 3월 마산시청 브리핑룸에서 황철곤 마산시장이 STX중공업 조선 기자재 공장 유치를 강조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깊은 상처만 남았다 = 마산시와 STX중공업은 조선 기자재 공장으로 어촌계 홍합 양식장이 파괴되니 보상금을 주겠다며 회유했다. 보상금으로 주민들을 구워삶았다. 수정마을 주민 이판국(65) 씨는 ‘밀양 송전탑 사태’를 떠올렸다.

그는 “마산시와 STX중공업은 주민 동의를 받기 위해 현금을 들고 다니면서 서명을 해주면 돈을 줬다”며 “조선 기자재 공장 설립에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200만 원씩 보상금을 더 줬는데 때마다 돈을 뿌려서 많게는 1700만 원까지 받아 간 사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주민들은 서로 등을 지게 됐다. 이 씨는 “행정에도 잘못하면 물어내라고 해야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황철곤 전 마산시장은 창원통합시장이 되기 위해 자기 마음대로 하고 가버렸다”고 지적했다.

황철곤 전 마산시장에게 수정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직접 물었더니 “이제 시장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는데 내가 말할 건 없을 것 같다”고 말을 아꼈다.

/김다솜 박신 기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