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공동체 회복 시동
공장 유치 무산된 수정 매립지, 앞으로는?
전문가의 해법은 제각각...'주민 동의'는 공감대

2020년 11월 18일 경남도 온라인 정책 제안 플랫폼 '경남 1번가'에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 제목은 '수정마을 마을공동체 정책 지원 요청'. 조회 수 1만 5446회, 찬성 457표. 이 제안은 경남 1번가에서 가장 짧은 시간 내 많은 득표수를 얻고서 경남도 정책으로 정식 채택됐다.

안차수 경남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정책 제안서에서 "택지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매립된 수정만이 조선소 용지로 변경되면서 수정마을 공동체가 붕괴됐다"며 "경남도가 주민 화해와 수정마을의 지속가능한 비전을 고민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적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수정마을에는 수정만을 메운 매립지가 남아있다. 2007년 마산시와 STX중공업이 매립지 위에 조선소 기자재 공장 유치를 시도하면서 공동체가 찬반으로 갈린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안 교수는 "그 무렵 황철곤 전 마산시장이 무리하게 허가를 내주고 개발을 추진하면서 마산에서 갈등 지역이 늘었다"며 "내가 살던 마산합포구 진전면 일대에도 레미콘-아스콘 공장 유치 찬반으로 갈등이 생겼다"고 회상했다.

당시 비어있는 땅은 모두 개발 대상이었다. 안 교수는 마산 진전·진북·진동·구산면 주민 상시연대기구인 '더불어 사는 내 고장 운동본부'  활동에도 동참했었다. 마산 지역 개발 분쟁지역 주민들과 연대하면서 개발을 막아내는 성과를 얻었다. 마산시청 앞 아스팔트 위에서 수정마을 주민과 연대했던 경험이 아직도 안 교수 마음 속에 남아있다. 

수정마을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안 교수는 2020년 11월 수정마을지킴이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수정마을 문제를 함께 고민해줄 조력자들을 불러모았다.

2021년 9월 경남대에서 수정마을 TF 구성 회의가 열리고 있다.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2021년 9월 경남대에서 수정마을 TF 구성 회의가 열리고 있다.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지자체·민간 문제해결 위해 합심 = 경남도와 창원시, 경남교육청도 손을 보탰다. 저마다 역할을 맡아 협업했다.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이 관련 기관 협업 회의를 추진하고, 주민 소통 공간 조성을 위한 재원 마련과 각종 보조금 사업을 연계해줬다.

심인경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사무처장은 "수정마을 문제는 지자체 개발 행위에서 출발했다"며 "행정도 책임이 있었던 만큼 지자체도 적극적으로 적극적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심 사무처장은 "지자체만 앞장서면 갈등 요인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도 됐기 때문에 지원하는 개념으로 갔다"며 "이전에는 주민 화합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경제적 기반을 만들고자 마을 협동조합 등 경제 공동체 만들기를 구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은 관계기관 협업도 이끌어냈다. 창원시는 주민공유공간 관리와 시설을 맡았으며, 경남교육청은 수정마을 폐교 활용을 허락했다. 수정마을 문제에만 6개 기관, 민간단체 등 15곳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의 노력으로 공동체 회복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으나, 매립지 활용 계획은 아직 없다. 채권단이었던 농협 손안에 규모 21만 44㎡(6만 3538평)에 달하는 수정마을 매립지가 있다. 누가 살지 아무도 모른다. 경남도는 아직 명확한 대안을 내놓지 않았으며, 창원시도 마찬가지다.

최승식 창원시 도시개발사업소 개발사업과장은 "수정마을 관련 계획을 어떻게 세우면 좋을지 창원시정연구원에 연구 용역을 의뢰할 예정"이라며 "내부적으로 면밀하게 매립지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 과장은 "수정마을 터는 사업 타당성이 잘 나오지 않아 이윤 없는 투자를 해야 할 수도 있고, 추가로 진입로를 만들어야 하는 문제도 걸려있다"고 덧붙였다. 

◇제주 강정, 밀양 그리고 수정 = 수정마을 문제는 경남연구원까지 닿았다. 때마침 경남연구원이 정책 연구에서 나아가 개발과 집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경남연구원 안에 수정마을 관련 공동 연구단이 꾸려졌다. 분야별 박사급 연구원 4명이 수정마을 개발 문제를 고민했다. 매립지 위에 다양한 주제로 여러 개의 도서관을 만들고, 국내 유일 출판문화 테마파크를 만드는 '1000개의 도서관' 건립 의견도 나왔다. 

홍재우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전 경남연구원장)는 "수변은 이제 새로운 공공자원이기 때문에 공단이나 아파트로 독점하는 개발은 50년 전 사고방식"이라며 "공동체가 수변을 공유하면서 거기에 완전히 새로운 산업이 들어와야 변화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산이 가진 수변이라는 자원을 모두가 나누는 방안을 제시했다. 해양 신도시와 연결해 문화산업이 마산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정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트라피스트 수녀원으로 모인 전문가들.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수정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트라피스트 수녀원으로 모인 전문가들.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경남연구원은 서강대SSK지역재생연구팀에도 수정마을 문제를 의뢰했다. 연구팀은 전국 주요 도시재생 사례를 연구하고 있었다. 2021년 3월 26일 수정마을 공동체 회복 1박 2일 워크숍이 열렸고, 전국 주요 도시재생 활동가 10여 명이 사례 발표를 하면서 수정마을에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워크숍에 참여했던 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수정마을은 창원 시내와도 가깝고, 주변 환경도 아름답기에 입지가 굉장히 좋게 느껴졌다"며 "거대한 구조물이 아니라 작은 공간이 여러 개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조 연구원은 "지자체장이 바뀌면 행정이나 제도, 원칙도 달라지기 때문에 제도적인 준비가 먼저인 것 같다"며 "수정마을 발전을 위한 조례를 만든다거나, 실생활에 도움 되는 실용적인 조례가 있어야 법적 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그동안 수정마을을 본 전문가들의 해법은 저마다 달랐지만, 하나의 분석을 제시했다. 이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주민 동의 아래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이상 수정마을 땅 위에서 갈등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데 고개를 끄덕였다.

2021년 11월 수정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만든 빛나리 마을학교에 수정마을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2021년 11월 수정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만든 빛나리 마을학교에 수정마을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경남지역문제해결플랫폼

수정마을은 제주 강정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과 닮았다. 세 지역 모두 개발로 공동체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기에 섣불리 접근해서는 안 된다. 

안 교수는 "책임사회라면 이 피해들을 보상하고, 치유할 의무가 있다"며 "제주 지역은 강정마을에 갈등치유 기금을 조성해주고 유람선 입항 사업을 만들어 줬었다. 밀양과 수정마을에도 그런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완수 경남도지사가 민간업자에게 수정마을 매립지를 그냥 던져버리면 다시 분쟁이 시작되고 걷잡을 수 없는 위기가 오게 될 것"이라며 "전국에서 모두가 탐낼 만한 미래를 수정마을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끝> 

/김다솜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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