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람' 연작 개인전 마무리
상반기 서울·덴마크 전시 계획
'게을리하면 도태' 왕성한 활동
국전 9차례 수상...초대작가로

‘바람이 분다’.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김태희(63) 화가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곳에는 산들바람이 불기도 하고 다른 곳에는 비바람이 치기도 한다.

지난해 끝자락 12월 30일 마산현대미술관에서 열한 번째 개인전을 마무리한 김 작가를 만나 작품 앞에 같이 섰다.

김태희 화가. 11회 개인전을 열고 있는 지난달 30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현대미술관에서 만났다. /박정연 기자
김태희 화가. 11회 개인전을 열고 있는 지난달 30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현대미술관에서 만났다. /박정연 기자

◇반복된 사각형 그 속에 부는 바람 = 김태희 화가 최근작은 ‘바람’이 주제다. 50호·100호·150호 캔버스 위를 빼곡하게 채운 사각형, 멀리서 보면 타일처럼 또는 책장을 가득 채운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품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각형들이 만국기처럼 펄럭이거나 따닥따닥 붙어 있는 지붕 위에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면균질회화(all over painting)는 화면에 어떤 중심적인 구도를 설정하지 않고 전체를 균질하게 표현한다. 화폭의 테두리까지도 그림으로 가득 채우고 화면 전체를 같은 강도로 칠한다. 작품 내에서는 부분과 부분 간의 관계를 결코 강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캔버스를 초월하는 확장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한다.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사각형의 반복에도 리듬을 주어 생동감이 존재한다.

김 작가는 “제 작품의 사각형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종(세로)으로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횡(가로)으로 오선지 같은 입체적인 선이 놓여 있다”며 “여기에 더해 그러데이션 기법을 적용해 표정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장방형 모양이지만 토대가 되는 배경은 다채롭다. 원형의 점으로 채우고 사각형을 올리거나 단청 문양 위에 사각형을 완성하거나 무궁무진하다.

그는 “밑작업을 하는 데 공을 가장 많이 들이는데 최소 3개월에서 최대 7개월까지 걸린다”며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의식을 집중 시킨다”고 말했다.

김태희 작 'Wind'. /김태희
김태희 작 'Wind'. /김태희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로 = ‘게을리하면 도태된다’는 신념으로 지내온 김태희는 지난 10년간 대한민국미술대전에 작품을 출품했다.

그동안 전체 9차례 수상 결과 지난해 ‘초대작가’에 이름 올랐다. 201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구상·비구상 부문에서 각각 입선한 이래로 2014년 입선(구상), 2015년 입선(구상·비구상), 2017년 특선(비구상), 2019년 특선(비구상), 2021년 입선(비구상), 2022년 특선(비구상)을 차지한 바 있다.

김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기에 남들처럼 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고 늘 생각 해왔다”며 “해마다 국전에 도전하는 일은 저와의 약속이자 작품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된다”고 밝혔다.

그는 국외 활동도 적극 펼치며 평가받는 것을 즐긴다. 2016년 미국 햄튼아트페어·뉴욕아트페어 때는 ‘섹슈얼’ 시리즈로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후 2017년 미국 LA아트페어, 2019년 홍콩 컨템퍼러리아트페어와 덴마크 노르딕아트페어에 참여했다.

“섹슈얼이라는 주제는 마니아 층이 있기 마련이지만 달리 말하면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측면도 있어 흑과 백처럼 반응이 갈리기도 합니다. 섹슈얼 시리즈로 대구아트페어에 참여한 이후 반응이 좋아 미국까지 가게 됐는데 예상치 못한 뜨거운 반응 덕에 자신감을 얻는 기회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바람’ 연작은 한편으로 ‘섹슈얼’ 연작과 궤를 같이한다. 기하학적인 직선의 나열과 배열이 ‘섹슈얼’ 시리즈에서 이미 시작됐다. 무수한 직선이 그리드를 형성하면서 화면 전체를 채우고 그 안쪽에는 인체가 흐릿하게 묘사되어 있다. 직선의 그리드는 마치 한국 전통의 발로 나체를 가리는 역할을 한다.

“2019년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국외 아트페어에 참가를 못했는데, 올해 4월에는 바람 시리즈로 덴마크에 갈 계획입니다. 5월에는 서울 논현동에 있는 비너스갤러리에서 개인전도 열 예정이고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 궁금하네요.”

김태희 작 'Negative & Positive'. /김태희
김태희 작 'Negative & Positive'. /김태희

◇끊임없는 도전은 기회의 열쇳말 = 김태희 작가는 1959년 고성에서 태어났지만 유년 시절을 마산에서 보냈다. 초·중·고를 마산에서 나온 그는 1960년에 일어난 3.15의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작업실 또한 마산 창동에 있다.

그가 남긴 작품 ‘분노의 순간’은 지난 2021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개관한 3.15의거발원지기념관에 걸려 있다. 100호짜리 캔버스 3개를 이어붙인 작품으로 3.15의거 전반을 볼 수 있도록 역사적 장면들을 콜라주 형태로 담았다. 앞서 2020년 마산 금강미술관이 3.15의거 60주년을 기념해 기획 초대전을 열면서 6명의 지역 작가가 각자 창작물을 쏟아낸 결과였다.

“작업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게 사실입니다. 긴긴 시간 빠져있다 보면 10시간이 훌쩍 지나기도 합니다. 한 번 매달리면 끝장을 보는 성미 때문에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면도 있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갖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면 기회는 언제든지 온다고 믿어요. 전업 작가로 사는 일이 녹록지 않지만 세상과 대화하는 일을 세밀하게 지속하겠습니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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