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세월만큼 단단한 동반자
다정한 모습으로 행진·맞절
"꿈꿨던 부부상 지금 이룬 셈"
웃음 속에 영정 사진도 찍고
서로 지켜주자 약속 되새겨

마산 신신예식장은 올해도 문을 열어 누군가에게 따스한 공간을 내어주었다. 박억부(86)·최복심(83) 부부는 새해 일찍 이곳을 찾아 삶을 기록하는 시간을 보냈다. 

지난 4일 낮 12시, 신신예식장 1층 미용실에서 박억부·최복심 부부와 이들의 막내아들 박정철(52)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박억부·최복심 씨는 어릴 적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한 동네에서 같이 어울리던 오빠 동생 사이였다. 먼저 연애를 제안한 건 박 씨였다. 당시 맞선 아닌 '연애'는 어른들에게 낯설었다. 최 씨는 "둘이 만난다고 하니까 양쪽 집에서 말렸다"고 말했다. 그래도 둘은 한 번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둘은 박 씨 군 제대 후인 1963년 1월 4일에 결혼했다. 

사천시에 사는 박억부·최복심 부부 지난 4일 창원시 마산 신신예식장에서 회상 결혼 사진을 찍었다. 촬영 전 박 씨와 막내아들 박정철 씨 모습. /주성희 기자
사천시에 사는 박억부·최복심 부부 지난 4일 창원시 마산 신신예식장에서 회상 결혼 사진을 찍었다. 촬영 전 박 씨와 막내아들 박정철 씨 모습. /주성희 기자

신신예식장에서 촬영한 날이 결혼 60주년이었다. 결혼에 골인한 이야기를 마치자 머리 단장과 화장이 끝났다. 박 씨는 "이런 치장은 처음"이라며 어색해했다. 옷을 갈아입고 옷매무새를 단장하는 데 1시간가량 걸렸다. 박 씨와 최 씨는 잠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이들은 결혼 직후의 삶을 다시 들려줬다. 

부부는 결혼 후 수저 두 벌만 들고 부산으로 갔다. 박 씨가 처음 한 일은 군복을 검정 염색약으로 물들여 작업복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박 씨는 "이후 되는대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신부 최복심 씨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탈의실에서 막 나오는 모습. /주성희 기자
신부 최복심 씨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탈의실에서 막 나오는 모습. /주성희 기자

부부 신혼집은 부엌이 딸린 월세 100원의 단칸방이었다. 그 집에서 첫째 딸을 낳았다. 이후 삼천포(사천)로 이사했다. 두 아들을 더 낳아 키우며 삼천포에 정착했다. 이곳에서는 멸치 가공 판매 일을 했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된 후에는 점포를 얻어 수산물을 판매 했다.  

박 씨는 "잘 안 되는 것을 잘되게 하는 게 사람이고, 잘돼 가는 것도 안 되게 하는 게 사람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았다. 박 씨는 재벌은 아니어도 마음만은 부자라고 늘 말하고 다녔다. 그 덕분에 집안도 화목했다.

박 씨는 턱시도를 입고 탈의실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60년 전 결혼할 때 양복을 입긴 했지만, 이 나비넥타이를 맨 건 처음인데 어떠냐"고 물었다. 대기실에 있던 일행은 박수로 화답했다. 박 씨는 그제야 웃음 지었다.

뷰부는 회상 결혼 사진을 찍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환환 미소를 보였다. /주성희 기자
부부는 회상 결혼 사진을 찍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환환 미소를 보였다. /주성희 기자

무겁고 손이 많이 가는 드레스를 입으러 최 씨가 탈의실로 들어갔다. 최필순(82) 신신예식장 실장과 송정자(82) 씨가 신부 최 씨를 도우러 따라 들어갔다. 둘은 신신예식장을 지키는 터줏대감이다. 신신예식장은 1967년부터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에서 무료 예식을 해왔다. 신신예식장으로 이어진 부부는 1만 4000쌍 이상이다. 이곳 백낙삼(91) 대표는 안타깝게도 지난해 4월 집에서 뇌출혈로 쓰러졌다. 현재 창원시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다. 최근 한 차례 고비를 넘기고 의식을 되찾았다. 원활한 의사소통은 어려운 상태이다. 지금은 백 대표 아내이자 신신예식장 실장인 최필순 씨와 이들의 아들 백남문(53) 씨가 신신예식장을 이끌고 있다.

옷을 다 갖춰 입은 80대 신랑·신부는 예식장에 입장했다. 이들은 사진 촬영만 예약했지만, 간단하게나마 구색을 갖췄다. 부부는 결혼행진곡에 맞춰 서로 팔짱을 끼고 그 팔을 다잡으며 주례대 앞까지 행진했다.

백남문 씨는 식장 중앙에 삼각대를 세우고 그 뒤에서 '김치' '스마일'을 외쳤다. 부부는 얼굴을 서로에게 맞대며 미소 지었다. 찍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미소는 점점 환해졌다.

부부는 "6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게 되면 신신예식장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던 서로의 약속을 지켰다. /주성희 기자
부부는 "6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게 되면 신신예식장에서 사진을 찍자"고 했던 서로의 약속을 지켰다. /주성희 기자

이들이 신신예식장을 알게 된 건 2015년 KBS <인간극장>을 보면서다. 그때 부부는 "우리가 60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이하게 된다면 신신예식장에서 사진을 찍자"고 약속했다. 부부는 건강하게 그 약속을 지켰다.

이날 50대 막내아들 박정철 씨는 카메라맨이었다. 예식장에서 사진 찍는 부모의 모습을 빠짐없이 촬영했다. 아들이 들고 있던 카메라는 아버지 것이다.

아버지 박 씨는 여행하거나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 항상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는 1960~70년대에는 주로 사진을 찍었다. 이후 소니 8㎜ 영상카메라, 소니 FX 6㎜ 영상카메라를 잡았다. 국외 여행 때도 영상 카메라를 꼭 챙겨 가족의 순간순간을 담았다. 

박 씨는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발코니에서 맥주 마시며 노을을 바라보는 부부 모습이었다"라며 "아내에게 우리도 저런 부부가 되자고 했는데 지금 그 꿈을 이룬 셈"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영상을 담아오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편집까지 했다. 중요한 부분을 잘라 이어 붙이고 배경음악을 덧붙여 CD에 저장했다. 부부 집에 영상 테이프와 CD에 담긴 가족 기록물이 가득하다. 최근에는 편집용 컴퓨터와 액션캠도 구매했다. 

부부는 전통 한복으로 갈아 입고 폐백 촬영을 했다. 얼굴은 '더는 욕심 없다'는 걸 말하는 듯하다. /주성희 기자
부부는 전통 한복으로 갈아 입고 폐백 촬영을 했다. 얼굴은 '더는 욕심 없다'는 걸 말하는 듯하다. /주성희 기자

부부는 신신예식장에서 서양·전통 예식 촬영을 모두 했다. 그리고 장수(영정) 사진도 찍기로 했다. 박 씨는 나비넥타이만 풀어 영정 사진을 찍었다. 최 씨는 진한 분홍색에 꽃무늬 있는 한복을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간의 삶이 얼굴에 묻어나는 듯했다.

막내아들 박 씨는 "두 분이 워낙 건강하고 정정하시니 영정사진 찍는 게 슬프지 않다"며 "아버지가 준비성이 철저하셔서 촬영하시는 것이고 5년 뒤에 다시 찍으실 것 같다"고 말했다.

부부는 일상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게 낙이다. 그 대화 속엔 삶의 끝에 관한 것도 있다. 남편 박 씨는 이렇게 말한다.

"보통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아내가 남는 경우가 많다. 요즘 아내 기억력이 예전만 못하다. 걱정이 된다. 내가 옆에서 지켜줘야 한다. 그래서 내가 딱 하루만 더 살기로 했다. 우린 그러기로 했다."

최 씨는 진한 분홍색에 꽃무늬 있는 한복을 입고 영정 사진을 찍었다. /주성희 기자
최 씨는 진한 분홍색에 꽃무늬 있는 한복을 입고 영정 사진을 찍었다. /주성희 기자

부부가 폐백 촬영을 앞두고 화려한 전통 한복으로 갈아 입었다.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었을 때보다 더 편해 보였다. 의자에 마주 앉은 이들은 수줍은 새색시, 새신랑은 아니었다. 연지곤지도 찍지 않았다. 모든 세월을 다 낚아 올려 더는 욕심 없다는 표정이었다.

백남문 씨가 폐백 촬영을 하며 이렇게 말한다. "김치! 올 한 해도 이렇게 웃으면서 보내세요!"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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