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건강보호제도 생겼다지만
욕설·모독·차별 사라지지 않아
해결 고민 끝에 퇴사로 이어져

아파트 관리사무소 노동자들이 일부 입주민의 폭언과 하대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사회 고질적 병폐여서 관련 법이 정비돼왔지만,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이들은 실효성이 없고 여전히 '갑질'을 견디기 힘겹다고 호소합니다. <경남도민일보>는 아파트 관리 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 경남의 현실과 다른 자치단체 사례까지 세 차례에 걸쳐 살펴봅니다.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ㄱ 아파트 관리사무소 노동자 최서영(가명) 씨는 여러 입주민의 폭언과 행패가 잇따라 최근 퇴사까지 고민하고 있다. '참고 또 참았던' 최 씨는 지난 17일 이를 언론사에 제보하고 창원중부경찰서도 찾아갔다.

최 씨는 "관리사무소 전화가 녹음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서 그런지 쌍욕은 기본이고 함부로 대하는 전화를 해서 너무 힘들다. 술을 먹고 와서 행패 부리는 이들도 있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일부 입주자의 안하무인 태도에 가슴이 답답해 일을 계속하기 버거운 상황이다. 그는 "주차나 쓰레기 등 문제로 항의하는데, 업무에 방해가 될 정도로 많다"며 "서비스직이지만, 한두 번이면 몰라도 이유 없이 욕을 해대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1000여 가구로 지난해 입주를 시작했다. 갑은 수없이 많지만, 을은 턱없이 적은 소수다. 노동자 3명이 입주민 전화를 받고 있다. 폭언이 심해지자 관리사무소에서는 녹음이 되는 전화기로 교체하거나 호신용 보디캠(몸에 붙이는 영상녹화 장치)을 지급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이곳 또 다른 노동자는 "아파트 하자 부분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언성을 높이면서 '너희가 해결해야지', '왜 이리 불친절하냐'는 말이 돌아온다"고 꼬집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고객 폭언 등에 따른 건강장해 예방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대면 또는 정보통신망 등으로 상품을 팔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 응대 노동자를 위해 사업주는 △폭언 금지를 요청하는 문구 게시·음성 안내 △상황 발생 때 대처법을 포함하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 마련 △건강장해 예방 교육 등을 해야 한다. 또 건강 문제가 발생하면 업무 일시 중단이나 전환, 휴식시간 연장, 치료·상담 지원, 고소·고발·손해배상 청구 등 지원도 의무사항이다.

창원 성산구 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통화 연결음에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고객 응대 노동자에게 폭언을 삼가야 한다'는 목소리 안내를 담고 있다. 더불어 입주민 폭언 등을 방지하려는 취지로 녹음 전화기 설치를 고민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곳 소장은 "녹음 기능이 있는 전화기 설치는 KT에 신청만 하면 된다는데, 알아보는 상황"이라며 "관공서가 아닌 데다 마음대로 설치할 수가 없다. 입주민 쪽과 계약도 무시하지 못하고, 입주자대표회의 동의와 의결을 받아야 한다. 녹음은 목적이 있어서 나중에 또 시빗거리가 된다"고 털어놓았다.

아파트 관리 노동자. /연합뉴스

아파트 관리 노동자들의 감정노동 문제가 심각하지만, 경남도 조례는 공적 영역에 국한돼 있다. 2019년 시행된 '경남도 감정노동자 권리보호 등에 관한 조례'는 고객 응대 등에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실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특정 감정을 표현하도록 업무상, 조직상 요구받는 노동 형태를 '감정노동'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감정노동 사용자'는 도지사, 도 산하 지방공기업과 출자·출연기관, 도 사무위탁기관, 도 지원을 받는 각종 시설장으로 정해놓고 있다.

관리사무소 내 고용 안정, 임금이나 성 차별 개선도 해묵은 과제다.

창원시 ㄷ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는 박효진(가명) 씨는 "관리사무소 노동자들은 입주민이 내는 관리비가 상승할까 봐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보장받지 못할 때도 있고, 노동조합도 없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실정"이라며 "관리사무소 내 업무 분담에서도 남녀 불평등이 오랫동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 역시 "관리사무소는 공용 공간 유지관리를 하고 가정 안에서 불편한 부분은 각자 챙기는 것이 맞는데, '우리가 월급 주는데 도대체 뭐 하느냐', '너무 편하게 일하는 거 아니냐', '주차 관리 안 한다'는 폄훼나 불만을 계속 듣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발표한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경남은 전체 137만 9000가구 가운데 73만 3000가구(53.2%)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관리사무소 노동자 현황은 경남도가 따로 집계하지 않으며, 시군에서 관리사무소와 연계해 공동주택 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이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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