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서 16회 개인전...서울 한옥갤러리서 그룹전 동시에
'빛' 주제로 작품 활동 지속...한지에 먹 쌓고 자개 수놓아

달이 차오른다. 보름달을 닮은 항아리를 보면서 소원을 빌어본다. 그림 속 항아리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겼을까.

‘빛’이라는 주제로 흔들림 없이 활동하는 노은희(42) 한국화가. 열여섯 번째 개인전 ‘푸른빛’이 열리고 있는 창원파티마갤러리에서 지난 28일 만났다.

◇달항아리에 담긴 소원들 = 작품 한 가운데 놓인 달항아리. 그 항아리는 푸른 자기가 되었다가 백자가 되었다가 한다. 양각 형식으로 먹을 채우면 푸른빛 달항아리가 뜨고, 음각 형식으로 여백을 채우면 보름달처럼 백자가 뜬다.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보름달. 그 보름달 같은 백자를 그리려면 항아리 모양을 남겨둔 채 여백을 세필로 꽉 채워야 하는데요. 나를 비우고 주변을 채우는 일이 그만큼 더 고단한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죠.”

노은희 작 '빛. 담다. - 푸른빛' 시리즈. /노은희
노은희 작 '빛. 담다. - 푸른빛' 시리즈. /노은희

한국화를 전공한 노은희는 한지와 먹을 소중하게 다룬다. 볼수록 포근함이 느껴지는 배경에는 한지가 있었다. 형광 물질이 들어간 백색이 아닌 천연펄프에서 주는 따뜻함이 배어있다.

“한지도 지역마다 빛깔이 다르고 두께나 질감이 모두 다른데 개인적으로 함양이나 전주에서 만든 한지를 주로 씁니다. 화선지와 달리 한지는 섬유질로 되어 있고 항균 효과가 있어 작품이 오래가는 장점도 있어 계속 고집하고 있습니다.”

빛 시리즈를 선보이는 노 작가는 이번에 푸른빛을 내고자 천연재료 쪽과 인디고 물감을 활용했다. 달항아리와 함께 매화와 대나무가 등장한다. 반짝이는 매화 꽃잎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자개가 빛을 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풀나풀 날리는 대나무 잎사귀는 어떤 이의 눈에는 깃털로 보이기도 한다.

노은희 작 '빛. 담다. - 푸른빛' 시리즈. /박정연 기자
노은희 작 '빛. 담다. - 푸른빛' 시리즈. /노은희

◇당신을 향한 빛, 마음에 쌓이기를 = 밤하늘을 표현한 작품도 눈에 들어온다. 어두 컴컴해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듯 하다가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반짝이는 기운이 어디선가 밀려온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 그 무엇도 있을 것 같지 않은 어둠 속에서 존재하는 빛. 어두울수록 작은 빛이 지닌 의미는 크다. 아주 작은 빛만이라도 있다면, 살아갈 수 있고 살아낼 수 있음을 알기에. 나의 작업을 보는 이들이 자신만의 작은 빛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자신을 위로하고 위안받기를 바란다.”(노은희 작업 노트 중에서)

2009년 창원 성산아트홀에서 열었던 첫 개인전 ‘빛+바람’전 이후 노 작가는 수많은 빛을 담았다. 2014년 창원 스페이스 1326 ‘빛.내리다’ 이래로 부지런히 개인전을 열었다. 빛 내리는 밤(2015), 빛을 느끼다(2016), 빛을 보다(2017), 빛의 밤을 걷다(2019), 작은 빛(2020), 빛 담다(2021) 등 15회 개인전을 열었고, 이번 ‘푸른빛’이 16회 개인전이다.

“어느 날 전시장에서 ‘별이다’ 외치는 아이를 발견했어요.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별을 훨씬 빨리 찾더군요. 그림을 보는 시선이 키가 작은 아이들 입장에서는 높은 곳을 향해 있어서 빛을 더 잘 관찰하더라고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발견이었어요. 그 뒤로 관객에게 무릎을 약간 굽혀서 아이들 눈높이에서 작품을 보게 했더니 숨겨져 있던 빛에 놀라긴 하더라고요.”

빛나지만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지만 인위적이지 않는 빛을 표현하고자 여러 종류의 자개를 잘게 부순 다음 짙은 아교를 사용해 먹 위에 올린다.

노은희 작 '빛. 담다. - 푸른빛' 시리즈. /박정연 기자
노은희 작 '빛. 담다. - 푸른빛' 시리즈. /박정연 기자

◇한국화 은은한 매력 닿기를 = 노은희 작가는 한지에 먹을 바탕으로 여러 전통재료와 기법을 사용해 빛의 모습을 그려낸다. 세필로 한 필 한 필 가는 먹선을 중첩해 바탕이 되는 어두운 부분을 긋는다. 먹 특유의 맑으나 깊고 무거운 검정이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을 표현한다.

“어두울수록 빛은 더욱 선명하고 밝게 느껴지는 법이죠. 미묘하게 달라지는 먹의 농담과 자개와 금박 등의 오브제는 빛을 포착하게 만듭니다.”

그 위에 놓는 달과 달항아리, 별과 꽃, 대나무 등은 작가가 담아내고 싶은 여러 겹의 빛을 드러내는 매개체이다. 빛은 우리 세계 안에서 잃지 않는 희망에 대한 은유다.

김해 생림면과 진영읍에서 자란 어린 시절, 그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기 전까지 봤던 세상이 작품에 녹아있다.

“고등학교는 마산여고를 나왔는데 김해에서 버스를 두 번씩 타고 다녔어요. 창원대 미술학과를 졸업 후 지금까지 사림동에 작업실을 두고 있지만 집은 밀양에 있어요. 달항아리를 그리기 전에도 제 그림에는 나무, 꽃, 잎사귀가 등장하는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죠.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들인데, 어찌 보면 지천에 널려 있지만 도시화 된 공간에서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죠.”

노은희 화가. /박정연 기자
노은희 화가. /박정연 기자

노은희는 부산 맥화랑 ‘행복한 그림’(2020)을 비롯해 그룹전도 여러 차례 가졌다. 충남 아산 당림미술관 ‘치유의 숲’(2020), 서울 정수아트센터 ‘화가는 그림으로 말한다’(2020), 창원 성산아트홀 ‘창원미술청년작가회 정기전’(2021) 등에 참가하고 2019~2021년 홍콩·함부르크·상하이·타이완 등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참가한 바 있다.

한국화 하면 연령대가 높은 사람들이 즐겨 찾을 것 같지만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 관심을 보이면서 작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심플한 매력 때문에 오히려 30~40대 분들이 작품을 많이 찾더라고요. 지역에서 꾸준하게 개인전을 열면서 틈틈이 타지에서 여는 그룹전에도 참여 중인데 한국화를 아끼는 분들과 새롭게 빠져든 분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기회로 삼고 있어요.”

2월까지 창원파티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동시에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옥갤러리 이음더플레이스가 기획한 ‘일인칭 단수’ 6인전에도 참여한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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