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쯤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한 아이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몸집이 왜소하고 얼굴은 새까맣고 파마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 마음에 걸렸다. "안녕, 새로 이사 왔니?"하고 물으니 고개마저 푹 숙인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요즘 하도 아이들에 대한 어두운 사건들을 많이 접하다 보니 절로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잘 지켜봐야지!' 하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얼마 후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그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함께 타면서 "너 머리 너무 멋있다. 파마 한 거니?" 하고 또 물으니 잠깐 고개를 들어 힐긋 쳐다보더니 다시 고개를 떨구었다. 며칠 뒤 퇴근을 하는데 이제는 형이랑 함께 있었다. "너희 파마가 참 잘 되었구나! 너무 멋있는데" 하니 형이 나를 보면서 "우리 파마머리 아닌데요. 곱슬머리에요." "어머! 그래, 너무 좋겠다. 곱슬머리도 이렇게 멋있을 수가 있구나!" 하고 말했다. 그날은 형과 함께 있어서인지 아이에게서 생기가 느껴졌다. '내가 잘못 본 것이구나!' 하며 마음이 다소 가벼웠다.

그런데 바로 얼마 후 그 아이 때문에 함박웃음을 터트리게 되었다. 부랴부랴 출근을 하는데 위층에서 엘리베이터가 한참을 멈춰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안달하며 기다렸는데 조금 후에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시큼한 냄새와 함께 아이가 쓰레기가 가득 찬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내가 들어서니 아이는 재빨리 입고 있던 상의 셔츠를 배꼽이 보일 정도로 손으로 끄집어 올려 코와 입을 꽉 틀어막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마스크를 안 써서 그러니?" 하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내가 마스크를 매매 써서 괜찮아 손 내려도 돼, 그러다가 숨 막히겠다." 웃으며 말하니 저도 무안했던지 조금은 밝은 표정이 되어 손을 내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예쁘든지 그날 아침은 그 아이에게서 배려받은 것 같아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

아이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 아이로 지켜보고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잊을만하면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들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우리 사회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나도 어렸을 때 이웃집 언니들의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이 있으며, 나 또한 이웃집 동생을 자주 업어 주기도 했다. 이것은 지금도 유효하다. 내 이웃에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너나없이 세심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는 눈길이 절실하다. 귀하게 이 세상에 온 아이들이 파란 하늘처럼 환하게 자랐으면 참 좋겠다.

/배재영 경남도 아동청소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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