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배우 양쯔충(양자경)이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여성'을 지칭해 "포기하지 말라"는 수상소감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여성에게 용기를 북돋는 이 발언에 국내 한 보도가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SBS>는 지난 13일 '8 뉴스'에서 양쯔충이 수상소감으로 "다른 이들이 여러분에게 전성기는 지났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세요"라고 말하는 장면을 송출했습니다. 그러나, 원문은 달랐습니다. 양쯔충은 서두에 명확하게 '여성 여러분(And ladies)'이라고 말했습니다. <SBS>는 이를 묵음 처리하고 자막에서도 지웠습니다.

<SBS>는 "왜곡할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젠더 담론을 지웠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는 못했습니다. 여성에게 용기를 내라는 발언에서 구태여 '여성'을 지워 평범한 격려로 바꿨으니 깨름칙할 수밖에요.

요즘 '젠더'는 대화 주제로 꺼내기 부담스럽습니다. 명절 정치 얘기처럼 소란을 일으키기 십상이니까요.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은 지난 14일 비슷한 맥락에서 한국 사회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NPR>은 <SBS> 보도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 젠더 담론을 둘러싼 긴장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NPR>은 또한 "많은 젊은 여성은 공적인 공간에서(심지어 그들의 동료 사이에서도)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가 붙을 것을 두려워해 여성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고 지적했습니다.

<SBS> 보도는 뉴스 생산 과정에서 취사선택을 의미하는 '게이트 키핑'이 부족했습니다. "남이 한 수상소감을 왜 굳이 편집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누리꾼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언론이 특정 인물 목소리를 지운 사실은 민주주의의 퇴행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윤 상임대표는 "최근 시민은 민주주의 기본 틀이 성평등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감지하는 능력도 높아졌다"며 언론도 시민 성숙도 만큼 더 예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SBS>는 논란이 지속하자 지난 14일 오후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한 영상을 바꿨습니다. 공식 입장에서는 "왜곡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 헤아려주시기 바란다"면서 "'여성 여러분'(And ladies)이라는 말이 갖는 함의가 있기에 디지털 콘텐츠를 모두 수정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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