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민 150여 명이 17마리 고양이 돌 봐
아파트 관리비로 마련한 빵돔하우스
빵돔하우스 운영 벌써 3년째
동물 사랑은 세 살부터 여든까지

아파트 숲 사이에서 고양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햇볕을 쬔다. 고양이는 조경용으로 심어둔 나무에 발톱을 갈기도 하고, 입주민들 손길에 기꺼이 배를 내어주기도 한다. 바로 옆에는 조립식 주택이 있다. 내부 크기는 10㎡ 남짓. 안으로 들어가면 고양이용 놀이터 캣타워와 폭신한 방석, 그릇이 놓여있다.

이곳에 사는 고양이는 모두 17마리. 저마다 목에는 이름표가 달린 줄을 걸고 있다. 이 고양이들은 주인이 따로 없다. 함께 사는 이웃이 있을 뿐. 아파트 입주민 150여 명이 고양이를 살뜰히 챙긴다. ‘빵돔하우스’ 회원들은 당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청소하고, 고양이 상태를 살핀다. 고양이에게 필요한 사료와 물, 간식도 준비한다.

양산 명동삼한사랑채아파트 입주민들은 고양이를 위한 쉼터 ‘빵돔하우스’를 만들었다. 빵돔하우스 간판에는 ‘먹이는 지정된 장소, 전용 사료만 가능합니다’, ‘큰 소리로 (고양이를) 놀라게 하거나 쫓는 행동은 하지 말아 주세요’ 등 고양이를 배려하는 문구로 가득하다.

김영옥(왼쪽) 빵돔하우스 대표가 아이들과 함께 고양이를 돌보고 나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연수 기자
김영옥(왼쪽) 빵돔하우스 대표가 아이들과 함께 고양이를 돌보고 나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연수 기자

◇아파트 입주민 뜻 모아 = 김영옥 빵돔하우스 대표는 지난 2015년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아파트 뒤에 산이 있어서 그런지 단지로 들어오는 고양이가 많았다. 고양이들은 밤새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울어댔다.

김 대표는 “어린 고양이들이 자꾸 우니까 어떤 할아버지가 그게 싫으셨는지 돌을 던져서 죽이는 걸 봤다”며 “어떻게 생명을 이렇게 죽일 수 있나 싶어서 고양이들이 울지 않도록 사비를 들여 밥을 주고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캣맘’이었다.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고양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아파트 단지 곳곳에 고양이가 지낼 집을 만들어주고 돌봐줬다.

어떤 이웃은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처음에는 “왜 고양이에게 밥을 주느냐”며 타박도 들었지만, 김 대표가 한결같이 고양이를 챙기자 이웃들도 마음을 열었다.

빵돔하우스에서 사는 고양이가 하품을 하고 있다. /김연수 기자
빵돔하우스에서 사는 고양이가 하품을 하고 있다. /김연수 기자

그렇게 5년이 흘렀다. 당시 아파트입주민 대표였던 장정규(46) 씨는 고양이 민원 해결이 늘 고민이었다. 고양이가 늘어나니 아파트 단지가 금방 지저분해졌다.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고양이가 밤만 되면 울어 소음 민원도 끊이지 않았다.

‘빵돔하우스’는 김영옥 씨와 장정규 씨가 머리를 맞대며 고민 끝에 내놓은 답이다. 두 사람은 고양이를 일단 한 장소에 합사하기로 했다. 뜻밖에 아파트 입주민 동의를 구하기는 쉬웠다.

동 대표들은 다른 고양이 유입을 막고, 중성화 수술로 개체 수를 늘리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빵돔하우스 운영에 동의했다. 고양이가 살 수 있는 조립식 주택은 아파트 재활용품 판매 수익 130만 원으로 마련했다.

장 씨는 “빵돔하우스 운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동 대표는 없었다”며 “말 못 하는 짐승을 잘 돌보고자 아파트 관리비를 쓰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양이 돌봄에 하나 된 주민들= 빵돔하우스는 지난 2020년 4월부터 운영했다. 2023년 3월 기준 빵돔하우스 회원 수는 154명이다. 회원들은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 빵돔하우스 운영 방식을 논의한다.

네이버 밴드에는 그동안 회원들이 올린 고양이 사진으로 가득하다. 이 안에서 회원들은 고양이 이름부터 보호 방법까지 함께 고민한다.

김 대표는 “동물 사랑은 세 살부터 여든까지 제한이 없다”면서 “어린아이들도 운영할 수 있게 열어뒀다”고 말했다.

빵돔하우스 회원인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김연수 기자
빵돔하우스 회원인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고양이를 돌보고 있다. /김연수 기자

어리지만 생명을 대하는 책임감은 어른 못지않다. 아이들은 고양이를 돌보면서 동물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배운다.

노가은(12) 양은 “고양이를 보다가 너무 귀여워서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빵돔하우스 안에 있는 물건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을 한다”고 말했다.

김하은(11) 양은 등굣길에 다친 고양이를 보고 구조한 일도 있다. 그는 “찻길에서 ‘눈길이’(고양이)가 절룩거리기에 봤더니 다리가 찢어져 있었다”며 “책가방 안에 넣어서 이모(김 대표)에게 데려갔는데 눈길이가 아픈 걸 보고 속상해서 울었다”고 말했다.

빵돔하우스 운영 회비는 아프거나 다친 고양이를 돌보는 일에 가장 많이 쓰인다. 빵돔하우스 입주 고양이 17마리는 매달 1만 7000원짜리 심장 사상충 주사를 맞는다.

성인 회원은 15명, 걷히는 회비는 15만 원 정도로 적다. 어린 회원들이 부모에게 생일선물로 고양이 간식을 대신 받아오거나 500원, 1000원씩 용돈을 내놓기도 한다. 나머지는 김 대표가 사비로 충당한다. 지난해에는 운영회비로 1200만 원을 썼다.

양산 명동삼한사랑채 아파트 입주민이 빵돔하우스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김연수 기자
양산 명동삼한사랑채 아파트 입주민이 빵돔하우스 고양이에게 간식을 주고 있다. /김연수 기자

김 대표는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과 분리하니 훨씬 좋은 것 같다”며 “밥과 집이 있고 중성화도 해서 고양이가 울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전에는 고양이가 지하 주차장 같은 곳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이 근처에만 산다”며 “수고양이들이 철통 방어를 하니까 외부 고양이가 아파트 내부로 들어오는 일도 적어졌다”고 덧붙였다.

/김다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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