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동남아 농경 지역 중심 6세기 전부터 형성
2015년 유네스코 등재·1900년대엔 올림픽 종목으로
영산줄다리기 끝나면 재앙 막고자 줄 잘라 부적 활용

“우선 제일 앞에 선 사람이 중요해. 그 사람은 상대편의 얼굴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 보는 사람이고 나머지 팀원들이 모두 그의 뒷모습을 보는 사람이니까 그 사람이 약해 보이거나 기가 꺾여 보이면은 그땐 이미 승부는 끝난 거야. 제일 뒤에는 마치 배의 닻처럼 듬직한 사람이 맡아 줘야 해. 그리고 사람을 배치하는 게 중요한데 줄을 사이에 놓고 한 명씩 오른쪽, 왼쪽으로 나눠서 서는 거야. 두 발은 11자로 똑바로 놔. 줄은 겨드랑이 사이에 끼고 그래야 힘을 제대로 받을 수가 있어. 마지막으로 이게 제일 중요한 건데 신호가 울리고 처음 10초는 그냥 버티는 거야. 이때 자세는 눕는 자세. 아랫배를 하늘로 쭉 밀어 올리고 머리는 뒷사람의 사타구니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힘껏 젖혀. 그러면은 웬만해서는 안 끌려가. 그러면 이상하다 왜 안 끌려오지? 하고 상대편이 당황할 거야. 분명 자기네들이 더 셀 거라고 믿었을 테니까. 그렇게 버티다 보면 상대편 호흡이 깨지는 순간이 분명히 올 거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오영수 분) 영감이 생명을 건 줄다리기를 시작하면서 같은 팀원에게 설명한 줄다리기 요령이다. 학교 다닐 때 줄다리기를 해본 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기억이다.

하지만 요령을 안다고 해서 요령대로 되지 않는 것이 줄다리기다. 그만큼 많은 사람의 호흡을 하나로 뭉친다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학교 운동회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힘겨루기 종목 줄다리기는 대체 언제부터 생겼고 어떻게 온 국민의 풍습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의령큰줄땡기기./경남도민일보DB
의령큰줄땡기기. /경남도민일보DB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 줄다리기는 세계적으로도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전승 발전했다. 특히 벼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주로 밤에 하고 암줄과 수줄로 나눈 쌍줄다리기 형태로 이루어지며 논과 보리밭, 냇가에서 행해지고, 줄이 비의 신인 용과 모양이 비슷하다는 게 근거다.

기록으로는 당나라 봉연이 쓴 <봉씨문견기>에 처음 나온다. 춘추시대 오나라와 초나라의 싸움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누가 이기느냐 하는 놀이이다 보니 싸움이긴 하겠다. 줄다리기는 한자로 삭전(索戰)·조리지희(照里之戱)·갈전(葛戰)으로 쓴다.

우리나라에선 15세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처음 나오는데 중국에서 이미 6세기쯤 이 놀이가 행해졌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그 시기 이전에 줄다리기가 시작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줄다리기는 2015년 세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우리나라 줄다리기만 등재된 건 아니고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이 공동으로 올린 것이다. 유네스코는 이 줄다리기가 풍작과 번영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농경민의 보편적 풍습이라고 보았다. 참고로 한국은 ‘줄다리기’라고 하고 캄보디아 ‘테안 프롯’, 필리핀 ‘푸눅’, 베트남 ‘깨오꼬’라고 부른다.

지난달 25일 칠원읍사무소 앞에서 펼쳐진 '칠원고을줄다리기' 행사./함안군
지난달 25일 칠원읍사무소 앞에서 펼쳐진 '칠원고을줄다리기' 행사./함안군

◇줄다리기는 왜 하는 거지? = 우리나라에서 줄다리기는 대체로 쌍줄다리기 형태로 전승됐다. 그리고 벼농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도작문화권인 중남부 지역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무형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는 충남 당진시의 ‘기지시줄다리기’와 창녕군의 ‘영산줄다리기’를 들 수 있고, ‘의령큰줄땡기기’, ‘진동큰줄땡기기’, ‘문산줄다루기’, ‘칠원줄다리기’ 등을 꼽아볼 수 있겠다.

지난달 25일 칠원읍사무소 앞 도로에서 ‘칠원고을줄다리기’ 행사가 있었다. 전날 관련 학술세미나가 있었는데, 황원철 창원대 명예교수는 쌍줄다리기의 특성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먼저 세시풍속과 순환성으로 전통적으로 음력 정월에 연행되며, 둘째 용사신앙과 주술성인데, 용과 뱀을 상징하는 수줄과 암줄, 두 줄을 사용한 주술적 행위라는 것이다. 즉 줄의 제작, 운반, 줄의 교합 과정, 다리기 경쟁, 줄의 처리까지 탄생, 결혼, 죽음을 그리고 있으며 이는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행위라고 했다. 셋째로는 농경의례와 제의성이며 넷째로는 경쟁 유희로서의 대동성을 담고 있다고 했다.

2015년 5월 창녕 영산줄다리기 행사 때 특수 제작한 수레에 큰 줄을 얹어 운반하는 모습./정현수 기자
2015년 5월 창녕 영산줄다리기 행사 때 특수 제작한 수레에 큰 줄을 얹어 운반하는 모습./정현수 기자

◇민속 줄다리기 절차 = 몇 해 전에 보았던 창녕의 ‘영산줄다리기’ 사례로 설명하자면, 먼저 볏짚으로 새끼줄을 꼬고 그 새끼줄로 큰 줄을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보통 보름에서 한 달까지 걸리기도 한다. 줄다리기 날이 되면 먼저 꼬마 줄다리기를 한다. 본줄다리기의 축소판이라고 보면 되겠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참가한다.

이어서 경기장으로 수줄과 암줄이 등장하는 과정이 펼쳐진다. 풍물패들의 풍악에 주민들의 춤이 어울리는데, 특수제작한 수레 몇 대에 얹혀 큰 줄이 등장하면 주민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가득 메운다. 그 줄 위에는 장군들이 타고 있다.

암수 두 줄이 모두 나와 마주보게 놓이면, 암·수줄의 머리를 꿰는 행위가 펼쳐진다. 이때 양쪽에서 당겨 줄이 빠지지 않게 암·수줄 머리 부분에 비녀목(비녀 역할을 하는 굵은 나무)을 끼운다. 이 과정이 끝나면 다시 농악이 펼쳐진다. 풍물패는 큰 줄 주위를 돌며 흥을 돋운다. 드디어 동부와 서부 주민들이 본줄에 이어진 가지줄을 잡고 경기를 시작한다. 대회장인 군수의 징소리와 함께 “영차! 영차!” 기합과 함께 줄이 팽팽해진다. 줄 위에 선 동부와 서부 장군들은 한쪽으로 쏠릴 때마다 “힘내라! 힘내!”하고 고함을 친다. 늘 그렇듯 서부가 이긴다. 여자 쪽인 서부가 이겨야 풍년이 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주민들이 큰줄 일부를 잘라 집으로 가져간다. 지붕에 올려놓거나 따로 보관하면 재수가 좋고 재앙을 막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2015년 5월에 열린 창녕 영산줄다리기 행사 때 축소판으로 펼쳐진 어린이 줄다리기 모습./정현수 기자
2015년 5월에 열린 창녕 영산줄다리기 행사 때 축소판으로 펼쳐진 어린이 줄다리기 모습./정현수 기자

◇민속 줄다리기 형태들 = 민속 줄다리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대부분 쌍줄로 이루어진다. 외줄다리기는 학교 운동회 때 주로 행해지는데, 칠원고을줄다리기에서 ‘골목줄다리기’ 역시 아이들이 하는 외줄다리기의 한 형태다.

밀양의 감내게줄당기기처럼 여러 방향으로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형태가 있다. 게의 등처럼 생긴 원줄에 줄 5개를 달고 한 줄에 5명씩 총 25명이 줄을 어깨에 걸고 엎드려서 줄을 끄는 방식으로 경기가 이루어진다. 옛날 밀양 감천지역에서 좋은 게잡이터를 차지하려고 싸우자 이를 해결하고자 게 모양으로 줄을 만들고 이긴 쪽이 터를 차지하도록 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또 함안에는 거북줄땡기기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두 사람이 거북처럼 생긴 짚 외피를 입고 엎드려 줄을 당기는 경기다. 두 사람이 한다는 것 말고는 감내게줄당기기와 방식이 비슷하다.

참! 줄다리기는 한때 올림픽 육상 경기 종목이었던 때도 있었다. 1900년부터 1920년까지 정식 종목이었다가 폐지됐다.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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