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부터 이태원 이르기까지 혐오
의도적 갈등을 정쟁 도구로 삼는 정치인
혐오 만연한 사회...진실 가둔다
"영향력 있는 사람 혐오 발언 가중 처벌해야"

한때 우리 조상은 ‘상포계’를 만들어 서로 도왔습니다. 상을 당하는 구성원이 있으면 장례를 돕는 일입니다. 소가 상여를 짊어지고 앞서면 동네 사람들이 곡소리를 내며 뒤따랐습니다. 무덤 터를 만들어주고, 서로 위로하는 일까지 이웃이 함께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애도’를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인데 사회적 참사 유가족에게는 유독 가혹합니다. 세월호부터 이태원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혐오’가 깔렸습니다.

유가족들이 2차 가해를 멈춰달라 호소해도 소용없습니다. 때마다 이들을 향한 혐오 발언이 문제가 됩니다. 혐오는 어디서 와서 우리에게 어떤 결과를 안겨줄까요. 전문가들에게 물었습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세월호참사에 대해 혐오·모독 발언을 했다며 국민의힘 권성동, 서범수 국회의원, 김미나 창원시의원 등을 지난달 22일 고소했다. /연합뉴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가 세월호참사에 대해 혐오·모독 발언을 했다며 국민의힘 권성동, 서범수 국회의원, 김미나 창원시의원 등을 지난달 22일 고소했다. /연합뉴스


◇정치공학적인 계산 = 지난달 22일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의연대는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국민의힘 권성동·서범수 국회의원과 같은 당 김미나 창원시의원 등을 정보통신망법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권 의원과 서 의원은 세월호 시민단체가 희생자 추모와 유족 지원 등을 위해 쓰는 공금을 다른 용도로 쓰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김 시의원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누리 소통망(SNS)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향해 ‘제2의 세월호’, ‘나라 구하다 죽었느냐’고 말했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세월호·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막말을 내뱉는 정치인들이 피해 지역과 떨어진 점에 주목했다. 최근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 고발당한 권 의원은 강원 강릉시가, 서 의원은 울산 울주군이 지역구다.

김 시의원도 마찬가지로 세월호·이태원 참사 피해 지역과 거리가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대부분이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이었다. 이태원 참사는 서울에서 일어났으며, 경남 지역 희생자는 한 명이다.

서 대표는 “피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은 유가족을 향해 막말하지 않는다”며 “사고 장소에서 거리가 먼 지역은 추모 분위기가 조성됐을 때 정치적으로 불리하다는 판단을 하거나, 지지자 결집 의도가 있어서 막말을 내뱉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홍재우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갈등’을 만들어내 사회적 참사를 정쟁 도구로 삼는 점을 지적했다. 홍 교수는 “정치권은 미워하고 희생할 상대를 만들어내 참사 유가족을 소수로 만드는 전략을 세운다”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에게서 도덕적 결함을 찾아내 정당성을 무너뜨린다”고 꼬집었다.

◇혐오는 진실을 가둔다 = 정치인만이 아니라 대중도 혐오에 동조한다. 황상민 심리학 박사는 혐오를 ‘인간의 본능’이라고 정의했다. 대개 좌절감에 빠져있거나, 공격적인 심리 상태에 있을 때 혐오 반응이 나타난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려워진 한국 사회는 혐오가 발현되기 쉬운 환경이다.

황 박사는 “자기 삶에 안정감을 못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혐오를 만든다”며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집단이거나, 다른 특성이 있는 사람을 포용하지 못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가져다주는 부작용을 경고했다. 그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며 “우리가 경험한 그대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진실을 말하더라도 거짓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지주형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도 “남을 비난하면서 만족하거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없다”며 “이런 사람이 많다면 결과적으로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그는 혐오가 진상 규명과 문제해결을 더디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를 놓고 유가족이 막대한 보상금을 받는다거나, 생존 학생이 대학 입시에서 큰 특혜를 받는다는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도 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한 요구안을 제시했다. 세월호 참사와 그 후에 일어난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자 처벌을 완수해달라는 부탁이다. 세월호 참사 피해지원 특별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생명안전기본법 제정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오해에 가로막혀 더디게 흘러가고 있다.

◇혐오에 대처하는 방법은? = 사회적 참사 유가족을 향한 혐오는 진실을 감춘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적 참사는 또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기억·약속·책임’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적 참사 유가족을 향한 혐오를 멈출 방법은 없는 걸까.

10.29이태원참사경남대책위원회는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막말을 쏟아낸 김미나 창원시의원을 고소·고발했다. 경남경찰청은 명예훼손이 아닌 모욕 혐의만 적용해 검찰로 넘겼다. 구체적인 사실 적시가 없었기 때문에 명예훼손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문가들은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류하경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세월호참사대응TF팀장은 “사회적 참사에 대한 혐오 표현을 했을 때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고,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정치인이 혐오 표현을 했다면 판사가 양형 기준을 높여 가중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주형 교수는 “언어 자체도 하나의 행위이기 때문에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어서 지나친 혐오 표현은 엄격히 처벌하고, 규제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교육과 언론을 통해 혐오로 이득 얻는 사람이 없도록 사회적 학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다솜 박신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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