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가고 기우는 노후 공동주택
사유 재산 이유로 보수 어려워
인근 주민 불안 야기하는 빈집
점검 커녕 철거조차 쉽지 않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사회’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 위험 요인을 조기 발견하겠다는 취지에서 2015년부터 해마다 ‘국가안전대진단’을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17일 올해 집중안전점검 일정을 밝혔다. 안전 취약시설 2만 6000여 개소를 선정해 6월 16일까지 진단을 진행한다.

집중안전점검에도 한계는 있다. 지방자치단체 판단에 따라 점검 대상 시설물이 달라진다. 2021년 탈선 사고로 8명이 다친 통영 욕지도 모노레일도 집중안전점검 대상에 빠져 있었다. 특히 민간 시설물은 위험 요소를 발견하더라도 후속 조치를 강제하기 어려워 개선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집중안전점검이 놓치는 사각지대를 찾아갔다.

봉암연립주택에 사는 김경자(79) 씨는 지난해 자다가 천장 위 돌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김다솜 기자
봉암연립주택에 사는 김경자(79) 씨는 지난해 자다가 천장 위 돌이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김다솜 기자

◇“이러다 무너진다” = “위험하니까 이 근처는 조심하라고 팻말 세워둔 거 보세요. 사람이 사는데 아무 대책도 안 세워주면서 저런 팻말만 만들어 놓으면 우리보고 그냥 죽으라는 거 아닌가요?”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연립주택에 사는 이정이(62) 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팻말에는 ‘구조 안전 위험시설물 알림’이라는 빨간색 글씨가 쓰여있다.

이 씨는 “길옆에 있는 아파트는 큰 차가 지날 때마다 집이 위아래로 흔들린다”며 “20~30년 전부터 재건축이 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기다렸는데 이대로 살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아파트 129가구 가운데 74가구만 남아서 살고 있다.

아파트 외벽은 페인트가 벗겨졌고 까만 때가 묻었다. 외벽은 많게는 2㎜, 적게는 0.5㎜ 두께로 금이 갔다. 검붉은 철골이 그대로 드러난 지점도 보인다. 건물이 조금씩 기울면서 창틀이 떨어져 나가 창문이 없는 집도 더러 보였다. 아파트 내부 천정은 시멘트가 떨어져 구멍이 나 있다. 계단에는 시멘트 가루가 수북하다.

같은 아파트 주민 김경자(79) 씨는 지난해 9월 아찔한 경험을 했다. 태풍이 불던 밤을 보내고 나서 아침에 일어나보니 침대 위에 손바닥 크기 만한 돌덩이가 떨어져 있었다. 김 씨는 “천장에서 돌이 떨어진 걸 보고 한동안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며 “올여름 태풍이 오면 그때 어떻게 하나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봉암연립주택에 사는 이정이(62) 씨는 '구조 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팻말을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다솜 기자
봉암연립주택에 사는 이정이(62) 씨는 '구조 안전 위험시설물 알림' 팻말을 보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다솜 기자

봉암연립주택은 1982년 지어져 2000년 초반 ‘붕괴 위험’ 진단을 받았다. 그때부터 주민들은 재건축을 추진했으나 창원시 관리계획에 가로막혔다. 주민들은 지난 19일 창원시청을 찾아가 하루빨리 이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창원시 성산구 내동에 있는 노후 아파트 단지(목련·내동·비앤지·삼미·효성아파트, 1048가구 규모)는 재건축 조합이 설립돼 있다는 이유로 10년 넘게 이렇다 할 유지·보수를 받지 못했다. 시 조례에 재건축 조합이 설립된 공동주택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어서다.

박경봉 내동주택재건축사업조합장은 “앞으로 재건축 과정이 문제없이 진행된다 해도 2년 정도 걸릴 텐데 그전에 임시 대책이라도 필요하다”며 “내동처럼 40년이 넘은 아파트는 예외로 둔다든지 재건축 조합 설립이 10년이 넘은 곳은 유지 보수 지원 대상에 포함한다든지 등 유연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창원시 도시정책국 주택정책과 주거개선 담당자는 “지자체에서 안전 점검을 해주고, 보수보강 방법을 제시하더라도 사유 재산이기 때문에 개인이 비용을 대야 한다”며 “관리지원사업이 있어도 재건축 지역은 가산점을 받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상 방치 상태인 아파트에는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세 들어 산다.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은 이뤄지고 있지만 유지·보수는 소유자 몫이다.

하지만 재건축 예정지에 돈을 들여 수리하는 소유주는 극히 드물다. 소유자와 세입자 모두 재건축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창원시 성산구 목력아파트 내부 벽면이 금이가고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왼쪽) 창원시 마산합포구 반월동 한 빈집 외관. (오른쪽) /박신 기
창원시 성산구 목력아파트 내부 벽면이 금이가고 페인트가 벗겨져 있다.(왼쪽) 창원시 마산합포구 반월동 한 빈집 외관. (오른쪽) /박신 기자

◇빈집 인근 주민은 ‘노심초사’ = 창원시 마산합포구 반월동의 한 빈집도 인근 주민에게 불안을 일으키는 대상이다. 집중안전점검 대상 시설물 선정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인명·재산피해가 큰 다중이용시설 중심이기 때문에 빈집은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인근 주민 김태식(76) 씨는 “여름이면 악취가 나고 무엇보다 빈집에서 불이라도 날까 봐 늘 노심초사한다”며 “민원도 넣어 봤지만 집주인이랑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수년째 방치돼 있다”고 말했다.

올해 창원시가 확보한 빈집 정비 예산은 9000만 원, 지난해 추경 포함 1억 9000만 원이 투입됐다. 시는 올해도 추경으로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지만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창원시 도시정책국 주택정책과 공영주택 담당자는 “빈집 주인이 철거 신청을 하면 7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며 “빈집 정비 예산은 매년 1억 원 내외인데 철거 비용이 부담스러운 집주인들에게 지원하기에는 넉넉한 예산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시에서 직권 철거를 할 수 있지만 웬만하면 철거를 유도한다”면서 “빈집 정비 예산 확대와 소유주 설득 작업을 병행해 위험등급 빈집은 하루빨리 철거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민간 시설물 후속조치 부족해 =경남도는 올해 집중안전점검 대상 시설물을 1872곳으로 정했다. 행정안전부 집중안전점검 운영계획을 근거로 대상 시설물을 추려냈다.

경남도는 점검 시설물 1곳마다 4명이 합동점검을 한다. 담당 공무원 1~2명과 관련 분야 전문가 2명 이상이 따라붙는 식이다. 하루 2~3개소를 점검해 내실 있는 점검을 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후속 조치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집중안전점검 후속 조치 완료율을 떨어트리는 주요 원인은 노후 공동주택, 전통시장 등 ‘민간시설물’이다. 안전 점검을 받더라도 후속 조치를 강제할 수 없어서 공공시설에보다 후속 조치 완료율이 떨어지는 편이다.

최근 3년간 경남도 집중안전점검 후속 조치를 실적을 보면 2020년에는 지적 시설 153건 가운데 119건, 2021년은 490건 가운데 408건이 후속 조치를 마쳤다. 2022년 후속 조치는 진행 중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2월까지 취한 조치는 561건 가운데 305건이다. 경남도는 미조치 시설에 대한 대응을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남도 사회재난과 집중안전점검 담당자는 “다중이용시설 중심으로 점검 대상을 선정하고, PC방, 관광숙박시설, 요양병원 등 다양한 유형의 시설물을 확인하고 있다”며 “집중안전점검도 각 시설 유형에 맞춰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다솜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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